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를 닦는 감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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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중호 작성일2018.05.02 조회5,098회 댓글0건본문
잠실35방면 평도인 최중호
대순진리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과거의 삶을 반성하기보다 그로 인한 증오와 복수심만 간직한 채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왔습니다. 삶의 방식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를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삶을 살았고, 모든 것을 내 위주로만 생각하다 보니 대인관계에서는 늘 어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럴수록 삶은 더 고립되고 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인의 소개로 대순진리를 알게 되어 입도하게 되었습니다.
입도 후 이곳에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따뜻함이었습니다. 방면 도인분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세상을 전쟁터로만 여겨 얼어붙어 있던 가슴을 녹여 주었습니다. 홀로 객지 생활을 하던 저에게 따뜻한 관심은 마치 어머니 품처럼 느껴져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사실 입도 전에는 쉽게 사람들을 믿지 못해 대인관계가 어려워 많이 외로웠습니다. 하지만 입도 후 포덕소에 갈 때마다 그곳에 계신 모든 분이 저를 편견 없이 사랑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방면분들은 서로를 챙겨주며 저에게 좋은 이야기까지 해주시니 자연스레 가족같이 여겨져 발길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사람에 대한 편견도 많지만, 정(情)도 많은 성격이어서 닫혀있던 마음을 열고 방면분들과 대화하니 즐거움과 함께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입도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방면분들과 함께 열심히 수도했습니다. 바른 마음으로 수도하니 답답하고 불안정했던 마음도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입도 당시만 하더라도 억울한 사연으로 가슴이 답답하고 저를 억울하게 했던 사람들 때문에 견디기 어려울 만큼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입도 후 수련을 할 때마다 조금씩 증오와 복수심이 사라지고, 그토록 괴로웠던 마음이 점점 평온을 찾아가는 모습에 저도 놀랐습니다.
그렇게 입도 후 몇 개월이 지나고 여주도장에 참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도인들과 같이 교화를 들으면서 내용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듣고 도장 곳곳을 참배하였습니다. 대순진리회 성지인 도장을 처음 들어서는 순간 저는 건물에서 풍기는 한국적 고풍스러움에 매료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큰 사찰을 견학한 경험은 있지만, 분명 그곳과는 사뭇 다른 느낌일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엄숙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도장 참배를 마친 후 저는 앞으로도 계속 성심을 다해 도(道)를 닦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도를 왜 닦아야 하는지, 굳이 닦아야 하는지, 내가 열심히 해서 잘살면 되지 굳이 수도라는 것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집에서 잠을 자거나 지인들을 만나 술만 마셨습니다. 도를 떠나 있으니 도 안에서 지켜야 할 법도를 지킬 필요도 없고,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처음에는 즐거웠습니다. 이런 생활에 젖어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어긋난 삶을 살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수도와 멀어지니 포덕소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때 저에게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저에게 과분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이 있으면 늘 즐거워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추억도 쌓아나갔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제가 일상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 같다며 저에게 자주 충고했습니다. 저는 여자친구의 진심 어린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전과 같은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그로 인해 결국 여자친구와 이별하게 되었고, 이후 입도하기 전보다 더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문득 방면 선감께서 해주신 교화가 생각났습니다.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선감께서는 저에게 열심히 도를 닦으려 하면 겁액이 발동하기 마련이라며 척과 겁액을 잘 극복해야 한다고 교화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당시 저를 방황하게 하여 수도로부터 멀어지게 한 해태한 마음도 겁액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방황하던 시기에 종종 선각들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 꿈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이 있습니다. 꿈에서 선각들은 넓은 흙탕물에 떠 있는 큰 배에 저와 같이 타고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새로 산 구두가 흙탕물에 빠지자 구두를 건지기 위해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고, 그때 선각분이 저를 말렸습니다. 선각의 만류에도 저는 진흙탕에 빠진 신발을 건지겠다고 배에서 뛰어내렸는데,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내려와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저를 배 위로 다시 올려 주었습니다.
잠에서 깬 후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꾸어 본 적도 없었고, 꿈속에 선각분들까지 나타나자 문득 포덕소가 궁금했습니다. 힘든 마음을 이끌고 그날 저녁에 포덕소로 달려갔습니다. 포덕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날은 방면에서 성을 모시고 도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하는 자리였습니다. 오랜만에 연락도 없이 찾아갔음에도 선감께서는 “기운 많은 날만 찾아오네”라고 말씀하시며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셨습니다. 돌이켜 보면 아마도 그 꿈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방탕하게 생활하고 있던 저를 다시 수도하게 하기 위한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던 내면의 울림이었다고 여겨집니다.
한편, 저는 수도를 멀리하면서 직장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2012년 초겨울. 추운 날씨에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생활비 정도만 벌며 힘들게 지내던 중 ‘Z’ 회사로부터 면접 제의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본사로 오라고. 통화가 끝나고 너무도 기뻤습니다. 취업이 된 것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전날 포덕소에서 면접 잘 보게 해달라고 간절히 심고도 드렸지만, 너무 긴장되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면접 당일, 늦게 일어나 씻지도 못하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정신도 몽롱하고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이 면접 볼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사실 저는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희망 연봉도 제가 입사지원서에 적은 것보다 높게 받는 조건으로 근로계약이 체결된 것입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경쟁을 뚫고 입사한 직장도 1년 남짓 근무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인천에서 새로운 직장을 구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러 가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고생과 시련이 저를 성숙하게 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 일을 겪으면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힘들어도 성심을 다해 수도해야겠다고 다짐하니 후각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 한편에 이런 생각이 자리 잡으니 예전에는 내가 왜 포덕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입도한 지 10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지인을 입도시켰습니다. 포덕을 통해 진리를 전하고 수반을 챙기다 보니 도를 바르게 전하고 잘 이끌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반에게 바른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도를 더 열심히 닦아야 합니다. 앞으로는 매사에 감사하며 남을 잘되게 하면서 변치 않는 정심(正心)으로 수도에 임하고자 합니다. 이제는 마음속에 잠재한 방황을 종식하고 한마음으로 진리에 매진하며 오늘도 열심히 깨달음을 갈구합니다. 현재는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하며 도를 닦을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상제님!
<대순회보 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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