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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방면 권종진 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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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4.02 조회2,3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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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巡眞理로 하나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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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태극도 시절)시계가 귀했었기 때문에 기도모실 때 별을 보고 시간을 판단했어요.』 

 

 

  여주도장(驪州道場) 수련공부반의 지도감독을 담당하는 임무인 사수를 보아온 청주방면 권종진(權鍾珍) 선감(74세)은 자상한 수련지도를 통해 수도인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원로선감이다. 

 

 

- 수도생활을 하시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  

 

  『농사일을 했었어요. 내 고향은 충남 연산으로 신양리에서 태어났지요. 인근 양산리 남촌은 『전경』에도 등장하는 김일부(金一夫)의 고향이기도 해요. 한 때 충남 지방에는 특히 계룡산을 중심으로 하여 무속과 참위설을 바탕으로 한 군소 종교들이 난횡하고 있었어요. 당시 한 때 나는 완고한 무신론자이어서 무속적 행위들이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고 여겨 적극적으로 무당들을 막았었지요, 그 때는 산 기도가 유행 했었는데 산 기도를 가면 강(降)을 받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사람 흘리는 짓」으로 단정하였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극성스럽게 말리고 다녔던 것 같습니다. 나는 연산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농사일을 하며 사립학교에 교직(敎職)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이치(理致)에 맞지 않게 혹세무민 하는 일을 막는데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 입도하신 경위를 들려주십시오 -  

 

  『우리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을 중시조(中始組)로 하는 안동(安東) 권(權)씨 양촌파인데 할아버지께서 어진 선비로 인망에 올랐던 분이라고 들었어요. 조상님께서 도와주셨는지 어느날 한 도인이 우리 형님의 친구분과 함께 나를 찾아온 거예요. 나는 집에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예의로 도담을 듣다 보니 막연하지만 무엇인가 끌리는 기운을 느꼈어요. 결국 날을 잡아서 온 가족이 입도치성을 함께 드렸죠. 그 때가 한국전쟁 직후였는데 세상이 워낙 어수선했기 때문에 포덕을 비밀스럽게 할 때 였어요. 세인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 였죠. 우리 선각도 역시 조심스럽게 왕래하면서 도(道)를 전하셨는데 그 정성에 감복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는 주문을 한 줄씩 적어주며 가르쳤었어요. 기도 모실 때도 동네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주 적은 소리로 주문을 읽고 했었지요.』  

 

  

- 그 당시에 주로 접하셨던 도담(道談)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   

 

  『지금처럼 교리(敎理)가 체계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었고 변변한 책도 없었던 때였지요. 더욱이 전쟁 직후라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였기 때문에 주로 십승지(十勝地)를 찾아 피난가는 쪽으로 화제가 기울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내가 상제(上帝)님의 대순진리(大巡眞理)에 호감을 가졌던 이유는 그 당시에 번성하던 인근의 무당, 박수, 점치는 사람과는 달리 이치(理致)를 설명해 주시는 선각에게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 이예요. 주로 음양오행의 원리와 금산사(金山寺) 시루와 솥의 유래에 얽힌 도담(道談), 그리고 진인(眞人)이 계신다는 등의 도담을 많이 들었지요. 나는 해도진인(海島眞人)이라고 하기에 외딴 섬에 진인이 계시는 줄로 알았었는데 나중에야 그 속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지요. 또 소위 십승지(十勝地)도 「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성을 구하러 다니나 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解冤時代)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는 상제(上帝)님의 말씀도 뒷날에 가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 당시 포덕을 어떻게 하셨는지요 -   

 

   『그 당시 내가 전쟁직후에 난민구제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지역개발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지요. 그들을 위해 봉사(奉仕)했던 노력 때문이었는지 내가 포덕을 할 때마다 비교적 잘 따르는 편이었습니다. 주로 인근 주민들의 가정을 방문하며 포덕을 했지요. 나는 「대순진리는 천지대도(天地大道)이기 때문에 조상을 받들고 하느님을 섬긴다」는 점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민구제사업을 하여 동네 사람들의 인심(人心)을 얻은 덕(德)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지요. 그 후에도 벚나무 10만주를 마을에 심는 등 난민구제사업을 확장해 나갔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산(釜山) 감천(感天)의 도장(道場)으로 가서 본격적으로 도를 닦기 시작했는데 그 때가 도주(道主)님께서 화천하시던 해인 무술년(1958)이었지요.』 

 

 

- 도인들에게 해 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  

 

  『도전(都典)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것과 같이 도인들간의 화합(和合)과 단결(團結)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대순진리(大巡眞理)는 중찰인사(中察人事)하는 도문(道門)입니다. 통정신(通精神)이라는 말이 있듯이 먼저 사람과 사람이 마음으로 통해야 되지요. 그리고 방면(方面)과 방면(方面)이 화합하고 단결하여 대순진리 속에서 하나로 뭉쳐졌을 때 상제(上帝)님의 덕화(德化)를 온 누리에 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전(都典)님의 뜻을 바르게 실천하는 일치단결(一致團結)된 모습 속에서 우리의 소원(所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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