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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톨의 소중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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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진영 작성일2017.02.16 조회3,6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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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 5방면 선무 허진영



  스무 살 갓 넘은 스물한 살 때 ‘도’를 만났을 때 사회 경험이라고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전부일 뿐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도 없었다. 그런 내가 도의 일을 한다는 건 모든 게 새롭고 두려웠다. 그리고 도를 만나기 전부터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었고 염세적인 기운들이 있어서 도의 일을 하다가 부족한 점들이 드러나면 업보를 벗어내고 이겨나가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기운을 내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곤 했었다.

이런 시간들이 자꾸 반복되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없어지고 도의 일을 적극적으로 하기보다 한 발자국 물러나서 하게 되었는데, 그런 나 자신의 수도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얼마 안 되서 이런 나에게 여주도장 식당 당번이라는 새로운 일이 주어지게 되었다. 처음 하는 일이란 생각에 또 불안감이 찾아왔고 하더라도 편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주로 밥만 지으면 되는 밥 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허나 그런 생각도 잠시 6~7인용 되는 작은 압력 밥솥에만 밥을 해 본 나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쌀과 높게 쌓여 있는 원형 스팀 찜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하는 첫날부터 많은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밥을 씻기 위해 통 안에 쌀을 붓다가 옆으로 쏟기도 하고 물을 너무 세게 틀어 쌀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하루 종일 바닥에 흘린 쌀 한 톨 한 톨 줍는 게 일이었다. 처음엔 인내심을 가지고 도의 쌀이란 생각에 일일이 주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주워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쌀을 바닥에 흘리면 도와주어야 된다는 생각보다 원망하고 싶을 뿐이었다. 또 다른 선각자분들께 쌀 한 톨의 소중함에 대한 도담을 들으면 그저 잔소리처럼 들리곤 했다.

하루는 안에서 밥만 하다가 해 놓은 밥을 밖으로 옮기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식당에서 많은 분들이 우리가 한 밥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게 한 밥이기에 밥 한 톨이라도 남기지 않고 싹싹 긁어 드시는 모습을 보고 보람도 느꼈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운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뜻 깊은 일이고 소중한 일인지를 깨달았다. 바닥에 흘린 ‘쌀 한 톨’이라도 그냥 버릴 수 없었고 무거운 쌀 포대를 나를 때도 적극적으로 나르게 되었다.

또 어떻게 하면 맛있는 밥을 할 수 있을까 연구하게 되고 다른 조원들과도 더욱 더 화합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나의 얼굴엔 항상 웃음꽃이 피었고 똑같은 상황인데도 몸도 힘들지 않고 즐겁게 도의 일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며칠 후 대보름 치성을 맞이하여 오곡밥을 하게 되었다. 예전에 쌀만 씻었던 것과는 달리 여러 가지 잡곡들을 더 세심하게 씻고 행여나 돌이라도 섞여 있지 않을까 재차 확인하였다. 또 치성이다 보니 수호자들의 식사만 준비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많은 양을 준비해야만 했다. 예전 같았으면 힘든 일이라는 생각에 버겁게만 느꼈을 테지만 그 일이 이젠 기쁨으로 다가왔다. 때론 실수도 하고 밥이 모자를 때면 자양당으로 뛰어가 밥을 얻어오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우리 조원들은 그럴 때마다 더 화합하여 일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일 작은 일 치러가며 어느덧 한 달 동안의 당번 생활을 뜻 깊게 보낼 수 있었다.

  여태까지 도의 일이란 것이 능력과 실력이 아니라 정성으로 하는 것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비록 바닥에 떨어진 쌀 한 톨일지라도 도에서 귀하게 쓰여지는 것을 보고 우리 도인들도 능력과 실력은 부족할지라도 남을 위하는 마음과 정성으로 도의 일에 참여한다면 누구든지 다 도에서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새삼 느꼈다.

  요즘은 시설이 좋아져서 그때 분위기가 되살아날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식당 당번 생활을 하게 된다면 그때 못지 않게 더 열심히 하고 싶다.


<대순회보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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