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사의 성패를 가늠하는 두 가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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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수 작성일2018.01.10 조회5,219회 댓글0건본문
잠실1 방면 보정 박영수
우리 수도인들이 사회생활과 수도생활에서 성공을 하기 위한 마음 쓰는 법은 어떠해야 할까요? 재주와 능력이 일의 성공을 이루기 위한 추진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재주와 능력을 사용하는 마음의 바탕입니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 하듯이 사람의 재주와 능력은 마음을 쓰는 법에 따라서 주변인과 나아가서 사회의 공공복리(公共福利)에 덕이 되기도 하고 해악을 끼치기도 합니다.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서 재주와 능력보다 마음 씀씀이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입니다.
『설원(說苑)』 「존현편(尊賢篇)」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은 그 나라도 작고 편벽한 곳에 처해 있었으면서도 패자(覇者)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공자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나라는 작으나 뜻이 컸기 때문에 비록 편벽한 곳에 처해 있었지만, 그 정치가 훌륭하였고, 그 거사가 과감(果敢)하였으며, 그 모책(謀策)이 조화를 이루었고, 그 법령이 투안(偸安 : 할 일을 미루어 두고 눈앞의 안일을 탐함)에 젖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게다가 친히 죄인으로 묶여 있던 오고대부(五大夫 : 양가죽 다섯 장을 주고 산 대부 즉, 백리해(百里奚)를 일컫는 말임)를 기용하여, 그와 더불어 사흘 동안이나 의견을 나누어 본 후, 그에게 정치를 맡겼습니다. 이 때문에 패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니, 능히 왕자(王者)의 업(業)이라도 이룰 수 있었는데 패업(覇業)으로 끝난 것은 오히려 작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중원(中原)의 서쪽 변방(邊方)에 위치했던 진(秦)나라의 목공이 동으로는 하서(河西)를 빼앗고 서로는 서융(西戎)을 쳐서 춘추 5패(五覇)의 한 사람이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인재를 등용하는 것에 대한 강한 열의를 가지고 이웃 나라의 어진 이를 모두 초빙해서 소국으로서의 열세를 극복한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신하가 가진 재주와 능력보다 꿋꿋한 기질(氣質)에 능히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성품을 인재등용의 준거로 삼았던 목공의 인재관(人材觀)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경』에 상제님께서도 『대학(大學)』과 『서전(書傳)』 「진서장(秦誓章)」의 목공(穆公)의 말을 인용하시어 범사에 진정한 성공을 위한 마음 쓰는 법을 밝혀주셨습니다.
또 대학(大學)의 다른 장(章)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고 이르셨는데 글귀는 이러하도다.
如有一介臣斷斷 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不 若其口出 寔能容之 以保我子孫黎民 尙亦有利哉 人之有技 疾以惡之 人之彦聖 而違之 不通 是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01 (교운 1장 57절)
남의 신하된 자로서 임금에게 충성하는가, 반역하는가 하는 것이 이 두 마음(如有容, 不能容)에 달려 있는 것이고 나라의 흥망이 이 두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며, 세상사의 흥망성쇠가 다 이 두 마음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전 우주가 상제님의 일속(一屬)이고 지구촌이 한 가족이라는 깨달음에 기초하여 나와 남은 다르지 않다는 동류의식으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주를 자신이 가진 것처럼 기뻐하고 다른 사람의 훌륭한 성품을 말로만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신 또한 본받고자 하는 포용지심(包容之心)은 진정 수도인들이 간직해야 할 마음가짐의 모본(模本)입니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사람들은 누구나 남다른 재능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그리고 순결하고 진실한 마음의 씨인 천품지질(天稟之質)은 다 같이 타고났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재능을 다 가질 수 없고 성인(聖人)의 성품(性品)은 누구나 내재되어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이 가진 재능을 시기 질투할 것이 아니라 내 것과 같이 여기고 다른 사람이 지닌 아름다운 성품을 드러나지 않게 막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내어 주변을 밝게 하고 내가 지닌 성품처럼 기뻐하는 것이 상제님의 도문소자로서 간직해야 할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속담에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은 넓고 크게 먹으면 천지를 담을 수 있지만 옹졸하게 마음먹으면 바늘구멍보다도 작아지는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늘 너그럽고 크게 먹을 일입니다. 도전님께서도 『대순지침』에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80. 9. 23)고 훈시하셨습니다.
진실로 용납함이 있는 여유용(如有容)의 마음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며, 미우나 고우나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와 같은 포용력입니다. 바다의 어원이 “받아들이다”에서 왔듯이 크고 작은 모든 시냇물과 강물을 받아들여 거대한 대해를 이룬 것이니, 인간세상에서 바다는 넓고 큰 포용력의 상징입니다. 태산이 한 점의 티끌을 마다하지 않고 바다가 한 점의 물방울을 마다하지 않듯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지니는 것이 결국 수도인들의 심수덕행(心修德行)의 출발점이자 귀결처입니다.
종단이 단결하고, 가정이 화목하고 이웃이 화합하며 사회가 화평하고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이 모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용(如有容)의 마음을 간직하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려있는 것이니, 우리의 수도생활에 늘 깊이 있게 성찰하여 능히 용납하는 마음을 길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01 어떤 한 신하가 있어 한결같이 성실하기만 하고 다른 재주는 없으나 그 마음이 어질고 너그러우면 용납함이 있는 것과 같은지라 남의 재주를 마치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기고, 남의 훌륭한 성품을 마음으로 좋아하되 비단 말뿐이 아니라면 진실로 능히 용납하는 마음이 있는지라 능히 내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남의 재주를 시기하여 미워하고 남의 훌륭한 인품을 배척하여 드러내지 못하게 하면 진실로 능히 용납하는 마음이 없는지라 내 자손과 백성을 보존치 못할 것이고 또한 위태로울 것이다.
<대순회보 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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