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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갈등을 녹이는 용광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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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현철 작성일2020.06.22 조회3,9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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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주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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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갈등이 없었던 적은 없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갈등을 겪게 되며, 갈등을 겪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대인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불협화음이 언제든지 생길 수 있기에, 인생은 갈등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갈등이란 상반된 것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고 대립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기 생김새가 다르듯이 상호 처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갈등은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연적이고 필연적인 현상이다. 갈등은 내적으로는 무엇인가를 결정하지 못해서 고민에 빠지게 하고, 외적으로는 타인과 마음이 맞지 않아 대립함으로써 관계를 어렵고 불편하고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갈등(葛藤)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해진 단어이다. 칡과 등나무는 둘 다 휘감고 올라가는 공통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자라는 방향이 다르다. 칡은 오른쪽, 등나무는 왼쪽으로 서로 얽혀서 감고 올라간다. 이를 인생사에 비유하여 두 가지 생각이나 의지가 동시에 대립함으로써 결정을 내리지 못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태 또는 개인이나 집단 간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갈등은 두 가지 이상의 생각이나 둘 이상의 만남을 전제로 한다. 두 가지가 서로 협력관계가 되면 조화를 이뤄 상생이 되지만, 대립 관계가 되면 갈등을 낳고 상극이 된다. 갈등 속에는 강력한 폭발력이 잠재되어 있다. 하나의 갈등이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작은 갈등이 큰 갈등으로 확대된다. 처음에 갈등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어 조금씩 커지다가 정도가 지나치면, 또는 사소한 갈등이 이전의 갈등과 더해지면 마침내 폭발 상태에까지 이른다. 갈등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그 유형은 아주 다양하고 폭 또한 광범위하다. 이를테면 남녀갈등, 부부갈등, 고부갈등, 세대갈등, 노사갈등, 계파갈등, 지역갈등, 국가갈등, 민족갈등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일반사회에서 갈등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은 불평등한 사회구조 및 제도다. 과거 적서와 반상, 그리고 남녀 차별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인륜적인 관습이자 제도였다. 상제님께서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공사를 하신 이후, 인류(일부 국가의 국민 제외)는 권리·의무·신분 등의 차별이 없는 평등이라는 인간 기본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고 해서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졌지만, 개인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따라 성과와 성과에 따른 보상이 달라질 수 있다. 이로 인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생겨나고 이들 사이에 갈등이 조장될 수 있다. 또 동일 목적을 가지고 함께 일을 실행하지만 각자 의견이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기에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인류에게 평등이라는 소중한 권리를 주신 대신 양심이라는 의무도 함께 주셨던 것이다.

  갈등을 근절하고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양심이다. 용광로가 쇳덩이를 녹이듯, 양심은 갈등을 말끔히 해소해 준다. 양심은 하늘의 품성으로서 진실 그 자체를 말한다. 양심을 갖기 위해서는 사심(私心), 부정적 부러움, 편벽(偏僻) 등을 벗어나야 한다.

  첫째, 사심을 버려야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제님께서는 “사곡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01, “마음을 깨끗이 가져야 복이 이르나니 남의 것을 탐내는 자는 도적의 기운이 따라 들어 복을 이루지 못하나니라.”02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사곡(邪曲)은 사심이고 진실은 양심을 말하는데, 바로 사심을 버리고 인성(人性)의 본질인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 복을 받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 방법임을 밝혀주신 것이다.

  갈등은 한정된 자원을 나누는 과정에서 각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으나, 갈등은 자원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발생한다. 자원이 풍부하더라도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과욕을 부리거나 부정과 편법을 동원하는 사람이 있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백년탐물(百年貪物)이 일조진(一朝塵)이라고 하였듯이,03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쉽게 얻은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될 수 있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은 재물만이 가치가 있고 보람 있게 사용할 수 있고 오래 유지할 수 있으며 갈등 유발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

  둘째, 부정적인 부러움을 버려야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부러움이란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하거나 가지고 싶어함’을 의미한다. 부정적 부러움이란 능력이나 노력의 부족함으로 인해 부러워한 결과가 상대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증오를 낳는 경우를, 긍정적 부러움이란 부러워한 결과가 희망과 확고한 목표의식의 정립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상제님께서는 “사람마다 그 닦은 바의 기국에 따라 그 사람의 임무를 감당할 신명의 호위를 받느니라. 남의 자격과 공부만 추앙하고 부러워하고 자기 일에 해태한 마음을 품으면 나의 신명이 그에게 옮겨가느니라.”04, 또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 말라. 아직도 남아 있는 복이 많으니 남은 복을 구하는 데에 힘쓸지어다.”05라고 말씀하시어, 부정적 부러움을 버리고 긍정적 부러움을 가질 것을 암시하셨다. 이것이 곧 복을 받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셋째, 일을 처리할 때 편벽(偏僻)한 마음을 버려야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제님께서는 “신명은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앉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 자리를 탐내지 말며 편벽된 처사를 삼가하고 덕을 닦기를 힘쓰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리라.”06고 말씀하신 바 있으시다. 편벽은 선입견(先入見)이나 편견(偏見), 또는 편애(偏愛)가 그 원인이며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선입견이란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마음속에 굳어진 견해를, 편견이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편애란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유달리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선입견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선입견으로 상대를 평가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으며, 이런 경우 갈등과 불화는 피할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처음 대하는 대상에 대해 각자의 기준과 방식으로 주관적 가치판단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선입견은 실제로 그리고 충분히 체험해 보기 전에 형성된 견해이기 때문에,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형성되면 쉽게 바뀌지 않으며, 어떤 일을 평가할 때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악장제거 무비초 호취간래 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07, 즉 ‘사람을 나쁘게 보면 다 나쁘게 보이고, 좋게 보려고 하면 모두가 좋게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판단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대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상대의 일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갈등을 불러들일 위험이 아주 크다.

  지금까지 갈등 근절 및 예방 방법에 대해서 언급했지만, 상술한 사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리 양심을 지키며 성실히 살려고 노력해도 예기치 않게 남에게 오해를 받거나 음해를 당하는 일이 있다. 이런 경우 고통을 받고 수치심을 느끼고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복수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렇다고 상대에 맞서 같이 욕하고 비방한다면, 갈등이 또 다른 갈등과 원한을 낳고 상대나 자신이나 모두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나 자신을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항하기보다는 인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피로 피를 씻는 것과 같으니라.”,08 “원수의 원을 풀고 그를 은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면 그도 덕이 되어서 복을 이루게 되나니라.”09고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음해한 사람이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가치 있고 품격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며 이것이 갈등과 원한을 해소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오해를 받고 구설을 사서 분개하는 사람을 가리켜 바람도 불다가 그치나니 남의 시비를 잘 이기라. 동정에 때가 있나니 걷힐 때에는 흔적도 없이 걷히나니라.”10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비가 온 뒤 구름이 걷히듯 때가 되면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함도 다 풀릴 것이다.

 

 

 

 

 

01 교법 3장 24절. 

02 교법 1장 21절.

03 교법 1장 64절 참조.

04 교법 2장 17절.

05 교법 3장 9절.

06 교법 1장 29절.

07 교법 1장 11절. 직역하면, “나쁜 것을 없애려 하니 풀 아닌 것이 없고, 좋은 것을 취하려 보니 모두가 꽃이더라.”

08 교법 1장 34절.

09 교법 1장 56절.

10 교법 1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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