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실천을 위한 인식과 소통 > 오피니언

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
HOME   >  열린마당   >   오피니언  

오피니언

상생실천을 위한 인식과 소통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16 조회5,066회 댓글0건

본문

 

 

연구원 전성기

 

 b0ed87083ff5d4e63574b9f6e800245c_1523837
 
  

어느 때부터인가 사람들 입에서 상생(相生)이란 말이 자주 회자(膾炙)되고 있다. 정치계에서는 여당과 야당의 상생 정치를, 경제계에서는 노동자와 고용주 간의 상생경영을 강조하는 등 우리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일례로 90년대 초반, “소비자가 살아야 기업이 산다.”며 기업과 소비자의 상생을 경영이념으로 내세워 이제는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모 기업의 일도 있다. 이제 상생이란 말은 누구나 수긍할 정도로 보편화 되었다. 하지만 그 실천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 원인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상생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의 부족과 사회적 관계로서 타인에 대한 이해의 문제인 소통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보고자 한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의 지표로서 상생에 대한 필요를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지만 대부분 피상적인 인식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실천에 옮길 정도의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진실한 이해를 통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여기서 상생과 우리 인간의 삶을 한번 되짚어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상생이란 서로가 협력관계를 이루어 서로 살리고 잘 되게 한다는 말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人間)이란 말도 사람 인(人) 자, 사이 간(間) 자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기초로 하여 형성되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인간은 부모의 양육과 스승의 교육으로 성장하며 성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이후 자신이 받은 은혜를 부모님께 효도하고 교육의 덕은 스승에 대한 보은(報恩)과 사회에 대한 기여 등으로 환원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가정에서부터 사회로까지 상생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자급자족의 원시시대로부터 역사적 발달과 더불어 생긴 분업화와 전문화로 각기 자기 분야의 일을 함으로써 가치를 창출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가치를 다른 구성원이 창출한 재화나 용역과 교환하여 더 다양하고 많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인간사회가 발전되어 왔다. 이제 인간은 의식주의 생물학적 욕구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무수히 많고 다양한 욕구를 남의 도움을 통해 충족시켜 나가고 있다. 누구도 홀로 자신의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키며 살아갈 수 없고 모든 일을 처리 할 수도 없다.

 

남이 살아야 나도 살 수 있고 내가 살아야 남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도 남이 더 능력을 갖추고 잘 되어야 자신도 더 나은 재화와 용역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인간의 욕구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갈수록 확대되고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나와 남, 나아가 사회와의 상생적인 관계는 그 필요성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이처럼 나의 존재와 발전은 상대의 존재와 발전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나아가 사회 전체가 존속하고 더 발전되어야 구성원인 나 또한 그러할 수 있다.

 

따라서 상보(相補)적 기능을 하고 있는 상생은 가정과 사회를 유지하고 더 나은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기본요소이다. 인간은 서로가 상대의 존재를 기반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 나아가 모든 생명을 비롯한 만물이 그러할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현실적 모습과 그 필요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상생의 실천을 가로막는 또 다른 이유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잘되게 하려면 상대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할 터인데 상대와 소통이 원활해야 상대가 요구하는 점을 알 수 있고 그 점을 도와줄 의욕도 생길 것이다. 사회 각 구성원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기질과 경험의 차이가 있는데다, 서로 다른 입장에 놓임으로써 인식의 차이가 생긴다. 이중 서로 다른 위치로 인해 생기는 견해차이가 생기는 경우가 특히 문제시된다. 더구나 세상은 다원화하여 이러한 현상은 심화되어 왔다. 왜냐하면, 위치는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고용주와 노동자, 정부와 국민 등을 비롯한 수많은 관계에서 소통의 부재(不在)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원활한 소통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식 간은 소통이 가장 잘 될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관계이다. 부모는 자신이 배운 가치와 신념, 경험과 지식 등을 자식에게 전하려 하고 자식은 자신의 개성을 살리려 한다. 이때 부모는 자신의 주장만 강요하는 권위주의가 없는지를 돌아보고 정당하고 바람직한 자식의 의견과 창의성을 잘 살릴 필요가 있고, 자식은 좌충우돌하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세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부모님의 가치관과 사랑을 받아들여야 장래에 후회를 줄일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의 마음과 판단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상대의 의견을 주의 깊게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어서 인정 어리고 따뜻하면서 허심탄회한 대화가 요구된다.

 

고용주와 노동자 간에는 원만한 대화가 결렬 되서 임금투쟁 등 극한 상황으로 갈 때가 자주 있다. 하지만 기업 내의 두 주체로서 서로 의존해 있는 관계는 자명하다. 고용주는 노동자의 기여도를 인정해서 권익을 보장해주고 이익을 나눌 때 노동자의 의욕 상승과 더불어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긴밀한 관계가 유지되어 회사가 정작 어려울 때 고통분담을 자발적으로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많은 선진기업의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노동자도 지나친 요구는 자제하고 고용주가 회사 차원에서 하는 타당한 요구를 수용하려는 자세로 임할 때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기업경쟁력을 강화해서 증대된 이익을 고용주와 노동자 모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하는 상생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정부와 국민은 신고, 고충처리, 공공정보의 공개와 공론에 대한 참여 및 상호 의견을 개진하고 폭넓게 수용함으로써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 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늘어나는 범죄자, 재활용 산업폐기물, 쓰레기 등의 수용·처리시설, 발전시설, 군사시설 등을 건설할 때 정부와 국민 간에 첨예한 대립은 여전하다. 주민도 지역이기주의를 어느 정도 양보할 필요가 있고 정부도 일방적 강행을 삼가고 충분한 대화를 통해 소통해 나갈 때 결과적으로 서로의 시간과 고충을 덜고 원만하게 일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이처럼 부모와 자식, 고용주와 노동자, 정부와 국민 등 대화의 주체들이 상호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 대할 때 원활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 그로 인해 더 빨리, 더 나은 상생의 결과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진실은 많은 모범적 사례들 속에서 입증되고 있다. 상생을 이루기 위해서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의 생각과 입장의 차이를 좁히고 원활한 소통을 해나가는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결국, 상생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상생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생활이 이루어짐을 절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또한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양보의 미덕 속에 원만한 소통을 이끌어 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서로의 시간과 고통을 줄일 수 있고 노력과 삶을 헛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럴 때에 함께 난관을 헤쳐 나가며 살 수 있는 내일을 보장할 수 있고 더욱 살 맛 나고 행복한 미래가 열릴 것이다. 이처럼 상생하는 삶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원만한 소통을 유지해 나갈 때 함께 잘 사는 사회가 구현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상생(相生)의 도로 후천의 선경을 세워서 세계의 민생을 건지려 하노라.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 남이 잘 되고 남은 것만 차지하여도 되나니”하시며 상생을 말씀해 주셨다. 이에 대순진리회에서는 해원상생을 종지의 하나로서 수도의 실천적 생활원리로 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 만날 사람 만났으니 통정신(通精神)이 나오리라” 하셨으며, 도전님께서는 “자모지정(自母之情)과 은사지의(恩師之義)의 심정으로 통심정이 되게 힘써라.”라는 가르침을 내리셨다. 또한, “윗사람은 모자의 정과 애휼(愛恤)의 마음으로 아랫사람에게 대하고, 대화의 길을 틔어서 수반 체계를 관리하라.”라고 말씀하시어 상호 간에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소통되지 않으면 결국 상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서로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서로의 도움을 전제로 하는 현재의 수도와 삶 속에서 충분한 소통의 부재는 결국 원을 낳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소통은 해원상생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다.

 

이제 상대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이어짐을 인식하여 상생의 이념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상대의 말을 겸손하게 경청하는 태도를 지켜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제님의 해원상생의 진리를 실천하는 수도를 해나갈 수 있다. 더불어 상생의 삶을 지속해서 실천하려면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부족함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 속에 내가 존재할 수 있음을 늘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감사함이 보답하는 상생의 태도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원수를 은인과 같이 여길 수 있는 정도의 인간에 대한 한 없이 깊은 사랑과 이해심까지 갖춘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이러한 실천을 해 나갈 때 상생을 이루는 진정한 자기 수도가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이렇게 수도인들이 상생의 모습을 지켜나간다면 사회에서도 인망에 올라 덕화선양이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포덕도 확대되는 모습을 기대해 볼 수 있겠다.

 

 

<대순회보 158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12616)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전화 : 031-887-9301 (교무부)     팩스 : 031-887-9345
Copyright ⓒ 2016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