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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으로서의 수행, 치유로서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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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12.03 조회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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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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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삶과 생의 본질을 향한 본원적 추구가 때로는 인간을 수행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 길은 흔히 일상의 안락함을 뒤로한 고행이며 사사로운 삶의 즐거움을 넘어선 엄숙함 가운데 있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인 인식 속에 그려진 수행의 모습은 보통 현실을 초월하려는 신비이며 일상과 상식의 가벼움을 벗고 솟아오르려는 상승의 욕구이다. 고행의 수행이 가진 그러한 무게감은 신비와 특별함으로 구도자를 장식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구도자는 삶의 소박한 기쁨과 안락을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가지는 경향이 있다.
  수행의 고행적 특성은 주로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기인한다. 정신은 순수하고 고결한 것이며 육체는 탁하고 저급한 것으로 보는 생각은 육체를 정신의 속박으로 보고 육체에 고통을 주는 것으로 그 굴레를 극복하게끔 했다. 이러한 고행의 방식은 하등종교보다는 고등종교에서 더 발달해왔다. 그것은 정신과 육체에 대한 고도의 추상적 사유를 통해 얻게 된 이원(二元)적 관념이 고등종교에서 주로 체계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과 육의 이원화가 그 둘 사이의 위계를 나누고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희생하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러한 정신과 육체의 이원적 관념 외에, 인생은 고통과 즐거움의 두 가지 측면이 번갈아 가며 순환하는 것이므로 앞으로의 즐거움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를 고통으로 채워가야 한다는 고행의 신념이 있다. 이것 또한 고통과 즐거움 그리고 현세와 내세의 이원적 관념에서 기인하며 즐거움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 현세를 고통으로 채우고 그 대가로 내세의 즐거움을 약속받는 것이다. 
  고등종교 가운데 고행 수행이 가장 활발하고 다양하게 유행한 종교는 단연 힌두교이다. 인도 힌두교의 고행을 타파스(tapas)라고 하는데 고행의 방식도 다양하다. 예를 들자면 단식, 불 위를 걷는 것, 높은 바위에서 몸을 던지는 것, 깊은 연못에 몸을 던지는 것, 계속해서 한쪽 다리를 들고 서 있는 것, 재나 가시·소똥 위에 눕는 것, 머리나 손톱을 자르지 않는 것 등이 있다. 현재도 인도에는 금욕으로서의 고행을 통해 내세에 천상에서 태어난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고행자가 적지 않으며 걸식에만 의존하여 생활하는 고행자도 5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서양에도 고행의 모습이 있다. 5세기경 시리아에는 높은 기둥 위에 앉는 형태가 있었으며, 헤브라이의 신약시대에 신을 향한 맹세를 위해 금주를 하거나 음식을 가리고, 방랑의 생활을 지속하기도 했다. 10세기부터 12세기 후반까지 유럽의 종교적 영향력의 중심을 이룬 프랑스의 클뤼니 수도원은 특히 고행적 종교 관습이 많았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금식, 금욕, 청빈과 같은 고행은 높은 단계의 수행으로 인식되어 이러한 수행을 행하고  극복하는 이들을 세인들은 우러러보며 존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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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모니 고행상

 
  육체적 욕망의 절제를 통한 정신의 고양과 도덕적 경지로의 지향은 종교가 가진 인간의 이상성 실현에 대한 적극적 행위라는 점에서 고행은 어느 정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본래의 종교적 취지를 망각하고 수단으로서의 고행 자체가 목적으로 변질되어 맹목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육체에 대한 학대와 인내를 수행의 경지로 생각하여 육체에서 비롯되는 삶의 생리와 기쁨을 무시함에 따라 인간 사회의 상식과 신체적  삶의 지반이 붕괴될 수 있었다. 따라서 고행의 이러한 극단적 측면에 대해 휴머니즘에 입각한 근대적 종교에서는 인간의 육체적 삶을 존중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가운데 수행을 삶의 안정과 접목하고자 했다.
  한편, 불교의 석가는 해탈에 이르기 전 스승과 수행자들과 함께 고행 수행을 했으며 전생에도 갖가지 힘든 고행을 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고행의 극단이 오히려 인간을 고통의 굴레에 빠뜨린다고 보고 고행 수행에서 중도(中道)의 수행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의 가르침대로 불교에서는 고행을 육종고행외도(六種苦行外道)나 숙작외도(宿作外道)라고 하며 올바른 수행 방법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수행은 인간과 생명 사랑을 그 뿌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행은 지금 이 순간 호흡하는 인간의 삶으로부터 비롯하여 마무리 또한 그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내세를 위해 현세의 삶과 육체를 경시하거나 육체로부터 오는 삶의 소박한 기쁨을 저급한 것으로 여겨 외면하는 것은 곧 육체와 현실에 대해 척을 짓는 격이다. 수행은 인간의 육체적 삶과 정신적 이상의 위계를 두는 것이 아닌 하나의 가치로 어우러지게끔 하는 것이다. 생명을 등한시하고 일상의 삶을 위협하는 수행은 자신의 신체와 신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삶의 양식들을 몰가치하게 할 위험이 있다. 종교 수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이러한 극단적인 신념이 개인과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치유로서의 수행은 인간에게 주어진 성향들을 억누르고 인위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닌 인정(認定)과 개방(開放)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상제님께서 동곡에 약방을 열고 병든 세상과 인간을 치유하고자 하신 상생의 진리 아래 도주님께서 안심과 안신의 교리로써 개인적 안정과 사회적 평안을 지향하신 것이 바로 그러한 균형과 조화의 의미일 것이다. 그로써 인간 세상의 고통을 대속하신 상제님의 뜻 가운데 우리는 자신과 만물에 대한 사랑과 그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치유로서의 수도를 해야 할 것이다. 고통으로 몰아가는 극단의 수행보다 치유의 의미로서 나와 서로를 아끼는 상생의 수행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아닐까 한다.

<대순회보> 197호


참고문헌
편집부, 『종교학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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