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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많이 팔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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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원 작성일2019.12.15 조회4,6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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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종교문화연구소 이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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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상제께서 태인 새울에 계셨도다. 어느날 상제께서 박 공우를 경석에게 보내어 그를 오게 하시니 경석이 와서 뵙느니라. 상제께서 그에게 돈을 주시며 “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아라” 명하시니라. 그는 그 돈을 사사로이 써 버렸도다. 그 뒤에 상제께서 댁으로 돌아가셔서 부인에게 “쌀을 많이 팔았느냐”고 물으시니 부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여쭈니라. 상제께서 경석을 불러 물으시니 경석은 그 돈을 부인에게 드리지 않았음을 고백하였도다. 이후로부터 상제께서 모든 일을 경석에게 부탁하지 아니하고 바로 고부인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셨도다.(행록 4장 53절)

 

 

  이 구절은 상제님께서 차경석에게 돈을 주시면서 “돌아가서 쌀을 팔아 놓으라”고 하셨는데 경석이 그 명을 따르지 않았고, 이를 아신 상제님께서 이후로는 그에게 일을 맡기시지 않았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상제님께서 차경석을 중요한 공사에서 배제하게 된 일화들 가운데 하나인데 이 공사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요즈음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맥락상 “쌀을 사 놓으라”고 명하셔야 함에도 말씀은 “쌀을 팔아 놓아라”고 하신 것이다.

  이는 특별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쌀을 사는 것을 “쌀을 판다”고 말하는 것은 오래된 우리말의 관용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우리나라의 옛 분들은 쌀을 사는 것을 “쌀을 판다”고 하셨던 것일까?

 

 

‘쌀을 산다’고 하지 못한 이유

 

  여러 가지 자료와 의견을 검토하기 전, 필자는 다른 사람들은 굶고 있는데 자신들만 먹는 것이 미안해서 쌀을 찧기 위해 곳간에서 내어갈 때 판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이후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쌀을 사는 것을 “쌀을 산다”고 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한 민속학자의 의견을 접할 수 있었다.01 이에 따르면 우리 선조들에게 쌀은 목숨처럼 소중했기에 쌀이 떨어졌다는 말을 꺼내면 집안을 돌보아주는 조상들의 영혼이 화를 낸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집안에 쌀이 떨어져서 쌀을 사러 가야 할 상황에서도 쌀을 사러 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쌀이 남아서 팔러 간다는 표현을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분은 양반이지만 경제적으로는 가난했던 사람들은 설사 굶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사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싫어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쌀을 사러 간다”고 해야 함에도 “쌀을 팔러 간다”고 둘러대었다는 것이다.

 

 

‘쌀 사다’, ‘쌀 판다’의 뜻과 쌀의 사회적 가치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쌀-사다’와 ‘쌀-팔다’를 보면 다음과 같다.02 

 

 

쌀-사다. 쌀을 팔아 돈으로 바꾸다.

        이번 장날에 쌀 사야 설빔이라도 마련하지

쌀-팔다. 쌀을 돈 주고 사다.

        쌀팔아 오다 / 쌀팔러 가다

        쌀팔 돈으로 술을 마시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상제님께서 “쌀을 사 놓아라.”라고 하셔야 하는 상황에서 “팔아 놓아라.”라고 하신 것은 오히려 정확한 것이다. 이 말은 일부 지방에만 통용되던 특수한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매우 일반적인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쌀이 지니는 특수한 위상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쌀은 고대 인도어인 ‘사리’가 어원이다, 퉁구스에서는 ‘시라’로 불렸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쌀로 단축되었다고 한다.03 한국인의 주식(主食)으로 밥 이외에도 떡, 누룽지와 숭늉, 죽, 술, 강정, 유과, 약식 등의 원재료로 우리 음식문화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곡식이다. 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다. 혹자는 쌀 米 자를 설명하면서, 쌀은 八十八번의 과정을 거쳐야 사람의 입으로 들어온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백미(白米)의 백을 백(百)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생산, 유통, 보관의 전 과정에서 쌀은 소중하게 다루어졌다. 그리고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던 시대에 쌀은 그 자체로 금전이었다. 화폐 경제가 아닌 물물교환 시기에 쌀은 가격을 측정하는 척도로 활용되었다. 부자들의 등급도 만석, 천석, 백석처럼 쌀의 다과로 표현되었으며, 관직의 고하(高下)도 그가 받는 쌀의 양에 따라 가늠되었다.

  전통적인 물물교환에서 금전으로 기능했던 쌀이 상업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더욱더 중요한 품목이 되었다. 조선 후기 각 지역의 특산물을 대신하여 쌀을 수납하게 한 대동법의 전국 확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쌀은 그 자체로 금전이었다. 게다가 대다수 사람이 농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쌀은 사야 하는 물품이 아니라 파는 물품이었다. 쌀을 팔러 간다고 했을 때는 이런 당시의 맥락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쌀사다’가 ‘쌀팔다’로 사용되는 현상은 17세기부터

 

  ‘쌀팔다’가 ‘쌀사다’의 뜻으로 사용되는 것은 17세기부터의 현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팔다’는 오늘날의 ‘(물건을) 팔다’의 뜻만이 아닌 ‘흥정하다’의 뜻으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즉 ‘쌀 팔아 들이다’나 ‘쌀 내어 팔다’는 ‘쌀을 흥정해 가져오다’, ‘쌀을 내어다가 흥정하다’의 뜻이며, 따라서 ‘쌀팔아 오다’가 굳어져서 마침내는 ‘사다’ 대신에 ‘팔다’가 쓰이게 되었다는 것이다.04 『역어유해(譯語類解)』를 보면, 매매(賣買)를 현재와 같이 ‘팔고 산다’가 아닌 ‘흥정하다’로 설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05  

  전통적으로 쌀은 주식이기도 하지만 경제생활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주요한 물품이었다. 화폐가 금전의 기능을 하지 못한 시대에 쌀은 금전의 기능을 했고, 물물교환의 경제가 화폐 경제로 이행하면서 이 화폐를 취득하기 위해 농민들이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쌀이었다. 그러므로 쌀을 팔아서 돈을 사고 그 돈으로 다른 물품도 구매했기에 쌀을 판다고 했을 때는 다른 물품을 구매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이해되었고 따라서 ‘판다’가 흥정의 뜻을 지니게 되어 ‘쌀을 흥정하여 구한다’는 말을 ‘쌀판다’로 쓰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앞에서 ‘쌀판다’는 것에 관련하여 여러 의견을 살펴봤다. 농업을 중심으로 한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쌀의 경우 ‘사는 것’을 거꾸로 ‘판다’고 하는 한국어만의 독특한 표현은 사라지고 있다. 상제님께서도 사용하신 ‘쌀팔다’라는 관용적 표현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과거 쌀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으며 그리고 이를 통해 상제님의 공사에서 쌀이 지니는 의미를 보다 더 심층적으로 연구해 볼 수 있다.

 

 

 

01 「‘쌀팔다’는 ‘쌀을 사다’라고?」, -묻고 답하기- 방송대 국문과 국어연구, http://m.cafe.daum.net/knou9509/AtWO/189?q

02 국립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 (서울: 두산동아, 1999), pp.3918-3919.

03 최선호, 『쌀』 (경기 파주: 김영사, 2004), pp.20-21.

04  「‘쌀팔다’는 ‘쌀을 사다’라고?」, -묻고 답하기- 방송대 국문과 국어연구,  http://m.cafe.daum.net/knou9509/AtWO/189?q

05 같은 책,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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