지남거신도(神道)와 해원(解冤)에 대한 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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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8 조회6,223회 댓글0건본문
글 감사원
대순진리회는 도주님께서 구천상제님으로부터 천부적(天賦的) 종통 계승의 계시를 받으신 데서 비롯하여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이어받으신 도전님께서 창설하신 종단입니다. 따라서 현재 대순진리회에 몸담고 있는 모든 수도인은 도전님께서 도주님으로부터 이어 받아 가르쳐 주신 법에 따라 수도를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도통을 받기 위해서는 수도를 하여야 하고, 수도를 하기 위해서는 수도를 하기 위한 법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도주님께서 50년 공부 종필(終畢)로써 이룩해 놓으신 진법(眞法)으로, 이 진법 외에는 결코 그 어떠한 수도법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곧 난법난도(亂法亂道)요, 허령(虛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래 신(神)을 붙여주고 신을 보게 하고, 또 신에게 교화를 하여 신을 해원(解冤)시켜준다는 허황된 법을 만들어 시행하다가 적발되어 제명 등의 중징계를 받은 사례가 발생하였습니다. 도전님 재세 시에도 이러한 일을 벌였던 몇몇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도전님으로부터 ‘제명 처분’이라는 중벌을 면치 못했었습니다.
우리 종단에서는 신을 본다거나 신을 해원시켜주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도란 신도(神道) 즉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진법에 따라 수행해 나아가는 것이어야만 하는데, 신을 본다거나 신을 푸는 행위는 진법에 없는 법으로서 신도(神道)가 아닌 난법난도요, 허령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도통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가 아니라 사도(邪道)에 불과하다고 규정되며, 이에 대한 징계 수위 또한 개과(改過)의 여지를 두지 않는 출도(出道) 처분으로 매우 높습니다.
이제 우리 종단에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본 감사원에서는 신을 보거나 해원시키는 행위가 왜 잘못되었는지, 신도(神道)와 해원(解冤)이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1. 신을 보거나 보게 하는 행위에 대하여
우리가 수도하는 목표는 도통을 받기 위함에 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도통은 멀고 가까움이 없이 천하동춘(天下同春)’(『대순지침』, 40쪽)임을 일깨워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봄은 모두에게 다 같이 오듯이, 도통도 누가 먼저 받고 나중에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닦은 바에 따라서 한날 한시에 모두가 같이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진강(眞降)’이라고 합니다. 진강(眞降) 외에 허령(虛靈)이라는 것도 있는데, 도주님께서는 이 허령을 받게 되면 진강을 받지 못하게 됨을 엄중히 경계하셨습니다.(『대순지침』, 40쪽 참고) 허령이 들게 되면 정상인들과는 다른 특이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도전님께서는 그것을 곧 ‘사람이 보기에 광증(狂症)’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허령에는 여러 가지 현상이 있지만, 그중의 하나가 바로 신(神)을 본다든지 혹은 신적인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도전님께서도 “이상한 것이 보이고 그것에 빠져들면 허령이 들고 정신이상이 생긴다.”(1992년 1월 11일), “뭐를 본다 하는 것은 허령이다.”(1992년 3월 18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주신 바가 있습니다.
물론 십수 년 전, 도전님께서 순감들 큰 공부를 시키실 때 순감들로 하여금 신을 보게 하고 또한 신적인 치료(시료)를 하게 하여 많은 기적을 일으키신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도전님의 감독과 지시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당시 도전님께서는 공부 기운을 거둔다고 하시며, 훗날 모두가 도통을 받기 전까지는 이러한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진강이 내리기 전까지는, 양위 상제님이나 도전님의 존함을 팔아가면서 신을 본다든지 신을 보게 한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허령(虛靈)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혹자는 도전님께서 자신에게 따로 명을 내리셨기 때문에 신을 보거나 신을 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전님께서 따로 후계자를 정해주시지 않으셨다는 것과, 도전님께서 특정 누구를 지목해서 그 사람에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법을 전해주시지 않으신다는 것은 수도인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것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종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서 천자(天子)를 도모하는 죄에 걸리게 됩니다. 상제님께서 “천자를 도모하는 자는 모두 죽으리라.”(교운 1장 51절)고 하셨으니, 이것은 죽음을 면치 못하는 매우 큰 죄에 해당함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을 보거나 보게 하는 행위는 우리의 도(道)가 신도(神道)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후천 선경을 여는 새로운 도(道) 즉 상생대도(相生大道)를 펴셨는데, 이 도(道)는 어느 한 성인(聖人)이나 현인(賢人)같은 인간이 아니라 상제님에 의해 베풀어진 도(道)이기 때문에 상제님의 도(道), 즉 신도(神道)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신(神)이란 당연히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상제님이시며 또한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천지공사에 참여하는 천지신명들임은 물론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신도(神道)란 ‘상제님에 의해 펼쳐진 도(道)로서 인위적이지 않고 사(私)와 사(邪)가 배제된, 공평무사(公平無私)하고 진리에 지극한 상생대도(相生大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제님의 진리는 도주님의 진법에 따라 구체화되었기 때문에, ‘신도를 닦는다’는 말은 곧 ‘상제님의 진리를 진법에 따라 수행해 나아간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수도의 길을 갈 수 없음을 깊이 명심해야만 합니다.
2. 신을 해원시켜 주는 행위에 대하여
교화를 하면 상대의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니 기운도 바뀌고 그 사람에게 응한 신도 풀린다, 즉 신이 해원하게 된다, 우리에게 그 정도 수도한 능력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도 전혀 이치를 모르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전경』을 보면, 상제님께서는 신명을 해원시키는 공사를 보실 때, 신명은 말이나 가르침을 통해서 해원이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서당 아이 신명이 과거 상제님께 품었던 원한을 풀어주실 때(행록 4장 54절), 또한 김영학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두 척신의 원을 풀어주실 때(행록 4장 47절)에서 알 수 있듯이, 원한을 품은 신은 자신의 원을 정화(淨化)하여 상생(相生)의 길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오로지 상대에게 일정 부분 고통을 가함으로써 자신들의 원을 푸는 존재입니다. 이것은 상제님께서 서당 아이 신명의 원을 ‘교화’로써 풀어주시지 않으시고 그 신명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셨음이나, 김영학에게 심적인 고통을 가하여 김영학에게 원을 품었던 신들의 원을 풀어주신 점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에게 원을 품고 있는 신을 해원시키기 위해서는 그 원을 받아서 직접 심신(心身)의 고통을 겪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온 우주가 진멸의 지경에 빠져버린 이유가 천지인 삼계에 가득 찬 원 때문임을 간파하셨으나, 이를 교화 혹은 감화로써 풀어내는 법을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상제님께서는 ‘해원시대’를 여시어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들이 이 세상에서 각자의 원을 푸는 ‘해원판’을 벌이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 같은 사실에서 원은 단순히 교화, 위로나 설득, 감화 등의 방편으로는 풀려나갈 수 없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응해있는 원신(冤神)을 풀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받아서 직접 겪어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가슴뼈를 상하게 한 원수를 오히려 은인과 같이 사랑함으로써 과거 자신의 잘못을 풀 수 있었던 박공우의 예(교법 3장 12절)에서 볼 수 있듯이, 신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괴로움을 받아서 견뎌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남 잘되는 공부’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이것이 해원상생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도 “도인은 항상 감사하고 고맙다는 것이 몸에 배이고 생활화 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며 여기에서 척이 사라진다. 나를 때리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그것은 전생에 내가 남을 때려서 척이 생겼는데, 그 척이 지금 그 사람에게 의지해서 나를 때리므로 풀리는 것이다. 도적이 내 물건을 훔쳐갔다면 괘씸하겠지만 전생에 내가 남의 물건을 훔쳤었는데 그 척신이 그 사람에게 의지하여 복수함으로써 풀리는 것이니, 오히려 그 사람이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받으면 풀린다. 상제님께서도 어렸을 적에 글방 다니는 친구가 척이 되었는데, 그 친구가 죽어 일본사람을 제일 싫어한다고 하였기에 척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일본 옷을 입으신 것이다. 우리는 척이 남으면 안 된다. 척은 다 풀어야 한다.”(1991년 5월 14일)라고 훈시하셨던 것입니다.
3. 공사를 보고 다니는 행위에 대하여
상제님께서는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한다.”(공사 3장 5절)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즉 상제님께서는 인간뿐 아니라 심지어 짐승(행록 2장 15절 참고), 그리고 신들까지 해원시키는 거대한 계획을 마련하셨으며, 이에 따라 9년간의 천지공사를 통해서 무수하게 신명을 해원시키는 공사를 보셨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신을 해원시키는 공사’는 어느 누구에게 화를 입어 원한을 가진 신뿐 아니라, 천지의 도수를 담당하고 있는 기타 많은 신명들도 모두 포함함은 물론입니다.
예를 들어 천지가 진멸할 지경에 이르자 구천에 계신 상제님께 하소연했던 신명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상도(常道)가 무너지고 세상의 도수가 어그러짐을 막지 못해 많은 폐해가 발생한 데 대해 원(冤)을 품었던 분들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런 신명들의 원도 모두 공사로써 풀어주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우주적으로 원을 품은 신들을 해원시키는 것은 상제님의 천지공사라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과 그리고 도전님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도주님께서는 진법을 짜시는 50년의 기간 동안 천지공사를 받드시며 많은 신명해원공사를 보셨으며, 또한 과거 도전님께서도 강화도에 납시셨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자 이곳 강화도에 유배되어 있었던 신명들이 흘리는 눈물이라고 말씀하신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신명해원공사를 보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주적으로 원을 품은 신들을 풀어나가는 천지공사를 시행하시는 분은 오직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산신(山神)이나 어느 지역 토지신(土地神) 심지어 상제님이나 도주님의 공사에 참여한 신들을 풀었다고 주장하거나, 혹은 우주의 신명들을 풀어나간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자신이 도전님으로부터 종통을 받아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풀어나가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됨이 자명합니다. 따라서 그런 행위는 천자를 도모하는 짓으로서 천벌을 면하지 못하는 대역죄에 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수도인들은 ‘신명들을 해원시켜 조화시킴으로써 천지도수를 조정하는 천지공사’를 직접 받들어 행할 수 없습니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어느 누군가가 도전님의 명이라 핑계하면서 천지공사를 보고 신명들의 원을 풀어준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종통을 부정하고 도법(道法)을 벗어난 난법난도자(亂法亂道者)임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상제님의 상생대도와 이를 바탕으로 한 천지공사로 인해서 삼라만상의 모든 원이 풀리게 되어 세상이 조화(調和)를 이룩하게 되니, 우리도 상제님의 해원상생 진리를 힘써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주의 원을 가진 신들을 푼다거나 하여 상제님의 권능을 흉내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에 쌓여있는 수많은 척신과 원신(冤神)을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심정으로 받아서 풀어나가면서도 항상 고마움을 잃지 않는 데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해원상생의 길인 것입니다.
4. 난법난도와 허령을 경계하고 진법 수호를 당부하며
상제님의 진리에 따른 진법을 따르지 않고 허황된 생각으로 없는 법을 지어 내어 난법난도를 일으키는 것은 모두가 도에 대한 믿음의 부족과 수도인의 본분에 넘치는 허영(虛榮)과 부질없는 야망(野望), 그리고 욕심 때문에 비롯됩니다. 이 모두는 이른 바 ‘넘치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도전님께서는 “허령은 사람이 보기에 곧 광증(狂症)이므로 ‘허가 내리면 진을 받지 못한다.’ 하셨으니 매사를 경홀히 생각 말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여야 한다.”(『대순지침』, 40쪽)고 하시어,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과부족이 없는지를 살펴 고쳐나가라고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과거 ‘도는 곧 변화’라고 하면서, 도전님께서 가르쳐주신 법은 기본 도법이고 그 외에도 도는 항시 변해야 하므로 이제껏 없던 새로운 법도 받들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퍼뜨리고 다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난법난도가 무엇인지, 무엇이 진법수호인지를 안다면, 더 이상 이런 말에는 현혹되지도 않을 것이며, 또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감히 나타날 수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다시는 신을 본다거나 신을 해원시킨다거나 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없는 법을 새로이 만들거나 또는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흉내내며 다니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모두가 후천 오만 년 청화세계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대순회보》 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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