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출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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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12.11 조회2,877회 댓글0건본문
식당은 도장의 역사와 함께했다. 1969년 서울 중곡동에 중앙본부도장이 창건됐을 때 초창기 식당 모습은 찾기가 어렵지만, 1986년 여주도장(1993년에 종단본부를 중곡도장에서 여주도장으로 이전) 준공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다. 1985년부터 최근까지 34년간 도장 식당을 맡아 온 기세출 교감(황남방면, 79세)의 증언이 있기 때문이다.
모래밭에 놓인 아궁이 3곳에 가마솥을 얹고 조리를 하던 시절, 변변찮은 조리기구도 없이 곰국을 끓이고 국수를 삶던 그때를 회상하는 기 교감의 기억을 되짚어 봤다.
도장에 들어가다
1985년에 입도하고 주문도 모두 외우지 못한 채 도장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도전님께서 부전 선감에게 40~45세의 종사원을 구하라고 지시하셨다고 합니다. 그때 저는 혼자 전라도에서 포항으로 건너와 식당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입도하자마자 도장으로 갈 생각이 있냐고 묻는 선각의 말에 두말하지 않고 간다고 했습니다. 갓 입도한 상황이라 주문도 몰랐습니다. 도장에 들어와서 기도 모시러 올라가 따라 하면서 외웠습니다.
일 욕심도 많았습니다. 식당 일을 할 때 도인이 많이 오면 귀찮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도인이 많이 오면 그냥 좋아서 이것저것 막 만들어다 주고 했습니다.
식당을 담당하다
도전님께서 처음 저에게 식당 일을 맡기실 때 운영에 대한 지시를 따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맡겨주셨습니다. 먼저 여주도장 자양당에서 일했습니다. 그 후 포천에 도장을 지으면서 포천으로 가 있었고, 토성에 도장 지으면서 도전님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주방일을 보면서 진지를 올려드렸습니다. 그 후 토성도장 식당에서도 있었습니다. 도전님께서는 저를 여러 곳에서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신생활관 식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쭉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히다
제가 사회에서 식당을 할 땐 돈을 긁어다 모은다고 소문이 날 정도로 잘했었습니다. 도장에서도 잘 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습니다. 여주도장에 있다가 잠깐 중곡도장에 간 적이 있는데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일을 안 해도 그냥 혼자 다 했습니다. 도전님께서 식당을 지나서 영대를 올라가셨는데, 아무렇게나 해놓을 수 없어 정리정돈에 많이 신경 썼습니다. 그러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오랫동안 해오던 방식과 다르게 한다고 불편해하는 눈치였습니다. 나를 낮추지 않으면 여기서 견디기 힘들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스스로를 낮추기 위해 얼마나 심고 드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힘들면 몰래 숨어서 막 울고, 태을주를 외우고 그랬습니다. 도전님께서 모르실 줄 알았는데 다 알고 계셨습니다.
정성을 담다
제가 처음 여주도장 식당을 맡았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래밭 위에 부엌이 있었습니다. 큰 대야에 쌀을 씻어 밥을 지었습니다. 그때에는 환경이 어렵다, 힘들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어떻게든 많은 도인이 식사할 수 있게 밥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반찬도 변변찮았습니다. 소금에 절인 무와 배추를 씻어서 양념해 내놓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임원들이 맛있다고 밥을 두 그릇, 세 그릇 드셨었습니다.
당시에는 참배도 정말 많이 왔었습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 쌀밥을 내놓기가 어려웠습니다. 도전님께서 국수를 삶아 내주라고 하셨습니다. 재료가 많이 없어서 양념도 제대로 못 하고 내놓은 국수였는데 도인들이 그렇게 맛있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어떤 도인은 너무 맛있다며 일곱 그릇을 먹기도 했습니다. 방면에서 만들어 먹으면 도장 국수 맛이 안 난다고 했었습니다. 도인들은 국수 면을 넌출넌출 뽑으니 도장 국수를 먹으면 포덕도 넌출넌출 된다는 말을 하면서 잘 먹었습니다.
아끼고 아끼다
식당 운영비가 따로 있었는데 쓰질 않았습니다. 사무실에 돈이 모여 있어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줄 알았습니다. 음식을 하는데 모자란 재료들은 임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임원들도 복 짓는 일이라면서 좋아하셨습니다. 식당에 일부러 찾아와 필요한 게 없는지 묻는 임원들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정성 올린 방면들은 포덕이 다 잘됐습니다. 방면들이 크는 걸 보면서 공덕의 힘이 크다는 걸 알았습니다.
황남방면의 한 임원을 통해 기 교감이 잠깐 방면 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선각이 수반들 집에 축시기도 모시고 올 때까지 기 교감은 앉아서 기다렸다고 한다. 우유 하나를 준비해서, 냉장고가 없어 우유가 상할 새라 차가운 물이 담긴 그릇에 담아 시원한 창틀에 놓고 매일같이 기다렸다는 것이다.
기 교감이 도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때마다 먹은 마음가짐은 언젠가 선각에게 건넨 우유 속에 담긴 정성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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