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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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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철 작성일2018.11.16 조회3,79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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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19 방면 교감 문정철   


  내가 입도한지 어언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들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다. 이제 2009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려 한다.


  대학 새내기 시절 나는 힘든 고3, 재수생활을 보내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캠퍼스의 봄은 여태까지의 생활과는 정말로 달랐다. 꽉 짜여진 틀 속에서 학교, 도서관,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던 생활에서 자유로운 복장과 두발, 미팅, 저녁이면 친구나 선배와 술 한 잔 등 자유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최루탄이었다. 1학년인 나는 왜 학교 정문에서 전경과 선배들이 대치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또 최루탄을 쏘면서 하루가 멀다 않고 싸우는 것이었다.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속에 한 학기가 지나고 기말고사 때, 학교 본부 앞마당에 전교생이 다 모인 듯 정말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우리 과도 학년별로 연락을 받고 기말고사를 안 봐도 된다는 말에 모였다. 집회가 시작되고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슴속에 무언가 뜨거움을 느꼈다. 그때 알았다, 우리 학교 학생과 타 대학 학생이 데모 중에 죽었다는 사실을. 더군다나 이런 명백한 사실을 정부와 기관 심지어는 방송, 신문 등 언론 매체들까지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 나를 더 혼란케 했다. 그때 나는 이 땅의 민주주의란 말뿐이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희생과 투쟁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집회와 거리투쟁은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까지 합세하였고 나와 동기들은 매일 거리로 나가 구호를 외치며 선봉에 섰다.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때 정부에서 우리가 외치던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자축하며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다가올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위한 꿈을 꾸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방학도 끝나고 2학기가 되자 나는 왠지 모를 공허함에 빠졌다. 마치 쉴새없이 달려온 마라톤을 끝냈을 때 오는 탈진 같은 것이었을까…. 당시 불교신자였던 나는 불교와 관련된 동아리를 찾아가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듣기도하고 또 행사에 참여해 보기도 했으나 나의 그 공허함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실망감이 밀려왔다. 동아리가 원래 불교정신인 자비, 참 나를 찾는 것과는 달리 학생운동과 정치투쟁 위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방황하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나에게 친구가 ‘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도’, 그것은 희망의 메시지였고 내 공허함을 채워주고 방황을 끝내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작된 도와의 인연을 더 이어가기위해 입도를 하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게 되었다.


 『전경』에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육십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그렇게 공을 들여도 자손 하나를 얻지 못하는 선령신들도 많으니라. 이같이 공을 들여 어렵게 태어난 것을 생각할 때 꿈같은 한 세상을 어찌 잠시인들 헛되게 보내리오.”란 말씀이 있듯이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 운동을 하며 방황하던 나를 입도시키려고 정성을 쏟으셨을 조상님을 생각하면 상제님의 덕화와 선령신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2010년을 맞이하여 과거의 나처럼 인생의 참뜻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상제님의 말씀을 전해줄 것을 다짐해 본다.

 
<대순회보>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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