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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도생활 100일 동안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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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현식 작성일2019.12.18 조회5,51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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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방면 선무 최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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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추석연휴에 수호를 서면서 최근 100일간의 나의 수도생활을 되돌아본다.

 1997년은 나에게 있어 중요한 해이다. 장교로 5년 3개월의 연장근무를 마치고 제대하여 IMF의 어려운 시기에 힘겹게 취직을 하여 서울 당산동에 집을 얻어 직장을 다녔고 그해 가을에 대학시절 같은 과 친구의 소개로 입도(入道)하게 되었다.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초창기 회사의 관리를 맡은 말단 직원이다 보니 퇴근시간이 밤 10시를 넘길 때가 보통이었고 지하철 막차를 타고 퇴근 한 적도 꽤 있었다. 늦게라도 연락소에 가서 교화를 들으면 머릿속은 뿌옇게 멍하고 졸리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축시기도를 모시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이렇게 매일은 아니지만 충남 공주로 발령받아 가기 전까지 꾸준히 연락소에서 기도 모시고 교화를 듣고 나름 수도에 입문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방으로 내려와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만큼 바쁘고 힘들기만 할뿐 연락소에서 기도 모시고 교화 듣는 생활을 하지 못하자 수도에 대한 마음은 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멀어져 갔다.

 

  2010년 올해는 입도 후 13년이 된다. 그동안은 수도와 멀어져 사회생활에 집중한 시기였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보낸 시간은 현재 나에게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만족스럽기보다 아쉽고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직장생활은 가는 곳마다 힘들고 스트레스 받고 늦게까지 일하면서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했다. 매년 다음에는 더 좋은 일이 생기겠지 하는 마음으로 위로만 하며 지내면 안 되겠다 싶어 6년째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문구점을 인수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돈 버는 데 집중 투자하여 보상을 받으리라 생각한 그 일은 결국 3년도 되지 않아 빚만 지게 되었다. 가게 정리 후 대전에서 상가관리소장으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전처럼 받았던 스트레스, 상가 사람들과의 피곤한 관계, 해결되지 않고 점점 꼬여만 가는 나의 생활 등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지속되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힘들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아! 나는 사회생활과는 인연이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마음속으로 깊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불현 듯 그동안 미뤄 두었던 수도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굳혔다.

 

  2010년 6월 8일. 직장을 정리하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수호를 서면서 마음이 정화(淨化)되는 것을 느꼈다. 수호근무를 마치고 방면 연락소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회관 식당지원부터 연수, 공부 등 일이 많았다. 하여튼 제일 긴장되고 집중해서 준비하였던 것은 처음 하는 시학공부였다. 겨우 주문을 외는 나는 선각의 도움으로 3일 동안 연락소에서 시학공부에 대해 집중 교육을 받았다. 주문, 공부교대, 수호근무 등을 미리 연습하고 실제 공부에 임하니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게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무엇이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24시간 잠도 자지 않고 공부하며 기운을 모신다는 것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얼굴은 홍조를 띠는 듯했고 몸 안에는 기운이 솟아나 피곤한 줄 몰랐고 마음도 몸도 편안함을 느끼며 첫 공부를 마쳤다.

 

  공부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된 연락소 생활은 마치 군대 갓 들어온 신병처럼 바빴다. 사회생활에서는 늦게 일어나 겨우 9시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여 집으로 가든지 회식이나 약속이 있으면 밤늦도록 술에 취해 겨우 집에 와서 자고 다음날 또 반복되는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연락소 생활은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6시에 기상하여 세수하고 개인 정비하고 주간에는 계획된 행사 참석 및 개별 일정을 보내고 새벽 기도까지 모시면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는 무더운 7월~8월을 공부, 강식, 연락소 적응으로 보냈다.

 

  9월 8일은 도전님 능소의 금초를 하러 방면 임원들을 모신 차량을 운전하는 영광을 얻어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다녀왔다. 전에 종종 참배하러 몇 번 왔기에 길도 알고 숙달되어 어렵지는 않았다.

 

  9월 20일 추석연휴 전날이 초강식이라 여주본부도장에서 강식마치고 원래 계획은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의 방면 수호자를 대신하여 며칠 동안 수호근무를 하기로 하였는데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방면차량을 운행하여 추석 치성 때 임원들 모시고 여주본부도장,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오갔다. 9월 24일 아침 일찍 속초로 향하는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도장에 와서 수호를 서면서 지난 시간을 떠올려 보니 9월 20일로 수도생활에 전념한지 100일째 되는 것을 알았다.

 

  100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필름이 돌아가듯 여러 가지 일들을 떠올려 본다. 수호근무, 정신없이 바빴던 연락소 적응생활, 참배, 치성, 기타 등등 표현이 부족하여 줄줄이 써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전경』, 『대순지침』 등 교리 연구를 집중적으로 하고 싶었다. 상황이 그렇지 못하였지만 수도하는데 한 가지는 정립(定立)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전경, 지침, 훈시 등에 많은 말씀으로 나와 있는 ‘심(心)’에 대한 나의 수도관(修道觀)으로 제일 중요하고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실행하는 『전경』 구절이다.

 

 

心也者鬼神之樞機也門戶也道路也

開閉樞機出入門戶往來道路神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

吾心之樞機門戶道路大於天地

 

 

마음이라는 것은 귀와 신이 용사(用事)하는 중추기관이고 문호이며 드나드는 도로이다.

중추기관을 여닫고 문호를 드나들며 이 길로 왕래하는 신이 있으니,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되,

선함은 스승으로 본받고 악함은 고치노라.

나의 마음의 중추기관 문호 도로는 천지보다 더 크다.

 

 

  마음먹은 대로 성취한 예를 들어보면 2010년 7월 1일부터 금연(禁煙)을 하여 현재까지 100일이 지난 셈이다. 1990년 9월부터 담배를 처음 피우기 시작하였다. 대학 3학년 가을 때라 생각되어진다. 가을을 타는 나는 가을엔 항상 무언가 허전하고 텅 빈 마음이며 싱숭생숭 하였다. 친구들은 거의 담배를 피우던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담배를 처음 배울 때 끊고 싶을 때 끊을 수 있을 것으로 마음이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피웠다. 그러나 군대생활의 GP, GOP 근무 등 사회 스트레스 생활을 하면서 끊을 생각은 종종 하였지만 실행에 옮겨 끊어 본적이 없었고 금연해야겠다는 의지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거의 20년을 피웠던 담배를 끊는 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3주 수호근무를 하고 나서 연락소 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담배냄새가 싫다고 하는 말이 거슬렸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담배냄새가 싫었고 밖으로 나가서 흡연하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리고 주신(酒神)이나 끽연신(喫煙神)이 있어 금주(禁酒), 금연은 이 신들이 떠나야 하는데 그것이 아주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지만 상제님께 심고(心告)를 드리면서 금연을 마음먹고 실행에 옮겨 현재까지 금연을 유지하고 있으며 금단(禁斷)증상은 느끼지 못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이처럼 금연하는 것도 마음먹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어렵지만 ‘或有善或有惡 善者師之惡者改之’처럼 때로는 선하고, 때로는 악하되, 선함은 스승으로 본받고 악함은 고치면서 항상 성(誠)ㆍ경(敬)ㆍ신(信)을 생활화하는 ‘마음 쓰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 현재 나의 수도에 대한 정의(正義)로 삼고 있다.  

                    

<2010년 9월 24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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