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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겁액이라는 큰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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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심일만 작성일2020.07.01 조회3,70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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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57 방면 선무 심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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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20대에 입도하여 어느덧 40대가 되었습니다. 공자가 말씀한 ‘불혹’의 나이 40대에 들어선 것입니다. ‘불혹’ 이란 뜻을 풀이하자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의 모습은 아직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 유혹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신앙인들 대부분, 종교를 믿는 이유 중 하나는 ‘종교적 체험’일 것입니다. 종교적 체험은 종교를 믿게 하는 많은 동기와 기회를 부여하기 마련이어서, 저도 입도하기 전 기독교에 대한 종교적 체험을 통해 신앙에 접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교리를 실천하지 않는 몇몇 목회자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신앙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입도한 수도인들은 누구나 수도를 하게 된 경위와 사연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처음 도에 입도하고 나서는 도의 깨달음과 믿음, 소명의식에 수도했다기보다는 나름대로 종교적 체험에 의존해서 도를 닦은 것 같습니다. 외수 때에는 미약한 종교적 체험을 깨달음으로 생각하고 나름 수도를 한다는 생각으로 임했었는데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저에게 있어 강하게 떠오르는 키워드는 ‘믿음’이라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대순진리회요람』에 적혀있는 믿음에 대한 글들은 너무 어렵고 난해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실 무슨 일을 당하든 머리로 계산하기 좋아하고 분석하기 바쁜 저로서는 전폭적으로 진리를 믿고 나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임이 분명했습니다.

  선각들께서는 ‘믿는 마음이 크고 도에 대한 큰마음을 내야 한다’ 말씀하시지만, 막상 겁액이 발동하면 넘어야 할 고비 앞에서는 주저하고 넘어지기 일상이었습니다. ‘믿음’은 옛적부터 구도자와 수도자의 염원에 대한 열쇠로 작용했고 그 믿음은 범인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지임이 분명합니다. ‘너의 믿음을 보여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는 상제님의 말씀에서 보듯이, 진표율사의 육신을 부숴가면서 도를 구한 ‘망신참법’과 여동빈이 스승으로부터 겪은 10가지 시험 등에서 보듯이 믿음을 보여야 덕화를 입는 듯합니다.

  수도하면서 자신의 직분이 더해지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복을 지을 기회와 수도의 역량을 키울 기회가 온 것일 수 있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기회가 작년에 찾아왔습니다. 방면에서 차량을 운행해줄 운전기사를 맡게 된 것입니다. 처음엔 운전을 좋아하고 도의 여러 가지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기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하는 말처럼 도의 일을 성심껏 하려고 하니 신고(身苦)가 찾아왔습니다. 발목이며 무릎, 허리며 등에서 목뼈까지 뼈와 뼈가 만나는 부위라면 안 아픈 곳이 없었습니다. 교화를 듣고 전경과 지침을 봐왔음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찾아오는 겁액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습니다. 평소 축구와 농구, 달리기 등 격한 운동을 좋아하던 저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승패에 집착하며 꼭 이겨야 속이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침대에 누워 고통만 받으며 병이 나을 날만 기다리며 이런 불운을 겪는 저를 한탄하며 괴로워했습니다. 의술의 힘을 빌어 병을 고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치료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고 의사들도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손목, 발목이 아파 걷는 것도 제한적이었고, 15분 정도 걸리는 회관에 가서 기도 모시는 것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큰마음을 먹고 기도 모시고 오면 더 통증과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정성과 믿음을 망각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선각은 회관에 와서 꾸준히 정성 들여보라는데, 회관에 다녀오면 그날부터 일주일을 꼬박 누워있어야 회관 가기 전 상태로 간신히 회복되니 이렇게 하다가는 병이 언제 나을지 모른다는 불안에 회관에 가는 걸 그만두게 되었습니다.그렇게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깨달음이 부족하고 수도력이 약한 저에게는 이 병이 태산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이것은 병이고 병과 겁액은 다른 것이니 도의 정성과 믿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란 생각이 강하게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선각분께서는 회관에 와서 기도를 모시며 정성을 들이자고 말씀하시는데 저의 생각은 바뀌지 않고 의술에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병원비도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금액이 들어가고 갈수록 병원비에 대한 부담이 마음을 옥죄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니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선각과 관계도 너무 힘들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때 저의 마음 상태는 선각의 말을 믿어야 하는데 몸의 반응은 더 커지는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기에 ‘선각의 교화’는 믿기 어렵다는 불신의 상태였습니다. 교화는 딴 세상 말들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은 강했기에 의사를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명확한 처방은 없었고 치료가 미궁으로 자꾸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엔 더 큰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받으라고 했습니다. 점차 병원에 대한 믿음도 사라져 갔습니다.

  급기야 모든 걸 체념하다시피 했고, 해결책이 없다는 생각에 낙담하는 마음이 완전히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렇게 병든 몸과 마음으로 송장처럼 누워만 지내던 저에게 새롭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무심히 멍하게 시간을 보내던 저에게 어느 날 선각에게 메시지가 왔습니다. 내용은 《대순회보》에 실린 글이었습니다. 글은 저의 상황과 너무도 유사했고, 정성과 믿음으로 풀어나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나면서 도의 정성과 믿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저의 병마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란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희망을 품고 회관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천 리 같았던 회관까지의 거리가 차츰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고, 기도도 1시간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몸이 느끼는 통증이 줄고, 이것이 겁액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인식하면서부터 내 육신의 통증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통증은 병이 아니라 겁액이었습니다. 이제 저를 괴롭히던 통증이 병이 아니란 믿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믿지 못하는 불신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단 말인가!’

  믿음으로 이 겁액을 극복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부정적이고 절망적으로 생각하게 유도하며 부추기지만, 이것은 겁액의 작용이라 되뇌며 생각하기로 마음먹자 통증은 사그라들며 예전에 몸이 아파서 하지 못했던 일들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회관에 작업이 있어 망설여졌지만 참여하게 되었고 20kg이나 되는 무게도 거뜬히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믿음이란 겁액이라는 큰 강을 넘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이란 걸 느꼈습니다. 꽉 막힌 상황에서 재생의 길로 인도하여 준 것입니다. 징검다리를 따라만 간다면 무사히 물에 빠지지 않고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믿음은 큰 강에 빠지지 않고 건널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인도자입니다. ‘자각이 없으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란 『대순지침』의 말씀처럼 확실한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스스로 노력해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자그마한 노력으로 믿음을 얻으려고 했던 지난날 저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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