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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치봉 작성일2019.03.24 조회3,7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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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5방면 선무 최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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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무척 서늘해진 가을 저녁 같이 대순종학을 배우는 학우로부터 불연 듯 이런 질문을 받았다. “도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처음엔 농담처럼 여겨진 이 질문은 나로 하여금 상당한 당혹감에 젖어들게 하였다. 그냥 막연히 『전경』에서 읽었던 도통에 대한 단편적인 구절들과 함께 수도의 목적이 도통이므로 수도를 하여야 한다는 것, 수도의 요체는 성·경·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막연한 생각과 정리되지 않는 개념들뿐, 수도의 중심으로 삼을만 한 직접적인 실천개념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지금껏 내가 행하여오던 치성, 기도, 공부가 단지 의례적 형식에 맞춰 수동적으로 수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였다. 그랬다. 나는 입도한 이후로 사실 목적은 있었지만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 스스로 알기를 게을리 했던 것이다.
  그 학우에게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대답을 해주지 못하였다. 부끄러웠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대순사상의 내용들은 대부분 명확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정말로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수도는 의례히 하는 것이고, 선각자들이 하라고 한 것이었고, 이것 저것 하면 좋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주위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움의 발로로 인하여 나는 그날로부터 『전경』과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을 펴들고 스스로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도통은 뭐고, 수도는 뭐지? 상제님은, 도주님은, 도전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먼저 내가 알고 있었던 기존의 지식들은 내려놓고 최대한 문헌적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접근해보기로 하였다. 이에 도통에 대한 구절을 찾아보고 수도에 관한 구체적 실천개념을 세우려 시도해 보았다.

 

 

1. 도통을 위한 전제는 수도이다.

 

- 도통은 도인들 자신의 수도 여하에 달려 있느니라.(수도공부1-1)
- 수도의 목적은 도통이니 수도를 바르게 하지 못 했을 때는 도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수도공부1-1)

 

 

2. 수도를 한 만큼 도통이 이뤄진다.

 

-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교운1-33)
- 나는 마음을 닦은 바에 따라 누구에게나 마음을 밝혀 주리니(교운1-34)
- 심신으로 닦은 바에 따라 도에 통하게 하느니라.(교운1-41)
- 도통은 닦은 바에 따라 주어지느니라.(수도공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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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는 도통의 전제이고 수도를 한 만큼 도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대순진리회 신앙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대전제이다. 하지만 무엇을 수도라고 하는 것일까? 『대순진리회요람』에서 수도01는 공부와 수련과 기도로 구분된다고 언급된다. 여기서의 수도는 도주님 법방으로 짜여진 것으로의 수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경』에 상제님께서 말하신 도를 닦는 개념인 수도는 개인의 일상생활 전반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수도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논의하겠지만 넓은 의미의 수도는 공부, 수련, 기도에 한정되지 않고 인간 삶의 관계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앞으로의 논의도 이러한 넓은 의미의 수도를 전제로 하겠다.

 

 

3. 수도의 근본은 인륜(人倫)과 무자기(無自欺)이다.

 

  오직 우리 대순진리회는 성경신 삼법언으로 수도의 요체를 삼고 … 삼강오륜을 근본으로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국법을 준수하여 사회도덕을 준행하고,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 본래의 청정한 본질로 환원토록 … 대순진리를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하여 도즉아 아즉도의 경지를 정각하고 일단 활연 관통하면 … 이것이 영통이며 도통인 것이다.(『대순진리회요람』 三,취지 참조.)

 

  위의 글은 수도의 핵심이 성·경·신02임을 밝히고, 삼강오륜과 무자기를 근본으로 하여야 도통에 이룰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삼강오륜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외적 실천개념으로 볼 수 있고, 무자기는 자신의 내면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내적 실천개념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 중에 우선 외적 실천개념인 삼강오륜을 더욱 구체화 시켜보기로 하겠다.


 
3-가. 수도의 근본은 인륜과 도덕이다.


 
- 수도는 인륜(人倫)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일인데 이것을 어기면 도통을 받을 수 있겠는가.(수도공부1-1)
- 덕은 곧 인성(人性)의 신맥(新脈)이며, 신맥은 정신의 원동력이므로 이 원동력은 윤리도덕만이 새로운 맥이 될 것이다.(수도공부1-5)
- 도덕과 인의(仁義)도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풍속도 예가 바로 서지 않으면 갖추어 지지 않는다. 부자 형제도 예가 아니면 윤리가 정립되지 않는다. 스승을 섬기고 학문에 힘쓰는 일도 예가 아니면 바른 수업(受業)이 될 수 없다. 군율(軍律)을 세우고 관직에 있어서 법을 행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조상을 받들고 신명(神明) 앞에 치성을 드리는 일에도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사념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조직기구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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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사상에서 말하는 삼강오륜의 인륜03은 단지 상하와 존비의 계급적 사회질서를 말하는 국소적인 의미가 아니라 ‘음양합덕(陰陽合德)에 근거한 인륜’04으로 인간관계에서의 상호보완적 관계성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을 보면 ‘예(禮)’를 통해서 도덕과 인의가 이루어지며, 모든 인간관계, 사회 풍속, 나라의 법률 나아가 조상과 받드는 일에도 예를 행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인륜과 도덕의 실천이 예라는 것으로 구체화 되었는데 아래의 구절을 통해 더욱더 현실적 실천덕목으로 구체화해 볼 수 있다. 
 


예(禮)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일생 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할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起居動靜)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인도(人道)를 갖추는 것을 이른다.(조직기구3-3)

 

 

  이 구절은 예의 핵심을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는 일임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예라는 것이 자부자찬05을 버리는 ‘겸손’으로 행하여짐을 나타낸다. “도통 - 수도 - 인륜·도덕 - 예 - 겸손”으로 이어지는 도통을 위한 구체적 실천행위가 겸손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겸손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할 때 예를 드러낼 수 있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륜의 덕목이 실천될 수 있다고 하겠다.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을 낮춘 겸손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화합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내적 실천개념인 무자기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3-나. 수도의 근본은 무자기다.

 

- 임원들은 수반들과 함께 무자기(無自欺)를 바탕으로 수도에 만전을 기하라.(수도공부1-1)
- 목적(目的)은 무자기·정신개벽·인간개조와 포덕천하·광제창생·보국안민·지상천국 건설이다.(신앙체계정립1-3)
- 내 마음을 거울과 같이 닦아서 진실하고 정직한 인간의 본질을 회복했을 때 도통에 이른다.(수도공부1-1)

 

 

  무자기를 통하여 인간 본래의 본질로 돌아가면 도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성의 본질은 양심이다. 양심인 천성을 되찾기에 전념하라. 모든 죄악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인즉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라 언급되는데 무자기라는 것이 결국 ‘정직(正直)’06과 ‘진실(眞實)’07로서 실천됨을 나타낸다.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교법2-7)”,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교법3-24)”라는 구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정직과 진실은 매우 중요한 실천 덕목이다. 진실한 본연의 양심이 사심 없이 곧고 바르게 나타나는 것이 정직인 것이다. 정리하자면, 내적인 실천행위는 “도통 - 수도 - 무자기 - 정직”이라는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수도의 요체인 성·경·신은 겸손과 정직에 바탕을 둔다.

 

  위의 논의에 의하여 정리된 수도의 근본은 인륜과 무자기이다. 나아가 인륜과 도덕은 외적 행동지침이 될 수 있고, 무자기는 내적 마음가짐으로 나누어 보았다. 또한 구체적인 실천덕목으로는 겸손과 정직을 언급하였다. 여기서 수도의 근본이 되는 인륜과 무자기 그리고 구체적 실천덕목으로서 겸손과 정직은 결국 수도의 요체인 성·경·신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 실천덕목을 언급하면서 수도의 핵심개념을 통해 설명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에 『대순진리회요람』에 언급된 성·경·신08을 바탕으로 겸손과 정직을 대비시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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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誠)은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도즉아 아즉도(道卽我 我卽道)의 경지는 정직을 통한 무자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자면 성은 정직으로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겸손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敬)은 심신의 움직임을 받아 일신상 예의에 알맞게 행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나의 일상행위를 예에 알맞게 하는 것으로 그 바탕은 겸손이 된다. 항상 부족함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할 때 상생과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것이다.
  신(信)은 성과 경을 도통이라는 목적에 도달하게 하는 실천의 지속성을 말한다. 비록 정직과 겸손을 실천할 때 생기는 손해가 있을지라도 그 마음을 바꾸지 말아야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를 둘이라 않고 셋을 셋이라 않고”라고 언급되는데 이 구절에 대한 이해는 정직과 겸손을 대비시켜 그 뜻을 유추해볼 수 있다. 어떠한 사실에 대하여 거짓 없고 바르게 대하는 것이 곧 하나를 둘이라 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이 알고 있는 확실하고 당연한 사실에 자부자찬하지 않는 것이 셋을 셋이라 하지 않는 것이다. 즉, 이 구절은 하나를 둘이라고 하지 않는 정직과 셋을 셋이라고 하지 않는 겸손을 지닐 것을 언급한다고 하겠다.

 

 

  도통은 수도의 요체인 성·경·신에 그 바탕이 있다. 나아가 성·경·신을 이루고 도통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이 되는 것은 내적 무자기(無自欺)를 위한 정직과 외적 예(禮)를 위한 겸손임을 살펴보았다. 정직과 겸손. 살면서 우리는 수없이 정직할 것과 겸손할 것을 요구 받았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정직과 겸손이지만 살면서 나는 얼마나 이것을 실천하고 있었을까? 대순진리회의 대도는 큰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아마 일상에 주위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정직과 겸손을 실천하지 못하고 과연 수도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주위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정직과 겸손으로 다가갔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면 사실 부끄러운 것 투성이다.
  “도통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했던 시간동안 내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다가온 것은 ‘정직’과 ‘겸손’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제대로 된 실천도 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어리석은 나를 발견하였다. 도통을 위한 실천개념을 몇 개의 덕목에 한정지으려는 것 또한 어리석은 짓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나 자신은 참으로 배운 것이 많았다. 비록 겸손과 정직이 도통을 위한 충분조건을 되지 못할 지라도 반드시 필요조건은 될 것이다. 이에 지금부터라도 천하를 위하겠다는 거창함보다, 바로 내 주위사람에게 하나를 둘이라고 하지 않는 정직과 셋을 셋이라고 하지 않는 겸손으로 다가갈 것을 다짐해본다.


 

 


01 『대순진리회요람』 九,수도 참조.
02 모든 일이 성·경·신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수도공부2-2)
03 군신ㆍ부자ㆍ형제ㆍ부부 따위 상하 존비의 인간관계나 질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04 『대순회보』 140호, 「음양합덕으로 되살아나는 삼강오륜」 참조.
05 일체의 자부자찬(自負自讚)의 마음을 버리고 수도의 완성을 기하여야 한다.(수도공부2-1)
06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07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08 『대순진리회요람』 七,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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