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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선물해준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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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태주 작성일2021.04.18 조회3,5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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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30 방면 선무 안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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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경주의 한 양조장 집 막내딸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고생을 모르고 자라 밝은 성격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야 세상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성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으나 워낙 고집이 세고 일방적이라 맞출 수밖에 없었고 하나뿐인 딸은 어려서부터 몸이 자주 아픈 데다 예민하고 심적 갈등이 많아 늘 힘들어했습니다. 딸도 고집이 아주 셌고 학교를 갔다 오면 학교를 관두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쳤습니다. 유난스러운 딸을 잘 키워보려고 아동 상담과 심리 치료 등 좋다는 것은 다 해보았으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은행 지점장이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었으므로 저의 유일한 고민은 딸이었습니다.

  그러다 딸이 20살 될 즈음에 집안에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투자한 곳이 안 좋은 일에 휘말려 잘못되었습니다. 남편은 그 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고 세 식구는 각자 생존을 위해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 앉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저는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막막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이고 꿋꿋한 성격인지라 어떻게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갔습니다. 딸은 학교를 그만두고 독립하여 자기 앞가림을 하려 했습니다. 저도 여유가 없었기에 딸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딸이 저에게 같이 갈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간 곳은 바로 포덕소였습니다. 딸은 그동안 수도했고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집안의 겁액을 풀어야 좋아진다며 저에게 입도를 권했습니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물었더니 대순진리회라고 했습니다.

  저는 바로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왔습니다. 당시 저는 종교에 대하여 회의적이었고, 대순진리회에 대한 인식도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짧은 순간 딸에 대한 배신감과 걱정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딸은 버선발로 뛰쳐나와 얘기 좀 하자며 저를 붙잡았고 저는 정색하고서 딸을 뿌리치고 회사에 가야 한다며 다급하게 걸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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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은 저를 따라오면서 제가 듣든 말든 계속 이야기를 하며 1시간을 걸어갔습니다. 저는 “내가 너 하는 건 말리지 않을 테니, 나보고 하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라. 너나 수도 많이 해라.”하고는 사무실로 들어왔습니다. 사무실에 앉아서 혼자 3시간 동안을 생각하며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아는 거 있니?’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을 키우면서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제 걱정거리를 딸에게 얘기하면 어떻게 하면 되겠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했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이렇게 딸의 판단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딸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딸이 간절히 얘기하는데 생각해 보고 결정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도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입도한 후 딸이 이끄는 대로 정성도 들여보고 주일 기도와 치성 등의 행사에도 참석해 보았습니다. 막상 입도해서 경험해보니 대순진리회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수도인들은 도의 법방에 맞추어 올바르게 수도했고, 그런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기도를 모시러 갈 때마다 회관에서 교화를 해주셨는데 거기서 들은 교화가 많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도를 알아보니 대순진리회가 올바른 곳인 건 알겠는데 막상 도에 대한 믿음은 잘 생기지 않았습니다. 후천이 오고 운수를 받는다는 것이 저에게는 너무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그렇게 힘들어했던 딸이 도를 닦으면서 180도 변한 모습을 보면서 도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막연한 생각으로 수도 아닌 수도 생활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때부터 저에게 조금씩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만만하던 저에게 약한 부분이 하나 있었습니다. 몸이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건강에 대해서는 두렵고 무슨 병이 생길 것 같고 어디가 아플 것 같은 느낌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정기적인 검사도 꾸준히 받으면서, 어디가 안 좋다 싶으면 병원에 가는데, 그때마다 늘 불안하고 무서웠습니다.

  어느 날 의자에 옆구리를 심하게 부딪쳐서 갈비뼈에 금이 갔고 그 일로 정신적 문제가 생겼습니다. 옆구리가 영영 낫지 않을 것 같은 불안증으로부터 시작해 우울감과 무기력증이 생기면서 팔과 다리를 비롯해 온몸에 기운이 빠져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먹는 것도 좋아하고 입맛도 좋던 제가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나질 않아 식사때마다 고역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밖에도 나갈 수도 없어 집에만 누워 있었습니다.

  선각분들과 딸은 그것은 겁액이라고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은 병이니 정성을 들일 것이 아니라 의학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병원 저 병원, 한의원, 침술원 등 온갖 데를 다 다녀봤지만 아무런 병명도 나오지 않고 신경성이라고만 했습니다. 분명 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불안하고 무서울 수가 없었습니다.

  신경정신과 약까지 먹으면서 생각도 바꿔보려고 하였지만, 효과가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았는데도 차도가 없자 저는 선각분들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성을 들이면 나을까 하는 생각에 선각분들께 거듭 여쭤보았습니다. 그때마다 선각분들은 마음으로 깊이 정성을 들이면 분명히 앞길을 열어 주실 것이니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믿고 꾸준히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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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힘들고 괴로워 간절한 마음으로 심고를 드리고 기도를 모셨습니다. 이제까지 저만 믿고 자신만만하게 살아왔는데 이 겁액이라는 산 앞에서 저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무력한 존재였습니다. 갈까 말까 망설이고 기운이 없어서 누워서 움직이지를 못하니 딸이 저를 포덕소에 데리고 갔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겨우겨우 기어서 가다시피 했는데 막상 기도를 모시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도 이 불안하고 괴로운 상태로 기도를 모시기가 힘들어 매일매일 사투를 벌였습니다.

  한번은 기도를 모실 때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 목소리와 다르게 쉰 소리가 나고 목소리가 갈라지면서 또 다른 목소리와 같이 주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무섭기도 하고 놀랐습니다. 선각분들은 척에 대한 교화를 해주시면서 전생에 제가 누군가를 아주 힘들게 했기 때문에 그 척이 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며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라 하더라도 반성하면서 내 허물을 뉘우치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런 얘기는 그동안 많이 들어왔지만, 그때처럼 와 닿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늘 반성하면서 태을주를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생겨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고를 드리고 기도를 모셔도 괴로움과 불안감이 가시지 않자 저는 상제님께 ‘상제님, 제가 앞으로 외면하지 않고 상제님의 일을 열심히 할 테니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매달렸습니다. 사실 저는 딸이 포덕을 해보라고 하여 딸을 도와주는 심정으로 하긴 했지만 왜 포덕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잘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아프니 내가 해야 할 일을 외면해서 이렇게 아픈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도를 닦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딸을 옆에서 도와줄 뿐 내가 수도를 하고 포덕을 하는 것에는 감흥이 없었습니다. 이번 시련이 저에게는 많은 생각의 변화를 불러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니 자신을 대해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면서 이제껏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자존심과 체면 등을 붙잡고 나 잘난 맛에 살아왔습니다. 아프고 나니 그런 것들이 너무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가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착했던 것들이 부질없다고 느껴지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나으면 마음을 담아 포덕을 해보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매일 같이 마음 깊이 정성을 들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노력을 한 지 30일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차도가 보였습니다. 도저히 나아질 것 같지 않던 병이 나아지자 마음속에서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솟아나 정성을 꾸준히 이어나갔습니다. 49일이 넘어가자 몸과 마음이 많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이후로도 매일 기도를 모시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프기 전과는 많은 것들이 변화한 것 같습니다. 시련을 겪을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이 시련이 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는 제가 수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도를 닦아서 그렇게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의 의미나 가치를 많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상제님에 대한 믿음과 도의 감사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상제님의 덕화를 받은 만큼 보은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진심으로 도를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입도하고 많이 더디게 왔지만, 지금이라도 상제님의 뜻을 받드는 포덕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시련을 통해서 새로 태어난 만큼 상제님을 믿고, 진심으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살려주신 상제님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신 선각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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