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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얼굴은 제가 못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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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진 작성일2020.06.18 조회3,9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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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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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얼굴은 제가 못 본다.”라는 속담은 자기의 허물을 자신이 잘 모를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속담의 의미를 익히 알고 있고 자신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허물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을까요? 이와 관련하여 간단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버지가 계십니다. 젊었을 때는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셨고 정년 퇴임 후에는 제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아이까지 키워주시며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로 제가 정리를 잘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인데, 아버지께서도 정리를 잘하시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도 잘하지 못한다고 말씀드리면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너 정도는 아냐!”라며 완강히 부인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보기 쉽지 않지만 어쩜 저렇게 당신 자신에 대해 모르실까’ 하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남동생 방에 들어갔다가 더러워진 동생의 방을 보고 잔소리를 하자 동생은 누나나 잘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이가 없어서 “내가 아무리 그래도 너 정도는 아냐!”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간 제 기억 속에서 아버지와 다툴 때의 상황과 현재 상황이 겹쳐졌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당신의 모습을 모른다고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저도 자신의 모습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와 관련하여 심리학에는 ‘변화맹의 맹(change blindness blindness)’이란 표현이 있습니다. 여기서 변화맹(變化盲)이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나 관심을 가진 것만을 인식하는 경향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이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정 편향과 비슷합니다. 변화맹의 맹은 관심 분야나 필요한 것만 보는 경향 때문에 생기는 변화맹의 현상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조차 모를 때 쓰는 말입니다.01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자신의 모습을 잘 인식하지 못함에도 스스로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는 변화맹의 맹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변화맹의 맹에 빠져 있는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영국 공영방송 BBC의 채널 중 BBC Two라는 채널에서는 세계적으로 흥미를 끌거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키워드를 소개하는 ‘오늘의 단어’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여기서 ‘꼰대(kkondae)’라는 말이 2019년 9월 23일자의 ‘오늘의 단어’로 선정되었습니다. 꼰대라는 말은 무조건 어른 대접만 받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정작 꼰대인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사람인 줄 모른 채 대개 스스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위한 꼰대 테스트를 해서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권위적인 사람이 자신은 탈권위적이며 쿨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순간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감히!”라는 말을 남발하며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변화맹의 맹에 빠지기 쉬운데 이럴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깊이 되새기며 반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저도 스스로 한번 더 질문해 보려 합니다. ‘남들이 아는 내 모습과 내가 아는 내 모습이 얼마나 일치할까?’라고 말입니다.

 

 

 

 

 

01 김민석, 『딱딱한 심리학』 (서울: 현암사, 2016), pp.170~17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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