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정문득의지추(得意之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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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07 조회3,170회 댓글0건본문
어느 날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마음을 게을리 말지어다.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고 이르셨도다.(예시 87절)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봄에 뿌린 씨가 뜨거운 여름 동안의 땀과 노력으로 결실이 이루어지는 때이다. 이처럼 뜻한 바를 마음 먹는 것을 봄으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기간을 여름으로, 마침내 성과를 얻어 뜻한 바를 이루는 시기를 가을로 비유할 수 있다. 득의지추(得意之秋)는 뜻을 이루는 가을을 의미한다. 곧 뜻을 이루는 계절이란 뜻이다.
우리가 뜻한 바 소원은 도통이다. 상제님께서 삼천이라야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이것은 구천상제님에서 도주님으로, 도주님에서 도전님으로 종통계승이 이루어진 후에야 도통이 난다는 것으로 도통이 이루어지는 시기(時期)와 때를 의미한다.
도주님께서는 50년의 공부로서 진법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진법이 완성되기 전에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통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 때가 아닌 것이다. 도주님의 50년 공부 종필로써 전하신 유법을 숭신하기 위해 창설된 대순진리회에 와서 비로소 도통이 날 수 있는 것이다.
“손에 살릴 생(生) 자를 쥐고 다닌다.”는 것은 “해인이 장중(掌中)에 있다.”는 의미와 맥락이 상통하는 말이다. 여기서 살릴 생 자를 쥔 손이나 해인이 장중에 있다는 것은 물질적인 손이 아니라 ‘내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로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나 해인을 얻는 것이 마음을 부지런히 하고 마음을 닦는 데 달려 있다는 의미가 된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은혜를 망각하고 무도병에 빠진 사람들을 상제님의 도문으로 인도하여 보은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그가 상도(常道)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윤리도덕만이 신맥(新脈)이다. 윤리도덕의 근원은 연원이다. 맥 떨어지면 죽는다 하여 연원을 바르게 잘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연원을 바르게 하여 맥을 이어 도를 회복한 자는 살고 맥이 떨어져 도를 잃는 자는 죽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널리 포덕하여 상제님 도문으로 인도하여 보은의 길을 열어주는 것은 곧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된다.
그러나 입도만 시킨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입도만 했다고 도를 회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입도 후의 수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입도를 시키고 그가 수도를 해서 상도를 회복하고 운수를 받을 수 있도록 계도하는 것이다.
마음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은 곧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는 의미다. 마음을 부지런히 한다는 것은 마음을 속이지 않고 일상 자신을 반성하며, 자나 깨나 상제님을 잊지 않는 경천(敬天)의 실천과 이를 통하여 마음으로 드나드는 선신과 악신을 분별하여 선자사지(善者師之) 악자개지(惡者改之)하면서 정심을 유지하는 내적인 과정과 이를 통하여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을 써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외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포덕은 수도의 중요한 과정이므로 마음을 부지런히 하는 가운데 그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언어 행동이 마음의 표현이므로 포덕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결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음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은 음에서 발생하여 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포덕은 음적인 수도가 양적인 결과로 표현되는 것이라 할 것이고, 양적인 결과로 나타나기 전의 음적인 수도가 마음을 부지런히 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렇듯 마음먹기에 따라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이로 인해 도통을 이룰 수도 있으니 바야흐로 득의지추가 아니겠는가?
《대순회보》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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