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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한 발 풀어가는 마음의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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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성원 작성일2020.06.30 조회4,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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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 방면 평도인 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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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선각께 들어온 교화를 되새기며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 삶에 한 번뿐인 치성을 모시기로 마음먹었다. 선각께 날을 잡아 달라 전화를 드렸더니 20일이 좋은 날이라고 의향을 물어오셨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하고 싶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당장 해야겠지만 날이 좋다고 하니 그날로 결정했다. 

  전화 끊고 머리를 감고 말리는데 갑자기 어지럽기 시작했다. 작년에 대형 상점에 갔다가 이런 증세를 겪은 적이 있었기에 크게 당황하진 않았다. 금방 나아지리란 기대와 달리 심하게 어지럽더니 구토가 나기 시작했다. 심장도 두근두근 빨리 뛰었다. 침대에 잠시 누웠다가 좀 괜찮아진 듯해서 일어났는데 또다시 어지럽고, 메스껍고, 요동치는 심장 때문에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진정해보려 했으나 점점 심해지는 낯선 상황들이 바닥에 엎드려 신음하게 했다.

  겨우 선각께 내 몸이 이상하다고 전화를 걸었다. 저리고 어지럽고 구토에 격한 심장박동들이 분노의 질주를 하듯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다. 계속 할딱거리는 숨을 내쉬며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통화를 이어갔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눈을 감아보라 하셔서 감았더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 듯 안정되었다. 그런데 오른쪽 발끝이 저리면서 종아리로 이상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빠른 속도로 전력 질주하고 있는 심장은 제재가 되질 않았고 다른 증상들도 통제권 밖에 있었다. 종아리로 올라온 기운이 계속 강하게 허벅지로 이동했다. 이제부터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죽을지도 모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각은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며 아들을 부르라 하셨지만 나는 정신력으로 버티기로 했다. 증상이 심해지면서 온몸을 비틀어 짜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허벅지에 있던 기운이 이제는 오른팔로 올라와 곧바로 심장 쪽으로 옮겨갔다.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위쪽으로 이동하는 이 기운들, 내 몸과 마음은 이성을 챙기고 사태를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정복당한 듯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태을주를 외우며 심호흡을 하고 상제님을 생각하며 천천히 숨을 마시고 내쉬기를 해보라는 선각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증상이 서서히 진정되었다. 100m를 전력으로 달려와 골인 지점에서 속도를 늦추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고 심장에 있던 강한 기운들이 이제는 왼쪽 팔을 따라 허벅지로 종아리로, 또 발끝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발끝으로 들어온 엄청난 기운들이 무언가를 몰고 한 바퀴 내 몸을 돌아 왼쪽 발끝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미처 준비할 시간조차 없었던 무방비상태의 난, 내 생애 처음으로 상상할 수 없었던 엄청난 힘, 강한 그 어떤 세계를 온몸으로 느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갔다. 몸과 마음이 서서히 정상궤도로 올라가자 갑자기 타는 듯한 갈증이 찾아왔다. 침대에서 서서히 일어나 물을 마시러 발을 내딛는데 다리에 힘이 다 빠져 버렸는지 비척거렸다. 옆에 있던 화장대를 잡고 우연히 올려다본 거울 속의 내 모습에 내가 놀랐다. 얼굴이 부어 있었고 한참 울고 난 모습이랄까? 부숭부숭한 금방 아이를 낳은 산모의 모습이랄까?

  살살 걸어 나가 물을 마시며 차츰 마음도 다스리기 시작했다. 몸이 힘들었던 만큼 내 마음도 몹시 당황하고 힘들었을 테니까.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을 끌고 침대로 다시 올라와 앉았다. 선각의 잘 이겨내셨다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설움이 복받치는 것처럼 소리 내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내 안에서 얼마나 힘드셨어요”. 나도 모르게, 정말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이 한마디.

  내 안의 어떤 존재들의 한, 어쩌면 내가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대변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다. ‘네 맘 다 알아. 미안해 힘들게 해서. 날 용서해주지 않겠니?’ 이런 나의 마음이 충분히 전해진 것 같았다. 선각의 안도하는 목소리가 전화기 속에서 들려왔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걸 보니 이제 다 풀린 것 같네요. 잘 이겨내셨습니다.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많이 당황했는데 잘하셨습니다.

  나는 그제야 수없이 반복되는 윤회 과정에서 지은 내 업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아릴 수 없는 작은 점들이 모이고 모여 큰 덩어리를 이루고 내 가슴에 들어앉아서 내가 알아주길 기다린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이제야 품어주고 용서를 구하자 내 목소리에 내 눈물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결국 내 안의 그들의 것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는 표현이 딱 맞다 생각했다. 상제님과 천지신명의 기운이었을까? 아니면 내 안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절규하며 날 괴롭혀왔던 어떤 존재들의 기운일까? 아무튼 내가 용서를 빌어야 했고 그들이 나의 사과를 받아들인 것 같았다.

  이틀 후 아침부터는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던가?’ 생각이 들 정도로 꿈을 꾸고 난 듯 아무렇지 않게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입도치성까지 1주일도 안 남았지만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저런 일을 겪어오면서 본능적으로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이 아닐까? 과연 내가 정한 날에 치성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을까? 그날이 과연 내게 올까? 그날이 오기도 전에 많은 복마로 인해 포기하지는 않을까?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순간순간 긴장하고 조심스러워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치성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편으론 돌봐 주시겠지, 그 어떤 역경이 새로이 와도 이겨 낼 수 있게 해 주시겠지 스스로 위안을 하며 하루하루를 숨죽이며 기다렸다.

  그날의 큰 파란을 겪고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김포공항터미널. 여기저기 무거운 안개 때문에 비행기들이 연착 지연되는 방송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내가 타고 갈 비행기도 연착되어 치성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내가 못 가면 취소할 수밖에 없다는 선각의 말씀이 떠오르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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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터미널 안을 서성대며 심고를 드렸다. 아무리 힘든 고난이 와도 ‘기어서라도 가겠다’ 다짐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발목을 붙잡힐 수는 없다며 정 안 되면 KTX라도 타고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내가 타고 갈 비행기는 제시간에 출발했다. 활주로를 선회하다 한참을 서 있길래 또 긴장했다. 고장일까? 다행히 출발선에서 대기하는 상황이었다. 도착하니 그 바쁜 와중에도 선각께서 마중 나와 계셨다. 치성 날짜를 길일로 잡아주시고 도와주실 분들을 모아 장보기부터 음식 장만, 상차림까지 이 모든 행사를 주관하신 선각께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이었다. 차에 올라 오늘 행사 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큰 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서니 멀리서 보이는 단아한 건물 하나. 그곳이 바로 지금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게 해 줄 회관이었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리되어있는 곳. 마음이 참 편안했다. 문득 올려다본 지붕 아래로 예쁜 단청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점에서 굵고 큰 선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제 색깔들이 서로 조화롭게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있었다. 어디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은 없었다.

  회관 건물과 이 아름다운 단청을 전문가들이 아닌 도인들 모두가 한마음으로 서로서로 시간을 나눠가며 직접 하셨다는 말씀은 정말 믿기 어려웠다. ‘정성이 모이면 불가능한 일은 없구나.’ 도문 안에 들어오면 안 되는 일은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리라. 가슴 한가득 심호흡으로 그런 도의 정신을 느껴보려 애썼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하면서 엄숙함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며 숙연해지는 느낌, 뭐랄까 압도된 느낌이랄까. 조용한 방에서 내게 한복을 입혀주고 절하는 방법과 다른 예법을 가르쳐 주실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절하시고 세심하게 맘 써주시는 집례자 분을 따라 이것저것 연습했다. 그런 후 하늘의 운을 받을 큰방으로 옮겨와 열심히 치성을 준비하시는 도인들과 인사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나 대신 기꺼이 해 주시는 분들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었다.

  어색하게 서 있는 내게 일거리를 주셨다. 대추 닦기. 그 많은 대추를 깨끗이 씻어 한 알 한 알 정성을 담고 마음을 담아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아내는 모습은 여태껏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작은 것까지 끝도 없는 정성을 쏟을까? 놀라움과 감격스러움 그 자체로 내 가슴은 꽉 차 있었다. 내가 보낸 적은 치성금에 이토록 큰마음을 써 주시는 도인들.

  시간이 되어 치성을 시작했다. 집례자가 알려 주신대로 절을 올리고 녹명지를 태우고 하나하나씩 이어지는 절차를 차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위대하고 어마어마한 진리의 숲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심고를 드리기 시작했다.

 

 

상제님의 덕화, 그 진리의 숲에서 공부하고 수도하며 깨달음의 행복 속에서 하늘의 뜻에 가까워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의 세계로 인도해주신 선각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 속에서 매일매일 삶을 깨우쳐가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상제님의 덕화, 다 갚을 수 없음에 그 감사함은 더욱더 커지고 내가 살아갈 길을 더욱 단단히 다지게 합니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정성과 기도 그리고 정신과 영혼의 수행과 수련으로 내가 여태껏 쌓아오고 지어왔던 모든 업보를 풀고 해원하며 참된 인간완성의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나를 위하고 모두를 위하고 세상을 위해서 한시도 도를 놓지 않고 상제님의 일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다행히 순조롭게 치성이 끝났다. 음복하고 올라오는 길, 겨우내 극심한 가뭄 때문에 사람도 자연도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시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차게 세차게 쏟아붓는 빗물은 어쩌면 내 가슴속에도 내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빗줄기를 따라 내게 와 있던 많은 힘듦과 상처와 고통, 분노, 슬픔의 얼룩들이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에 깨끗이 씻기지는 않겠지만 욕심내지 않고 한 발, 한 발 나아갈 것이다. 너무도 크고 버거운 마음의 짐을 벗은 것 같다. 누구에게 떠맡긴 것도 아니고 던져버린 것도 아니다. 상제님의 덕화와 연결된 많은 은혜와 축복 속에서 제자리로 돌려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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