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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숙 작성일2018.05.10 조회6,02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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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40 방면 평도인 장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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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살, 6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입도는 21살에 했지만, 꽤 오랜 시간을 한쪽 발만 도에 걸쳐둔 채 수도생활에 소홀했습니다. 사실 도에 걸쳐둔 그 다리마저도 빼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저는 이기적인 수도생활을 한 것입니다. 내가 좋을 때만 선각을 찾고 정작 선각분들이 수도하자고 이끌어주실 때는 멀리했습니다. 그렇게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남편을 만난 후부터 천방지축 망아지 같았던 인생이 그나마 잠잠하게 잡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남편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시댁에 들어가 결혼생활을 시작한 후 곧바로 첫째가 생겼습니다.

 

사랑의 결실인 아이가 내 몸속에 자리해 함께한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결혼 전에도 교제 기간이 짧아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3개월 전만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했던 결혼생활을 한다는 것이 마치 꿈만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결혼은 저에게 즐거움과 함께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동시에 안겨준 셈입니다. 게다가 부모가 될 준비도 없이 임신하게 되어 마음마저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에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남편에게 의지해보려고도 했지만, 남편 역시 갑자기 더해진 책임감에 힘겨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시부모님께서 그런 남편을 대신해 저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결혼 후에도 선각분들과 연락은 주고받았지만 혼자였을 때만큼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환경의 변화로 저는 임신 초기에 많이 힘들어했는데, 입덧 덕분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고 얼마간은 이불 속에서만 지냈습니다. 힘든 임신 초기를 잘 넘기고 출산을 앞둔 막달에는 치성 음복이 먹고 싶어서 시댁에는 정성을 드리러 간다고 하면서 음복을 먹으러 회관에도 갔었습니다. 그때의 음복은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부지런한 분이십니다. 출산 후에는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편하게 지내며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게 문제였을까요. 시어머니께서는 항상 남편과 제 끼니를 챙겨주시는가 하면 아이도 봐주시고 집안일까지 해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일상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사람이 감사함을 잃게 되면 다 불만이 되나 봅니다. 매일같이 같은 말만 하시는 시어머니와는 소통이 되지 않는 데다가 힘든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할 곳이 없다 보니 급기야 우울증까지 생겼습니다.

 

이때 친정어머니의 적극적인 권유로 우리 부부는 분가를 결정하고, 첫아이가 8개월 때 전세로 아파트를 얻어 나왔습니다. 나오고 보니 살림도 남편 식사 준비도 모든 게 제 몫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 살림이라는 생각에 욕심도 부리고 깔끔한 남편 성격에 맞추려고 부지런히 쓸고 닦고 했는데 살림에만 집중하다 보니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자기표현을 잘하지 않는데도 문제가 있는지 모르고 지냈습니다. 저는 아이가 조용하면 잘 자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선각분들이 찾아오셔서 아이를 보시고는 제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실 큰아이는 또래 3살 아이보다 말도 적고 감정표현도 거의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문제는 통제 없이 텔레비전만 보여주고 칭얼거리면 핸드폰만 보여주며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지 못한 게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항상 옆에서 함께하면서도 아이의 발달문제를 알지 못했던 저는 선각분들의 말을 들고서도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생겼을 때도 저는 첫째 아이의 변화를 알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육아 정보에 따르면 아이들은 동생이 생기면 엄마를 빼앗기는 것 같은 느낌에 시샘도 하고 이유 없이 떼를 쓰며 불안해한다고 합니다. 그런 아이의 불안한 마음도 모른 채 어린이집을 세 번이나 옮겼고, 출산을 앞둔 막달에는 시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주 양육자가 자주 바뀌는 것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제가 힘드니까 누가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시어머니 사정도 아이의 상태도 살피지 않고 무작정 그렇게 했습니다.

 

둘째 아이는 선각분들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모시며 정성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둘째를 가진 후 같은 태몽을 두 번이나 꾸었습니다. 태몽 이야기를 선각분들에게 하니 선각들은 정성을 많이 드려야 할 아이라고 하셨는데, 그 후 저는 아이를 위해서 매일같이 기도를 모시며 심고 드렸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는 예민한 아빠를 닮아서 쉽진 않았지만, 태교도 하고 정성을 많이 드려서 그런지 첫째 아이와 다르게 표현력도 좋고 강단 있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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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저는 늘 인생에 대한 책임감 없이 상황이 힘들 때면 외면을 일삼고 좋은 것만 취하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결혼하고,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도 낳았습니다. 나 하나도 책임지지 못한 삶을 살면서 엄마가 된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첫째 아이는 제가 살던 대로 키웠더니 저를 닮아가는 것 같아 걱정됐고, 둘째 애도 몸이 약하고 사고도 많이 쳐서 걱정이 되다 보니 상제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되어서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니 상제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제가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며 살던 사람이 아니다 보니 정성에도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를 키우던 때와 마찬가지로 육아 방식과 훈육에 일관성 없이 감정대로 하다 보니, 아이들은 소리치며 싸우고 다투는 날이 많았습니다.

 

둘째 출산 이후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아이들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하며 함께하자는 계획을 세우고서도 막상 일상에서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는 조곤조곤 일러주며 표현하기보다 아이의 감정을 무시한 채 화를 내는 날도 많았습니다. 특히 첫째 아이는 둘째와 세 살 터울밖에 나지 않는데도 첫째라는 이유로 더 구박했습니다. 눈치 빠른 동생은 이런 엄마의 행동을 이용해서 자신의 잘못도 언니에게 전가해 언니를 혼나게 하는 상황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큰 아이는 점점 저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거 같았고, 가르치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서로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욱하는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냈고, 그러고 나면 죄책감에 선각분들께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모든 상황이 감당이 안 되고 극으로 치닫고 있을 때 선감께서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선감께서는 제가 힘들 때마다 전화해도 언제나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어주시며 제 마음을 다독여 주셨습니다. 특히 아이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지금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게 답도 일러주셨습니다.

 

선감의 가르침대로 노력한 결과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실제로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저의 선택에 대해 설명하고, 서로에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필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저를 표현하는 게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부끄럽고 낯간지러운 것을 극복하고 실천에 옮기니 아이들이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보였습니다.

 

요즘에는 여섯 살인 큰 애도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잘 표현하고, 이해와 배려심도 생겼습니다. 이제는 세 살 동생을 이해해주는 여유도 생기고 동생을 잘 이끌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대견한 마음이 듭니다. 저 또한 저만 생각하고 살아가던 사람에서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생활방식과 나를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던 저를 아이들이 바꾸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이기 이전에 수도인으로서 그동안 ‘남을 잘 되게 하라’는 훈회의 내용과 모자지정(母子之情)의 가르침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기적인 삶을 고집해 온 것이 부끄럽습니다. 아이들과 저의 변화 또한 선각분들이 없었더라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현재 저는 선각분들의 관심과 정성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더없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는 선각분들이 주신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자식뿐만 아니라 몇 안 되는 후각들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후각들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그들과 진심으로 함께할 때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고 더 큰 행복을 전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이해하였기에 이제는 그 마음을 끝까지 지키려 합니다. 선각분들의 말씀을 따르고 행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과 성격을 고쳐나가니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과거의 일은 잊고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아이들과 수도에 전념하며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대순회보 1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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