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言德)의 중요성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성호 작성일2018.01.08 조회5,067회 댓글0건본문
해운대 방면 선무 김성호
불교 경전 중 가장 오랜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입 속에는 도끼도 함께 태어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어리석은 자가 악한 말을 함부로 해서 그 도끼로 자신을 찍는다.’는 말의 부정적인 파장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을 함에 있어 입을 닫는 일보다 열어야 할 일이 더 많다. 먹기 위해서, 숨을 쉬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을 열어야 한다. 모두가 입을 갖고 있지만 그 입으로 나오는 말은 천차만별이고 한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명심보감에서는 ‘차라리 밑 빠진 항아리를 막을지언정 코 아래 가로지른 것은 막기 어렵다’며 ‘입을 지키는 것은 병(甁)처럼 하고, 뜻을 지키기를 성(城)처럼 하라.’고 가르친다. 이와 더불어 현대사회에서는 말이 타인과의 의사소통 수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 컴퓨터와 더불어 현대사회의 3대 무기로 여겨질 정도로 말이 갖는 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엄청나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내뱉는 말은 단순히 의사전달 수단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이기에 때로는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부정적 표현수단으로 때로는 애정과 고마움 등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표현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는 여러 가지 말과 관계된 속담들이 많다.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입은 재앙의 문’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입은 곧 재앙의 문과 같으니 모름지기 말을 조심하라는 경구로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보게 한다. 총칼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죽이지만 잘못된 말 한마디는 천리 밖의 사람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상반된 관점인 후자의 경우에 해당되는 속담으로는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에서 우리는 언어가 단순한 의사의 전달체제를 넘어 마음의 형상이요, 정성의 표시라는 것을 자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은 정성과 고마움을 나타내는 긍정적인 표현수단으로 사용되어지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전자의 경우에서와 같이 부정적인 표현수단으로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한마디의 말로써 사람을 죽일 수도, 사람을 감화시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는 위의 속담들처럼 말로써 남을 잘되게 할 수도 있고, 타인에게 큰 해를 입혀 자신에게도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생각 없이 함부로 내뱉는 말 한마디는 타인의 마음을 크게 뒤 흔들어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말의 중요성에 대해 일찍이 상제님께서는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남을 잘 말하면 덕이 되어 잘 되고 그 남은 덕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나 남을 헐뜯는 말은 그에게 해가 되고 남은 해가 밀려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라.”(교법 1장 11절)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말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양면성(兩面性)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말의 양면적인 성향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말하는 주체인 당사자의 몫이다. 모든 말의 표출은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난 내면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한번 엎어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듯이[覆水不返盆], 한번 입에서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다. 또한 말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하여 『明心寶鑑』에 증자(曾子)의 일화를 그 실례로서 들어보고자 한다.
어느 날 증자의 아내가 장에 가려는데 아이들이 쫓아 가겠다고 보채기에 귀찮아진 아내는 아이들을 달래며 말했다. “얘들아, 집에서 사이좋게 놀면서 기다리렴, 시장에 다녀와서 돼지를 삶아 줄게.” 마침 집에 있던 증자는 아내의 말만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얼마 후 아내가 장을 보고 돌아와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요란한 돼지 울음소리가 들려서 놀라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증자가 돼지를 우리에서 꺼내고 있었다. “아니 왜 돼지를 내오는 거요?”, “당신이 돼지를 잡겠다. 그러지 않았소?”, “아니 그건 아이들을 달래려고 한 말이잖아요?” 그러자 증자가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부인, 한번 입에서 나온 말은 바꿀 수 없는 법이요, 더군다나 어미가 자식을 속인다면 장차 아이들이 그 누구의 말을 믿으려고 하겠소?”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엉거주춤 아무 말도 못하고 아까운 돼지가 죽어가는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위의 일화는 우리에게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되새길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은 그 파장 또한 매우 크기에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새삼 두렵기까지 하다. 일상다반사로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에서 본심을 속이고 거짓을 말하지 않았는지, 혹은 상대방에게 비방의 말을 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니 두려움마저 든다. 『典經』에 상제님께서도 말과 관련된 경계의 말씀을 남겨주셨다. “너희들은 아무 것도 베풀 것이 없는지라. 다만 언덕(言德)을 잘 가져 남에게 말을 선하게 하면 그가 잘 되고 그 여음이 밀려서 점점 큰 복이 되어 내 몸에 이르고 남의 말을 악하게 하면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여음이 밀려와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 삼가할지니라.”(교법 2장 50절),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위안하기도 하며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거슬리게도 하며 말로써 병든 자를 일으키기도 하며 말로써 죄에 걸린 자를 풀어주기도 하니….”(교법 2장 1절)라고 말씀하신 것은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 경계하신 게 아니실까.
또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의 도는 상생의 도로서 천(天), 지(地), 인(人) 사사만물과 혼연일체 되어진 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 한마디로 부터 덕을 붙여 서로간의 대화에서도 상호이해를 도모하여 상생되어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 여음이 전 세계 인류에게 까지 미칠 것이고 나아가서는 천, 지, 인 삼계를 비롯한 온 우주에 조화와 상생의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도인들은 수도를 함에 있어 항상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살펴보고, 밖으로 드러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덕을 붙여 보냈으면 한다. 그리하면 우리의 대화는 단순한 말의 독창이 아닌 영혼의 합창이 되어 지금껏 쌓인 모든 원(怨)과 한(恨)도 자연 치유되고, 나아가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세상은 ‘해원상생(解相生)’의 참 진리로 꽃 피지 않을까? 말로서 상생의 꽃, 언덕의 꽃을 피운다면 우리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개벽되어 우주의 열매로 영글 것이다.
<대순회보 85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