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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회(訓誨) 실천을 통한 상생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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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27 조회3,5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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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백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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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은 ‘나와 상대, 서로가 잘되는 것 혹은 서로 잘되게 하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의 슬픔이 나의 기쁨이요.’, ‘상대와의 경쟁에서 이겨야만 내가 살 수 있다.’라는 상극의 논리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 세상에서 상생은 성인·군자 같은 사람이나 생각해봄 직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신문, TV,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에서 ‘상생의 정치’, ‘협력사와의 상생’, ‘노사 간의 화합과 상생’ 등과 같이 상생이란 용어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을 볼 때, 상생은 어느덧 현 세상의 추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상극이 세상에 끼쳐온 병폐들을 극복하고자 하는 반성으로도 볼 수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구천상제님께서 지금으로부터 142년 전에 이 땅에 강세하셔서 진멸지경에 놓인 천지인 삼계를 살리고자 행하신 천지공사에 있다. 천지공사의 핵심원리가 바로 상생이며, 그 원리대로 현 세상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상낙원으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대순진리회 도인들은 상제님의 숭고하신 뜻을 받들기 위해 상생 실현에 빈틈없이 준비해야 하는데, 그 하나의 방법은 도전님께서 “훈회가 다른 것이 아니라 해원상생이다.”01라고 해주신 말씀에 따라 ‘훈회’를 실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훈회라 하면 교훈과 비슷한 말로, 성인이 일반대중에게 혹은 손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타일러 가르쳐 뉘우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순진리회의 훈회는 도주님께서 짜놓으신 것이기에 사람을 정신개벽, 인간개조 해줄 수 있는 구천상제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이글에서는 훈회의 실천이 어떻게 상생의 실현으로 이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훈회의 첫 번째 항목은 ‘마음을 속이지 말라’이다. 여기서 이 마음은 양심을 의미한다.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으로, 사물의 가치를 분별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잣대 역할을 한다.

 

사람이 물욕(物慾)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사심에 차있으면, 그 욕구 충족을 위해 정당한 노력보다는 도리에 어긋난 언동을 감행하기 일쑤다. 이는 사심이 ‘이번 한 번만 하고 다시는 안 할 테니 한 번만 눈감아다오.’, ‘나 혼자 착하게 산다고 누가 알아주기나 한데, 더구나 남들은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만 살지 않는가!’라는 식으로 사심과 타협하거나 자기 합리화를 하도록 유도하는, 즉 양심을 속이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처음 양심을 속일 때는 ‘그것은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돼.’라고 행동을 제지하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가슴이 뛰고 마음도 불안하여 주저하게 되지만, 이것도 빈번해지면 양심의 가책은 물론 죄의식마저도 무뎌져 자연스레 도리에 벗어난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더 잘 보는 경향이 있다. 나 자신이 늘 사심에 차있다면, 정당한 노력보다 양심을 속이며 도리에 어긋난 언동으로 그 욕구를 채우려 할 것이다. 이를 예의 주시하던 주변 사람이 ‘저 사람은 항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보단 어떻게 해서든 변명하거나 합리화시켜 모면하려고 하네.’, ‘저 사람은 매사 일 처리가 불투명해서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라고 판단하게 되면, 자신의 마음을 닫은 채 나를 형식적이고 사무적으로만 대할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상생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내가 먼저 사심에서 벗어나 양심을 속이는 일이 없도록 하며 한결같이 정직하고 진실하게 상대를 대하면, 상대방은 어느 순간엔가 ‘저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어. 내 속내를 털어놓아도 괜찮을 거야.’라며 나를 신뢰하게 될 것이다. 상대방은 비로소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열고 나에게 다가옴으로써 상대와 나 사이에는 진실한 관계가 형성되어 상생의 터전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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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회의 두 번째 항목은 ‘언덕을 잘 가지라’이다. 이는 말을 함에 있어 덕을 잘 갖춰서 하라는 의미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덕은 ‘도심의 자취’라고 설명되어 있는데,02 도심을 ‘남을 잘되게 하려는 마음03, 또는 진실한 마음’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따라서 ‘언덕을 잘 가지라.’를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진실하고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 하라.’라고 바꿔볼 수 있겠다.

 

사람이 상대에 대해 이해나 배려 없이 무심코 말을 하거나 애당초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투로 말함으로써 상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상대가 말한 사람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데, 이를 상대가 말해주기 전에는 알기가 어렵다. 상대가 그 감정을 스스로 풀어내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말한 사람에게 이전과는 다르게 안 좋은 언행을 일삼을 수 있다. 말한 사람도 그 이유를 모르기에 상대의 돌변한 언행에 기분 상해할 것이다. 서로 상대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계속 불거지면 상극이 조장되어 상생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더라도 최소한 언덕을 잘 가지게 되면 ‘가는 말이 고아야 오는 말이 곱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처럼 상대도 나에게 좋게 말할 것은 물론이고, 나에 대해 안 좋은 감정도 눈 녹듯 풀려나갈 것이다. 자연스레 말한 당사자와 상대는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이는 상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훈회의 세 번째 항목은 ‘척을 짓지 말라’이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남에게 척을 짓는 행위로 남을 미워하는 것과 남의 호의를 거스르는 것등이 설명되어 있다.04

내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이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나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질 것이고, 또한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에 대해 기분 나빠하거나 건성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은 서운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그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하면, 척은 잊고 지냈던 지난날 나와의 안 좋았던 일들을 불현듯 생각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래 맞다. 그때도 이 사람이 이번처럼 나에게 그랬었지. 이 사람이 예전부터 나를 우습게 봤던 것이 틀림없어!’라는 결론에 도달하면, 꾹 참았던 부아가 치밀어 올라 나중에는 주체할 수 없는 증오와 분노로 증폭되어 나를 원수처럼 생각할 것이다. 결국, 상대를 미워하거나 상대의 호의를 거스르면 이것이 척이 되어 서로 간에 상극이 조장된다. 따라서 남을 미워하기보단 사랑하고, 다른 사람의 호의가 나에게 별반 도움이 안 되었더라도 나에 대한 그 사람의 선심을 생각하여 고마워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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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주변 사람이 잘못에 대해 충고라도 하게 되면, “너나 잘하세요.”라며 자존심 상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면 ‘저 사람이 기분 나빠할까 봐 망설였는데, 오히려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 말하기를 잘했어. 다음에도 말해주어야겠다.’라며 상대는 기뻐할 것이다. 이리하여 다음부터는 나에게 주저 없이 충고해줄 것이고, 이는 미처 발견 못 한 나 자신의 잘못을 개선할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워하거나 호의를 거스르지 않고도 다른 사람에게 척 짓는 경우가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에 잘난 척하거나 허세 부릴 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기분 나쁜 듯이 굳은 표정 짓고 있을 때, 이를 본 주변 사람은 불쾌해질 수 있는데, 이것이 척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첫 번째 경우, ‘저 사람 쥐뿔도 없으면서 괜히 허세나 부리고 있네.’, ‘저 사람 잘난 척하는 모습을 눈꼴사나워서 못 봐주겠네.’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는데, 이는 미운 감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번째 경우, ‘저 사람이 나한테 무슨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나, 왜 인상을 쓰고 있지.’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이처럼 나의 언행과 표정이 상대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갖게 하고 이것이 다시 나를 미워하는 척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경우처럼 척을 짓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밝고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히 자신은 낮추고 상대는 높이며 존중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는 전생과 현생에 상대에게 원한 맺히게 한 것이 인과응보로써 나에게 심신의 고통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전생에 지은 척은 이미 지난 일이라 어쩔 수 없다 해도 앞으로 새롭게 척을 지음으로써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척은 자신의 심신의 고통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상극을 조장하여 상생이 움틀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훈회의 네 번째 항목은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과 은혜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여기서 사람 간에 어떠한 마음을 가질 때 주고받는 은혜가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상대에게 아무런 바람 없이 도움이 되거나 잘 되기만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혹시라도 ‘내가 이번에 해주었으니, 최소한 나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하겠지.’라고 바라는 마음이 있었는데, 상대가 고맙다는 말은커녕 오히려 시큰둥한 표정이라도 짓는다면 서운하거나 미운 마음이 들 것이다. 이런 마음들은 상대를 증오하는 마음으로 더욱 커져 애초 은혜를 베풀지 아니한 만 못한 더 나쁜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 반대로 상대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은 때론 그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지라도, 그 사람은 나에 대해 선심을 베푼 것이기에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추호도 상대가 자신의 덕을 몰라주는 것을 괘의치 말아야 하며, 은혜를 받은 사람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은혜를 갚으려 노력해야 한다. 서로 이러한 노력을 해나갈 때 서로 잘되게 하는 상생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사람은 주변 사람만이 아니라 천지, 국가사회, 부모, 스승, 직업의 은혜를 받음과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 설명되어 있다.05 천지가 베풀어준 생과 수명과 복록(福祿)의 은혜는 인도(人道), 국가사회가 베풀어준 보명(保命)과 안주(安住)의 은혜는 국민의 도리, 부모가 베풀어준 출생과 양육의 은혜는 효도, 스승이 베풀어준 교도(敎導) 육성(育成)의 은혜(恩惠)는 제도(弟道), 직업이 베풀어준 생활과 녹작(祿爵)의 은혜는 직분(職分)을 다함으로써 갚아나가야 한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은혜를 받으며 지금껏 살아왔음을 스스로 인식하게 된다면, 내가 잘나서 현재의 자신이 되었다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도리와 책무를 다하여 지금껏 받아온 은혜를 갚고자 함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베풀어준 주변 사람들의 고마운 은혜도 어떻게 해서든 갚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처럼 노력한다면 서로 간에 상생은 저절로 이룩될 것이다.

 

훈회의 다섯 번째 항목은 ‘남을 잘 되게 하라’이다. 남을 잘 되게 함은 그 사람의 나에 대한 척을 풀거나 베풀어준 은혜를 갚는 일이므로 해원과 보은을 하여 상생을 이루는 방법이다. 상제님께서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교법 2장 56절), “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 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성을 구하러 다니나….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교법 2장 20절)라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남을 올바르게 대우(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도 포함)하면 길성06이 땅이 아니라 자신에게 비춰짐으로써 바라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다. 결국, 사람을 잘되게 하는 것은 상생을 이룰 방법이자 자신을 가장 잘되게 하는 길이다.

따라서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주변 사람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잘되게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고 이를 실천해나갈 때 서로가 잘 될 수 있는 상생이 이룩될 것이다.

 

훈회의 5가지 항목을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 상생을 실현할 수 있는 길임을 살펴보았다. 상제님의 뜻이 그대로 녹아있는 중요한 가르침인 이 훈회를 성경신을 다하여 스스로 실천하고 지켜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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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전님 훈시(1993년 5월 28일) .

02 『대순진리회요람』, p.19, 참조.

03 우리의 일은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이니라.(교법 1장 2절) / 남을 잘되게 함은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기본원리(基本原理)요 구제창생(救濟蒼生)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라.(『대순진리회요람』, p.20.)

04 『대순진리회요람』, pp.19~20. 참조.

05 『대순진리회요람』, p.20, 참조.

06 지존(地尊)시대에는 길성소조(길성이 비추는 곳)를 세상에 커다란 혼란이 올 때 피난할 수 있고 평상시에는 집안을 잘 되게 해주는 명당으로 여겨왔다.

 

<대순회보 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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