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방면 장옥분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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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05 조회2,701회 댓글0건본문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이는 누구나 나이가 들면 신체가 쇠약해지고 열정이 식을 때 흔히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고, ‘인생은 60부터’라는 말도 있듯이 마음가짐에 따라 우리네 인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번에 소개할 포항방면 장옥분 선감은 연세가 지긋해 몸은 비록 젊은 사람에 비해 외소하지만, 자신이 평생 사명으로 여겨온 ‘수도의 본분을 지키는 마음가짐’은 생기발랄한 젊은이보다 더 굳건한 열정을 가지신 분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대구 반야월 회관을 찾았을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장옥분 선감은 마치 친어머니처럼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장옥분 선감은 1927년 2월 8일 생으로 1975년 (음)6월 2일 입도(入道)하셨으며, 1983년 1월 23일에 선감 임명을 모셨다.
입도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병원도 약도 그리 흔치 않아 병치레를 한번 하면 나을 수 있는 병도 쉽사리 낫지 않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또래 친구들에 비해 몸이 허약해서 평소에도 자주 몸이 아파 늘 육체적 고통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갑자기 중병을 앓게 되었죠. 이런 제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지 가족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이름난 병원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주었습니다. 저는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그 병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녔지만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주위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곳이 있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곳을 찾아다니며 병을 치료하고자 애썼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노력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저와 비슷한 증세를 가진 사람이 절에 불공을 드려 완쾌했다는 소리를 듣고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려도 보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굿도 여러 번 해보았습니다. 정말이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해볼 만한 것은 다 해본 것이죠. 그러나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하루는 가까운 친지 한 분이 찾아와서 다른 곳에 정성을 들이는 것보다 도(道)에 정성을 드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거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귀담아 듣지 않고 몇 번이나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정성을 한두 번 들여 본 게 아니기에 쉽게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병을 치유하느라 돈도 많이 쓰고 심신(心身)도 지칠 대로 지쳐있어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찰나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이번에도 안 되면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친척분(선각인 조동희 교감)의 권유대로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저와 도(道)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병을 낫게 해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입도(入道)하게 된 것이지요.
그 이후로 어떤 변화가 왔습니까?
입도치성을 드리고 나니 정말이지 심신(心身)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병을 앓느라 어두웠던 마음이 편안해졌고 신체적 고통도 조금씩 사라지며 병이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죠. 그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 무렵, 저는 몸의 불편함보다 도(道)의 진리와 법방(法方)을 이해하는 데 여념이 없었죠. 몸이 아픈 것은 그 다음 문제였습니다. 하루하루 선각의 교화를 듣고 수도에 심취하다 보니 이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아마도 마음이 편안해져 모든 것을 새롭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입도 후 저는 매일 같이 선각의 교화를 들었고 선각의 권유에 따라 포덕(布德)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제님의 덕화(德化)를 만방에 알리고 여러 사람들을 감화(感化)시켜 나가는 과정 속에서 저 스스로도 많은 것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포덕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병은 완치에 가까울 정도로 회복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막상 도(道)에 매진하여 잘하려고 하니 이제는 병이 아닌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게 되었죠. 상제님께서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로 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의 발동이 있으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말씀하셨듯이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 화(禍)가 먼저 따르기 마련인가 봅니다.
제가 겪었던 복마란 제 앞의 많은 도인들이 수도생활을 게을리 할 뿐만 아니라 방면에 들어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수도의 마음이 해태해진 것이지요. 정말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급기야 도(道)를 떠나는 도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더 수도에 매진하고 상제님의 진리를 펴야한다는 생각과 “남을 잘 되게 하라”는 훈회를 되새기며 도를 떠난 사람들을 비방하기보다 그들이 잘 되길 기원했습니다. 그 후 더욱 열심히 포덕에 매진했는데, 그때 지금 동부회관을 책임지고 있는 윤월연 선감을 포덕하게 되면서 사업이 봇물 터진 듯이 커졌습니다.
한편, 입도초기에 남편은 제가 대순진리회에 입도한 것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처음에 제가 가정도 모르고 다닌다며 못마땅하게 여긴 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크게 반대하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포덕을 열심히 하다 보니 가정에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 도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가화(家和)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가정에 조금은 소홀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만약 몸이 아프지 않았다면 이렇게 큰 진리를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그때는 힘들었지만 도를 만나 이렇게 큰 복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당시 포덕사업은 지금과 많이 다른 것 같은데요?
부족하지만 포덕을 하다 보니 수반이 조금씩 모이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선감께서 교화를 하신다며 도인을 누구 집에 모으라고 하셨습니다. 70년대 중반은 전화 보급율이나 교통편이 좋은 때가 아니라서 수반을 모으려면 도인들의 집을 일일이 걸어가서 방문해야만 했습니다. 지금은 휴대폰에다 자가용이다 얼마나 편리해졌나요. 그렇게 비교해 보면 지금은 포덕하러 다니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진리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선각이 오셔서 한 번씩 교화를 해주실 때마다 진리를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진리가 너무 좋아 다시 포덕을 하러 다녔습니다.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선무 임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도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내 자신이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겁이나 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감께서 믿음을 가지고 하면 된다고 하셨기에 임명을 모셨고, 얼마 안 있어 다시 선사 임명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감 임명은 1983년도에 모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선감 임명을 빨리 모신 편인데, 이 모든 것이 저를 이끌어 주신 선감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포덕을 나가 오전에 한 집에서 교화를 하면 어느새 점심때가 되고 다시 다른 수반집에서 교화를 하다 보면 집에 늦게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때 가화가 안 된 가정집의 경우는 일단 무조건 들어가고 봅니다. 수반집의 남편이 저에게 핀잔을 주는 말을 해도 “일단 말이라도 들어보세요.”라고 다독거리며 앉게 합니다. 일부러 가정에 찾아가서 이런 말 저런 말 들어주면서 이해해주고 도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해 주면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야기를 잘 듣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돌변해 더 이상 듣기 싫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도 도문에 들어오는 것은 조상들의 삼대 적선적덕(積善積德)과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듯이,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조상의 음덕도 큰 것 같습니다.
도전님 훈시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도전님 재세시 자주 훈시를 모시러 갔습니다. 도전님 전에 나가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너무 조심스러워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나지 않곤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말씀은 항상 화합단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융화단결을 기본으로 각 도인들은 ㆍ가정화합에 힘써야 합니다. 이웃과 상부상조하여 화합해야 합니다. 가정화합ㆍ사회화합 인류화평으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것이 대순진리회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합단결해 나가야 대순진리회가 발전해 나가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도인들에게 어떤 마음으로 수도에 임해야 하는지 한 말씀 해주십시오.
수반들에게 교화할 때는 무슨 일이라도 때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크는 것도 때가 있고 자라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결혼하는 것도 때가 있고 모든 식물도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일을 당하여 흥왕 되게 하는 것은 천지에 있다. 필히 사람에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이 없으면 천지가 없다. 그러므로 천지가 사람을 낳고 쓴다. 사람으로 태어나 천지가 사람을 쓰고자 할 때 참여하지 못하면, 어찌 사람의 삶이라 하리오.”이런 『전경』말씀도 교화하고, 또 내가 고통스러운 가운데 포덕사업해 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교화를 많이 했습니다.
선각의 말을 잘 듣고 자기가 깨달아 마음에 새겨서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생각만으로 해 나가는 일은 절대로 안 됩니다. 상제님의 진리로서 운수 받겠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수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가겠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화합하여 참고 이겨나가야 합니다. 도통 받는 그날까지 다 같이 갈 수 있는 수도인이 됩시다. 감사합니다.
《대순회보》 79호, 「도인탐방」
취재후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내린 눈으로 도장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아마 오늘 만나러 가는 분을 축복이라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옥분 선감의 연세가 많다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막상 반야월 회관에 도착한 후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신 선감의 모습은 연세에 비해 너무 건강하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관에 있는 몇 분의 임원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회관에 제일 먼저 나오셔서 수반들을 챙기십니다. 댁에서 회관까지 먼 거리인데도 아침 일찍 나오셔서 공식을 보시고, 공식 후에도 수반들이 사업하러 다 나갈 때까지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회관에서 제일 늦게 나가십니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임원들도 일찍 안 나올 수가 없죠?” 라고 하는 그 임원의 생생한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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