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화(松花), 소나무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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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관 작성일2018.04.20 조회5,114회 댓글0건본문
잠실36 방면 선무 김민관
저는 어려서부터 막연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분한테 아이디어를 얘기하며 도움을 구해보기도 하고,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같이할 사람을 모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실현하기는 너무 막연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또 인터넷에 만남 장소를 공지하고 가보면 저 혼자만 나와 있어서 씁쓸하고 참담했습니다.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이라 평소에도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일을 벌이고 다니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건 어떤지, 이렇게 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은지 물어보면 반응이 신통치 않거나 대답조차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번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못 하는 친구에게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자꾸 고민만 하냐?”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급한 성향 때문에 항상 오래 걸리는 일을 답답해하는 편입니다.
그런 제가 지금 도장에서 여러 해 동안 수호를 서고 있습니다.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라던 제 꿈이 도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한데 최근 너무 힘이 듭니다. 바로 수호 때문입니다. 수호가 도장과 진법(眞法)을 지키는 신성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는 솔직히 무료한 감정이 일어나 괴롭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수호가 중요하다고 교화를 들어도 제가 무엇을 위해 수호를 서야 하는지 모르겠고 그저 힘들기만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꽃피는 5월이 되었습니다. 여주본부도장에는 소나무가 많은데 매년 송홧가루가 날려 도장 곳곳이 노랗게 물이 듭니다. 하지만 마음이 힘들어서인지 올해는 예쁘다는 느낌도 들지 않고 그저 꽉 막힌 거리에 내리는 눈처럼 성가시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치성에 올리는 다식을 만들기 위해 송화 따는 일을 밤늦게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괴로웠습니다.
‘대체 왜 가루를 모아 음식을 만드는 거지? 이렇게까지 해서 다식을 만들어야 하는 거야?’
송화다식은 임금님께 올리는 진상품일 정도로 귀한 음식이고, 이렇게나 정성에 정성을 들인 음식을 상제님과 신명 전에 올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었고,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습니다.
‘거의 먼지를 모으는 수준이군.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정성을 들일 수 있을 텐데….’
이런 꼬인 생각 때문에 작업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마음은 점점 안 좋아졌습니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정신없이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에 영대 뒤편의 수호 초소에서 소나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전에는 송화를 무심히 봤지만 얼마 전 작업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터라 송화가 알알이 눈에 와 박혔습니다. 그러면서 마침 『전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느니라.”(교법 2장 34절)
눈앞에는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뻗어있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몇 년을 자랐을지 모르는 소나무들. 굵고 가는 소나무는 도장을 둘러싸고 영대를 굳건히 지키는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떤 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고, 오늘 한 일을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고 다시 긴 시간 정성을 들여서 하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오랜 세월 동안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이뤄집니다. 사람이 하는 일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그 정성 속에 살아가면서도 혼자만 마음이 급해서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때가 있는데 제가 못하고 놓치는 것을 영영 해결하지 못할까 봐 겁이 났고, 이런 초조한 마음이 제 자신을 다그치고 점점 옥죄어 왔나 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수호를 서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고 끝내는 무의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겠지요.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교법 1장 2절)라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외수 때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땐 머리로 이해는 되지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지금까지 내 것을 먼저 챙겨야 한다고 듣고 살았는데, 상제님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사람에게 때가 있다지만 내가 이때 뭔가를 놓쳤다 해서 그것을 정말 영원히 놓치고 마는 것일까? 진실로 수도하면 모여지는 정혼이 있어 훗날에도 남아 내가 놓쳐서 아쉬웠던 것을 해결하고 풀어낼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제님을 믿고 모든 일을 하루 만에 이루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천천히 공을 들여가다 보면 원하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인고의 시간 없인 만들 수 없는 송화다식처럼 긴 시간을 들여 수도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얻기 위해 ‘하루’라는 값지고 귀한 시간을 송홧가루처럼 모아 공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놓쳤다고 생각한 수많은 ‘오늘’은 송화처럼 내년에라도 십 년 후에라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날아간 송홧가루가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다시금 생태계의 양분이 되듯이 제가 놓친 것만 같은 오늘 하루도 무의미하게 사라지지 않고 다른 누군가가 살아갈 힘이 되어줄지 모릅니다.
다시금 선사의 말씀이 귓가에 스칩니다.
“김선무, 선각을 좀 더 믿어보면 어때요?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상제님을 믿고 기다리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예요.”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모든 일이 욕속부달이라. 사람 기르기가 누에 기르기와 같으니 잘 되고 못 되는 것은 다 인공에 있으니라”라고 가르치셨던 말씀을 항상 들어왔지만, 오늘은 유난히 가슴에 닿아서 박힙니다. 앞으로도 수호를 서면서 급하고 초조한 마음이 밀려오면 이 말씀을 되새기며 열심히 수호를 서겠습니다.
<대순회보 2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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