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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발판은 안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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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8.23 조회5,0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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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김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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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즈음이었던 것 같다. 호우로 본부도장 담장 기와 흙이 일부 유실되어 교체작업에 들어갔었다. 담장은 길이도 길이지만 그 높이도 만만치 않다. 적잖은 인력과 시간이 요구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비계공(飛階工)들이 바닥부터 비계01를 설치하면 종사원들이 발판을 놓았다. 막상 작업에 참여해 보니 빨리하려는 마음에 비계공 작업 속도가 왠지 더디게 느껴졌다. 어떨 때는 고지식할 정도로 일하는 것을 보고서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조차 들었다.

 

한국인에게는 ‘빨리빨리’라는 신속함의 정서가 있다. 반면 ‘뜸’을 들이는 차분함의 문화도 있다. 밥을 다했어도 바로 담아 내놓지 않는다. 솥 안의 열기로 밥알 하나하나가 익을 수 있도록 조금 시간을 준다. 몇 숨을 고르고 나서야 솥뚜껑을 열어 정성스레 담아낸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시간의 미학이 내재해 있다. 안타깝게도 발효와 숙성의 문화가 근대 이후 만들어진 속도 문화로 인해 잊혀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은가?

 

이런 생각에 뜸을 들이다 보니 지켜야 할 원칙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확보되어야 한다.’ ‘걸려 넘어지거나 미끄러지지 않아야 한다. 또한, 충분히 하중을 견딜 수 있어야 작업자의 심적 부담이 적어 적극적으로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철저히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일에만 묻혀 버리면 주위에 있는 사람은 사라지고 발밑의 발판만 선명해진다.

 

시간이 지나자 일이 탄력을 받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늦어 보이지만 차근차근 진행하다 보니 속도가 붙은 것이다. ‘만약 원칙 없이 자기 생각대로 했다가는 결국 어그러져 타인까지 힘들어지겠구나.’ 숨 가쁘게 발판을 놓으면서 불쑥 떠오른 깨달음이었다. 빨리하려는 마음과 ‘설마’ 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쉽고 간편한 방법이 나도 모르게 덩달아 연상되었으니! 도전님께서 작업이 공부라는 말씀을 하셨듯이 이 작업으로 큰 공부를 한 셈이었다.

 

수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순진리회는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받들 수 있는 수도인을 양성하고 있다. 문제는 목적한 바를 얻기 위해 목표를 세우면서 마음이 급해져 앞만 보고 간다는 데 있다. ‘빨리빨리’ 가면서 수반까지 그렇게 가게 다그친다. 그러니 잠시 쉬어가자고 눈길을 주기 부담스럽다. 수반이 수도에 빨리 참여하기를 바람은 수도인이라면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한순간의 조급함으로 수도인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반이 걷고 있는 발판이 안전한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고 “급할수록 둘러가라”는 말이 있다. 상제님께서도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고02 말씀하셨듯이 일에 임할 때 멀리 볼 수 있는 눈과 발밑을 볼 수 있는 신중함이 공존해야 한다. 나의 수도에서 발판이 잘 놓여 있다면 도통(道通)이라는 목적지까지 한 발자국씩 걸어가더라도 걱정되지 않는다. 꾸준하게 가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곳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 발판이 나 혼자가 아니라 선각과 후각이 같이 갈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하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할까? 나의 발판이 안정되고 주위 도우의 발판도 안정되면 방면 전체의 발판은 더욱 확고해진다. 방면에 속한 모든 수도인의 발판이 안정되면 방면 전체의 조직체계는 굳건한 발판으로 놓이게 된다. 선각은 수반의 발판이 되고 수반도 선각의 발판이 되어 서로 감사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각자가 서로 발전할 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되어주니 얼마나 고마울까? 이때, 어느 수도인이 들어와도 안정감 있게 수도를 할 수 있다. 상호 유기적으로 이어진 발판 속에 수도인의 발복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수도에서 발판은 무엇에 해당할까? 운동 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기초체력이 중요하듯 수도에서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본기가 요구된다. 『대순지침』에는 도전님께서 "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고 말씀하셨음을 밝히고 있다. 결국 『대순지침』은 도전님께서 정하신 말씀에 대한 인식, 실천, 생활화로 귀결된다. 대순진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몸소 실천하며 일상 현실에서 끊임없이 적용해나가려는 마음가짐이 준비될 때 참된 수도가 비로소 시작된다.

 

도장 작업이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숭도문 안쪽으로 읍배를 드리고 잠시 청계탑으로 올라가다 보면 나무 사이로 담장 위에 멋지게 놓인 기와가 엿보인다. 당시 작업을 위해 수도인들이 오가면서 지나갔던 발판이 떠올랐다. 묵묵하게 ‘뜸’을 들였던 비계공 덕분에 걱정 없이 작업했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 나 자신의 발판이 어떤지 반추해보게 된다. 나 역시 올바르게 수도하고 있는지, 나의 발판이 안전한지 말이다.

 

 

 

 

01 건축공사 때에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가설물로, 재료운반이나 작업원의 통로 및 작업을 위한 발판이 된다. 두산백과사전 참조(http://www.doopedia.co.kr)

02 교운 2장 34절 참조.

 

 

<대순회보 2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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