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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에서 ‘상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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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주소연 작성일2020.06.20 조회4,3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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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주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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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기생충이란 말이 유행인 듯하다. 영화계에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난치병에 효과가 있다며 화제가 되는 구충제도 기생충에 관한 것이다. 기생충은 생리학적 문제와 관계된 것이지만 영화 ‘기생충’은 사회적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든 동물체 내에 서식하며 영향을 미치는 기생충은 인간관계의 여러 양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모든 생명체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관계가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는 공생(共生, symbiosis)이라 한다. 반면에 기생(寄生, parasitism)은 ‘한쪽이 다른 쪽에게 해를 입히거나, 상대방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계’, 또는 ‘한쪽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는 관계’를 말한다. 이때, 이득을 보는 생물체를 기생물(寄生物, parasite), 손해를 보는 생물체를 숙주(宿主, host)라고 한다. 기생충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패러사이트(parasite)’는 고대 그리스어의 ‘다른 이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 사람’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01 다른 동물체를 숙주로 삼아 양분을 빨아 먹고 사는 기생충의 특성 때문에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덧붙어서 살아가는 사람’을 흔히 기생충에 비유하기도 한다.02

  영화 ‘기생충’은 상류층과 하류층의 갈등 관계를 기생충에 비유하여 표현한 블랙 코미디물이다. 이 영화가 전 세계 200여 개 이상의 영화상을 휩쓸고 마침내 외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부자와 가난한 자’, ‘상류층과 하류층’ 간의 격차와 갈등이라는 전 세계 보편적인 사회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 같은 문화 콘텐츠는 우리의 현실을 철저히 직시하고 바르게 인식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기생충의 은유적 의미가 어떻게 우리 현실과 연결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누가 기생충일까. 표면상으로 기생충은 저택의 주인 박 사장(이선균 분) 가족에 덧붙어 사는 기택(송강호 분) 가족과 문광(이정은 분) 부부로 보인다. 돈이 많은 박 사장 가족은 오히려 순진하게 그려지고, 가난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는 온갖 술수를 써가며 부자를 속여 돈을 갈취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대비를 ‘언덕 위에 사는 부유층’과 ‘반지하에 사는 빈곤층’과 같이 위, 아래의 공간적 분리로 표현하였는데, 한 평론가는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주거공간의 역사를 들어 “과연 누가 이 사회에 기생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반지하공간은 원래 전쟁 시 대피소로 활용하기 위한 곳이었는데 건축주가 이것을 임대하여 수익을 낼 수 있게 됨에 따라 지하층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건축법이 변경되었다. 이처럼 부유층에 주로 유리한 사회제도를 들어 오히려 소수의 부유층이 다수의 서민에 기생하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 것이다.03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문제는 ‘누가 기생충인가’가 아니라 ‘서로에게 기생하는 현실적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생충에 대한 부정적 의식은 ‘무임승차’처럼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상대방을 이용해 살아가는 것 때문인데 사실 이것은 기생충의 타고난 속성 즉, 스스로 생존에 필요한 영양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는 불완전성에 기인한다. 가난한 기생충으로 그려지는 두 가족,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가 숙주에 비유되는 박 사장 가족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슬픈 상황이 된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이다.

  기택은 몇 년 전 실제로 일어난 ‘대만 카스텔라 사태’로 한순간에 재산을 다 잃고 지하 방에 살게 되었고, 문광은 사채를 써서 채권자들에게 쫓기는 남편을 지하에 숨겨 놓고 자기가 먹여 살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대만 카스텔라는 한때 크게 유행했다가 몰락한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방송 미디어에 의해 피해를 본 사례이고, 사채는 과도한 이자로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돈에 의해 한 가정이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취약한 사회구조에서 스스로 설 힘을 잃고 부자에 기생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공존 방식은 서민의 음식인 라면에 비싼 한우 고기를 넣어 만든 ‘짜파구리’가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의 평범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의 비극적 결말은 이러한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가난한 기생충들이 숙주 박 사장을 차지하려는 다툼 끝에 결국 살인이 일어나고, 이것이 다시 박 사장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은 현대 사회의 상류층과 하류층 간의 불합리한 사회구조에서 증폭된 갈등을 표현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음 한편이 불편한 것은 바로 이것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혁명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복잡한 상황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 것이다. ··· 영화에서는 명확한 악인이 없는데도 무서운 비극이 일어난다.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04 갈등과 대립이 생기는 사회, 이에 대한 원인도 명확하지 않은 채 출구가 보이지 않고 불안한 오늘날의 현실은 답답하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과연 해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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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기생충」, 『네이버 영화』 

 

  한 가지 희망이라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늘 볼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숙주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관계임에도 지하에 있는 부부에게 음식을 챙겨주려는 기택의 부인, 머리를 다쳐 쓰러진 기택의 아들을 살리고자 작은 여자 몸으로 그를 업고 가는 박 사장의 딸, 들킬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죽은 문광을 땅에 묻어주는 기택의 모습 등이 그렇다. 이처럼 서로를 살려주고 챙겨주는 인간의 마음은 계급이나 빈부를 초월한다. 이 영화가 더 빛이 나는 것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면서도 이런 휴머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배우 송강호는 “제목은 기생충이지만 ‘공생’과 ‘상생’을 이야기하는 영화”05라고 하였고, 한 신문 기고자는 “문명론적 측면에서 처음의 진화론은 약육강식의 포식 단계를 말하였다. 이후 생물의 생존방식을 숙주와 기생 관계로 바라보는 미셀 세르(프랑스의 철학자)의 시각이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바이러스도 혼자 살지 못하고 다른 세포에 기생하는 존재다. 그리고 마굴리스라는 학자는 기생에서 상생의 단계로 나아가는 구조를 제시했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다”라면서 이 영화에 함축된 상생의 의미를 말하였다.06

  상생은 단순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공생의 관계와는 다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본가와 노동자, 생산자와 소비자 등 모두가 서로가 기대어 사는 공생의 관계에 있다. 부자 박 사장은 집안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고 기택 가족도 일할 곳이 필요해서 둘이 만난 것이다. 하지만 한쪽이 자기의 이득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면 공생의 균형이 깨어지고 기생의 관계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공생의 관계가 쉽게 깨어질 수 있는 것은 이득만을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십 년을 넘게 함께 한 집사 문광을 박 사장 부인(조여정 분)이 한순간에 내친 것도 병균이 있는 문광이 더는 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화는 돈이라는 실리를 매개로 한 자본주의 사회의 공생 관계가 얼마나 쉽게 기생으로 변하고 급기야는 모두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뭔가 새로운 관계 설정을 요구한다. 그것이 바로 상생이라는 것이다. 상생은 실리를 따지는 관계가 아니라 ‘네가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다’라는 감사의 마음,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살펴주는 인(仁)의 마음에 기초한다고 할 것이다.

  ‘해원상생’은 오랜 상극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모두가 상생의 관계에서 함께 번영하는 미래를 여는 사상이며 실천윤리이다. 상생은 내게 도움이 안 된다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잘 되게 함으로써 내가 잘되는 원리이다. 상제님께서 우리에게 인(仁)자를 붙여주시며 잘 지키라 하셨듯이07, 이런 따뜻한 인의 마음으로 상생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서는 것이 우리 수도인의 사명이 아닐까. 기생이라는 문제 상황을 통해 상생을 제시한 영화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의 이변을 일으키며 이룩한 대성공은 상생의 진리로 지상천국 건설을 지향하는 우리 수도인에게 포덕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다.

 

 

 

 

 

01 정준호,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서울: 후마니타스, 2002), pp.18-19. 

02 「기생충」, 『네이버 국어사전』

03 「윤형중이 본 〈기생충〉과 사회경제 정책, 반지하 주거공간을 중심으로」, 《씨네21》, No.1210. 2019. 6. 20.

04 https://www.youtube.com/watch?v=5p4VMgrqBxk

05 「제목은 ‘기생’이지만 ‘공생’이야기하는 영화」, 《경향신문》, 2019. 5. 29.

06 「기생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상생이었다」, 《조선일보》, 2020. 2. 12.

07 공사 2장 4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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