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진(本眞)으로의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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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수연 작성일2019.04.14 조회5,767회 댓글0건본문
잠실6 방면 선사 채수연
인생을 살아가며 굽이굽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수많은 인연의 얽힘은 이미 예정된 듯 꼭 그만큼의 거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같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듯 예측할 수 없는 날씨의 변화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엮어내는 인연법은 각색의 오색실처럼 저마다의 다채로운 사연을 품고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의 이야기처럼 우리 자신은 이런 이야기를 각자의 무대에 올린 주인공들이다.
주변을 둘러싼 인연들은 나 자신이 불러들인 지난 숙세[宿世: 전생(前生)]에 지어놓은 결과물이다. 특히 수도해나가며 빼놓을 수 없는 선후각 간의 인연은 주고받을 것도, 풀고 맺을 것도 많은 깊고도 고귀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물샐틈없이 짜여 조여드는 그물망에 걸린 듯 철저한 한 점의 오차 없이 서로서로 맑은 명경(明鏡)이 되어도주며, 정확한 잣대가 되어 주기도 하고 한없이 나 자신을 깊이 침잠 시켜주는 완벽한 촉매제가 되어 주기도 한다. 만날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말씀처럼 거대한 우주의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하는 것 같은 우리네의 모습은 먼 시간 속에서 이미 숙명적으로 굳게 연결된 필연의 고리와도 같은 모습이다. 마치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이 500년의 세월을 기다려, 스승인 삼장법사를 만나 긴 여정을 떠나듯 말이다. 우리 곁에 선후각은 운수를 받는 그 날까지 결국 자신에게 있어 필수불가결한 바로 ‘그’가 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나 자신 본래의 진면목을 제대로 깨닫고 살아가는 이들이 이 세상에는 과연 몇몇이나 존재할 것인가? 신비로운 수수께끼와도 같이 얽혀 도는 인연의 수레바퀴는 저마다의 비밀을 간직한 채 삶의 어귀를 돌아들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사실 절반 밖에 드러나있지 않다. 그 절반의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 자신 또한,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 미완의 세상을 미완성의 모습으로 이리저리 부유하며, 덧없는 목마름을 채우기에 급급하여 살아가고 있다. 삶의 본질을 제대로 붙잡지 못하면 인생은 한낱 꿈이 되는데, 『전경』 속 ‘탕자’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털북숭이 애벌레가 고운 날개를 단 아름다운 나비와 동체가 되듯이 탕자는 결국 우리 자신이 본진으로 가는 과정의 길목에서 숱하게 만나게 될 나의 분신이며 또 다른 ‘참나’의 거울 속에 비친 ‘그’가 되는 것이다. 미혹의 세상 가운데 환한 연꽃처럼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부지불식간에 낮과 밤은 교차하고, 계절은 순환한다. 우리가 사는 찰나의 인생 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 될까?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솔로몬왕은 무소불위의 권력과 더불어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풍족한 재산을 소유한 재력가였으며 그 누구도 따르기 어려운 뛰어난 지혜까지도 겸비한 사람이었다.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모든 쾌락과 원하고 얻을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누리고 취한 연후에 그가 내뱉은 독백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 1장 2절)
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의 영혼에서 우러나오는 공허와 갈증을 채워 줄 수는 없었던 탓이리라. 지혜와 온갖 부귀영화를 다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모든 것이 한낱 물거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며 불멸의 생명력으로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본질의 양식이 된다.
본진으로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은 겨우내 어둡고 추운 땅을 헤치고 힘겹게, 아주 힘겹게 솟아오른다. 쇠붙이는 수만 번의 담금질을 견디고 또 견디어내어 천하의 명검으로 다듬어지고, 알에서 갓 깨어난 어린 새는 허공을 훨훨 날아오르기 위해 치열하게 매 순간 쉼 없는 날갯짓을 무수히 해댄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그렇게 살아있는 모든 순간순간을 불꽃처럼 눈부시게 골몰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장은 태어나서 우리가 숨을 거둘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본연의 내가 나로서 살아 숨 쉬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러한 제대로 된 가치를 우리는 만났는가? 우리가 매 순간 소중하게 여기며 곱씹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본질을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열려야 자신을 가로막는 장벽을 걷어 낼 수 있다. 하잘것없는 감정의 응어리, 나도 모르게 맺었던 상처와 원망 때문에 내가 나를 작게 만들어 버리면, 결국엔 스스로가 어두워져 밝은 본성의 존재를 망각하게 된다.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의 헛된 그림자를 그러안고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 정신과 영혼의 세계가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 곁의 모든 존재는 이것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나와 긴밀히 연결되어 함께 공명하고 반응하고 있다. 내가 변화되고 성장할수록 상대도 더불어 깨어나고 피어나는 것이다. 내가 밝아지면 모든 존재는 나를 본진의 밝고 환한 문으로 인도하는 은인이되고 어두워지면 진흙탕 속에 나를 고통스럽게 머물게 하는 걸림돌이 된다. 가장 밝은 근원은 가장 어두운 근원을 통하여 드러나고 밝아지는데 본진의 길을 제대로 찾아 들어가야만 모든 미혹과 번민은 비로소 답을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궁극의 완성을 향하여 가는 세상은 이미 누구나의 깊은 내면에 자리해 있는 밝은 직관에 불을 밝혀가고 있어, 스스로가 각성하는 바대로 만상(萬像)은 우리를 밝고 밝게 이끌어 가고 있다. 더 모자람도 넘침도 없이, 완전한 우리로의, 본진으로의 환원은 순간순간 순리대로 반드시 이루어져 가고 있다.
도수는 밝고 밝아서 사사로움 없이 무사지공하다.
인도하심이 아닌가.
끝없는 극락 오만 년의 깨끗하고 번성한 세계
엄숙하라, 나의 도우들이여!
정성과 공경을 다하고 믿음과 덕을 지극히 하라.
구하고자 하였으나 구하기 어려워 헛되이 보낸 한 세상의 원(?)을
여기에 이르러 어찌 해원하지 못하겠는가!
기뻐하라, 나의 도우들이여! 힘쓰고 힘쓸지어다.
- 포 유문(布喩文)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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