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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상생,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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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성미 작성일2021.03.01 조회3,5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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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31 방면 선사 양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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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관에 있는 ‘해원상생’ 그림을 보면 사람들은 다 좋아합니다.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져서일까요? 짐을 한가득 머리에 이고도 미소짓는 어머니의 인자한 표정. 선각자라면 이런 마음을 본받아 후각에게 자애로운 어머니의 마음을 써야 한다고 교화를 하면 누구나 다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던 과정이 생각나고 수도하는 저에겐 참 쓰기 어려웠던 해원상생의 마음이었기에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그림을 전공했기에 도에 관련된 그림도 잘 그릴 수 있다는 멋모르는 패기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던 선무 때였습니다. 회관공사를 받들 기회가 와서 주저하지 않고 그림 조에 소속되어 작업했습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닌 도의 핵심 사상이었기 때문에 도에 맞는 마음을 가지고 그려야 된다는 교화를 들었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같이 작업하는 선사도 열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의 모습을 그려서 보여드렸더니 그림을 보시고는

  “음… 어머니 포즈가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 다시 한번 그려봐.”

  이 말씀을 듣고 정성이 부족한 건지 걱정하며 다시 한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림을 지우고 완성해서 보여드렸습니다.

  “그래도 어색하네. 왜 그럴까?”

  선사께서 고심하시더니

  “양선무가 한번 한복을 입고 해원상생 어머니 포즈를 취해서 사진을 찍어보자. 그걸 참고하면 좀 더 좋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저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막상 한복을 입고 머리에 짐을 들고 있는 포즈에 보자기까지 질끈 동여매고 자세를 취해보려고 하니 제 모습이 참 우스웠습니다

  ‘대학생인 내가 애를 낳아본 적도 없으면서 그림 잘 그려보겠다고 이런 것을 하다니 괜히 쑥스럽네!’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하며 이 포즈로 사진을 찍고 참고하여 그리니 훨씬 자연스러운 그림이 그려져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어머니 포즈는 훨씬 좋아졌는데 표정이 조금 부족하다. 어머니 표정이 좀 더 사랑스럽게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아.”

  이 말씀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어떤 것 하나 쉽게 그려지는 법이 없구나, 에휴….’

  마음을 쥐어짜 내어 그렸지만 사실 ‘해원상생’을 보면 저는 자동으로 어머니 생각에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때문에 많이 외면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7살 때 아들을 낳았다는 기쁨에 갓 태어난 남동생을 안고 시골 외할머니댁에 내려가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그날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보조석에 앉았던 외삼촌은 안전띠 덕분에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사고 이미지가 사진을 찍은 듯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한동안 트라우마로 힘들었다고 저한테 얘기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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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가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 이미 머리엔 피가 흥건해서 숨은 멎었는데 품에 아이는 꼭 안고 놓지 않더라.”

  저는 이 말을 듣고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신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운전하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남동생도 미웠고 나에게 이런 사고를 안겨준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해원상생 그림을 보면 수학 공식같이 어머니의 마지막 이미지 잔상이 떠올라서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은 시일 안에 완성해야 하는 것이어서 마음을 바꿔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스로 원하는 만큼 좋은 표정이 나오지 않아도 지우고 다시 그리는 반복의 연속. 나름 조금 나아진 표정이 그려진 것 같아 안심하던 중, 같이 작업하던 선사께서 제가 고민하면서 그린 그림을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지우고, 다시 처음부터 그리고 계셨습니다. 서운한 감정이 폭발하고 제가 열심히 그렸던 흔적이 없어지니 속상했습니다. 마음에 척이 걸려 그림 그리는데 잘 집중도 안 되었습니다. 입술이 오리같이 나와서 선사께 서운한 마음을 얘기하기도 했지만, 화가 잘 안 풀리면 투덜이 스머프처럼 투덜대며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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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가면서 누구나 다 관심의 눈길이 ‘해원상생’으로 향했고 몇 마디씩 하곤 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소머즈 귀가 되어서 들어보면 그때마다 꼭 부정적인 얘기였습니다. 어머니 짐이 너무 많아서 무거워 보이네 업혀있는 아이 얼굴이 귀엽지 않다는 등 여기저기 민원이 들어오면

  ‘아 그럼 당신들이 직접 그려보세요~ 나도 노력한 게 이거라고요.’

  라고 속으로 외치다가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해원상생의 그림인데 마음을 잘 먹고 작업을 해야지’

  솥을 아홉 번이나 옮겨 걸면서도 스승에 대한 믿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구정선사도 불만 없이 하셨을 건데 내가 이런 마음 먹으면서 작업하면 안 되지 마음을 낮추고 감정을 내리자, 그림을 고치는 것처럼 마음도 고쳐먹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0번도 넘게 지우고 그리고를 반복하니 마음에 한계가 왔습니다. 매운 음식이라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선사께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식당가서 고추장이나 먹고 오라는 겁니다. 선사도 제 문제 말고라도 어지간히 힘든 듯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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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량한 내 신세,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어 가면서 작업하고 있다니’ 하는 마음도 잠시. 계속 우울하게 있을 순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열심히 그림을 그리겠다는 마음을 잡고 붓도 잡고 그림을 그리니 생동감 있는 표정의 완성으로 그림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선각도 도에 이미지에 맞는 ‘해원상생’이 나온 것 같다고 좋아하셨습니다.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여러 과정이 많았기에 그리고 도의 일을 하려면 거기에 맞는 마음을 써야 하기에. 과정은 너무 힘들지만 완성하면 뿌듯하고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을 보면 마음이 찡합니다.

  세월이 흘러 수도를 하고 선사가 되어 후각을 키우면서 마음을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먼저 가신 어머니의 마음이 이젠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안 주고 인사도 없이 가셨다고 원망만 했었는데 해원상생의 핵심,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희생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신 어머니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뿐입니다. 그 마음을 닮아가기엔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저 또한 그렇게 행하면서 도의 일을 받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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