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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나눈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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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보윤 작성일2020.06.30 조회4,8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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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24 방면 선무 박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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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맞지 않아 불편하고 힘든 사람도 있다. 나에겐 선각이 후자에 가까웠다. 난 화기가 많고 성질이 급해서 어떤 문제든 빨리빨리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반면 나의 선각은 차분하고 신중하여 문제 해결이 느릴 때가 많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서로 대처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문제를 논리적으로 빨리 분석하여 여러 대책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내 속도와 시각으로 선각을 바라봤을 때 선각은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것처럼 보여 속이 터지고 답답하곤 했었다. 그리고 성격이 신중한 만큼 말투도 느린 편이라 대화를 나눌 때 나는 속으로 엄청난 인내심을 가지고 임해야 했다. 

  그런 점이 늘 불만이었던 나는 어느 날 그 마음을 나도 모르게 후각 앞에서 털어놓았다. 모범이 되어야 할 선각자로서 올바른 태도는 아니지만, 그 당시 나는 답답함이 극에 달해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대화는 내 수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선사께서는 정말 모든 면에서 느린 것 같아서 너무 힘들어요.”

“아, 선사께서 조금 느리고 무딘 편이시죠. 그건 저도 인정해요. 그런데 그게 왜 박선무를 힘들게 하나요? 전 괜찮거든요.”

“대화하거나 중요한 일 처리를 할 때 명확하지 않으니까 기다리기 답답해요.”

“선사께서도 박선무를 늘 참고 기다려 주시잖아요. 그런데 박선무는 왜 기다리기 힘들다고 하세요? 선각만 후각을 참아줘야 하나요? 때로는 후각도 선각의 부족함을 참아줄 수 있어야죠.”

“그건 내 입장이 안 되어봐서 그래요. 내 기준에서 선각은 문제가 생겼을 때 명확한 해결책을 빨리 제시하고 후각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준이요? 박선무의 기준이 늘 절대적이고 옳은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잖아요. 그러니 완벽한 선각도 존재할 순 없을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선무도 저에게 완벽한 선각은 아닌데요. 선무는 화기가 너무 많고 성격이 예민해서 전 항상 화를 낼까 눈치를 보느라 속마음을 얘기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리고 선무의 기준을 잣대로 선사를 함부로 판단하는 게 옳은 행동인가요?”

 

 

  후각이 이치에 맞는 말을 논리적으로 하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직히 선각으로서 후각에게 그런 말을 듣고 있는데 자존심도 너무 상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고 싶었다. 그러나 후각은 나에게 마지막으로 더 강한 메시지를 주었다. 

 

 

“최근에 선무가 저한테 해원상생에 대한 교화를 해주셨어요. 서로 이해함으로써 척이 풀리고 그래서 서로가 잘되는 거라고 하셨죠. 저에겐 해원상생이 어떤 의미인지 그렇게 열심히 교화를 해주셨지만, 정작 선무는 그 이치를 머리로 알기만 하고 실천을 못 하는 것 같아요.”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네요. 난 그동안 해원상생의 본질조차 깊이 생각을 못 했네요. 나도 스스로 다시 돌아볼게요.”

 

 

  그렇게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나는 지금껏 선각에게 완벽함을 강요하면서 정작 내 후각에게는 속마음조차 편하게 털어놓지 못하게 하는 선각이었다니. 진실을 마주하고 나니 선각과 후각 모두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따끔한 직언을 듣는데 창피하고 부끄러웠지만 잘못된 생각과 태도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선각으로서 바른 자세인 것 같아 나는 후각이 충고해준 내 잘못된 ‘기준’과 ‘해원상생’에 대해 깊이 고심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내 생각과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그것이 당연히 옳다고 믿었다. 오랜 시간 철저히 생각하고 계산된 판단으로 기준을 만들어 그 기준에 어긋나면 잘못된 것이라 선을 그었고, 또 그렇게 사람을 쉽게 오해하여 미워한 적이 많았다. 그 기준은 너무 오랜 시간 나와 함께 했기에 어느새 나와 동일시되어 이미 나도 모르게 여러 상황에서 많은 사람에게 척을 지어왔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이어갈 때쯤 우연히 장자(莊子)의 사상과 관련된 철학 서적에서 어떤 구절을 보게 되었다. 모든 존재는 잘남과 못남이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가치가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글귀였다. 즉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다는 의미였다. 그저 모든 생명은 선과 악의 구분을 떠나 이번 생에서 자신의 역할을 할 뿐이라고 말이다. 그 구절을 곱씹으며 잠시 틀어졌었던 내 기준의 각도를 바르게 세워 선각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편견 없이 선각을 바라보니, 선각은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미안해하며 후각인 나를 최선을 다해 이끌어주었고 때로는 수도과정에 척이 맺히더라도 선각의 본분을 잊지 않고 항상 먼저 나에게 손 내밀며 나의 부족한 점을 포용해주려 했었다.

  잘남과 못남의 기준을 초월하여 한 집안의 헤아릴 수 없는 공덕으로 태어난 소중한 자손이고 존중받아 마땅한 상제님의 귀한 도인이었다. 결국은 내 멋대로 기준을 세워 색안경을 낀 채 선각을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제대로 된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바로 나였다. 물론 사람이기에 조금씩 부족한 모습은 있을 수 있지만, 그 부분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선각의 좋은 점들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우리는 아직 도통 받지 못했고 지금은 수도 중이기에 어쩌면 완벽한 모습보다는 닦을 부분이 많은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부족한 모습이 당연한 사람에게 그토록 철저한 기준을 갖다 대며 완벽함을 강요한 것일까? 내 그릇된 기준이 선각이나 후각에게 무리한 강요를 했고 갈등의 근원인 것도 모른 채.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부족함과 부족함이 만나는 것일까? 수도란 완벽한 사람에게 기대서 걸어가는 것이 아닌 부족한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 부족함을 채우고 서로에게 배워나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나는 이것 또한 해원상생의 이치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로 이해하는 것의 출발점은 바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나’라는 사람을 통째로 바꾸는 치열한 정신적 작업이며 무척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지배했던 그 기준을 내려놓아야 하고 그것은 나를 낮추는 일이었다. 하지만 낮춘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면은 깊어지는 중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잘못이라 정의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수도인의 기본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준을 깨는 것은 나를 겹겹이 둘러싼 알을 깨고 나가 더 큰 세상을 마주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랜 시간 나는 그 알 속에 갇혀서 내가 마주한 좁은 세상이 전부라 믿었다. 그만큼 나의 세상은 좁고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어쩌면 선각은 그 알을 깨기 위한 운명적 매개체로 내 앞에 등장한 건지 모른다. 어쩌면 내 고집과 편견이 나의 성장을 가로막자 보다 못한 신명께서 후각을 통해 알음귀를 열어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중한 깨달음을 가슴에 담아 앞으로는 내 기준으로 함부로 남에게 척을 짓지 않고, 누군가의 선각으로서 또 누군가의 후각으로서 해원상생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도인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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