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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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광희 작성일2019.02.27 조회6,083회 댓글0건본문
오천1 방면 정리 조광희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의 어느 밤, 사내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부부가 손꼽아 기다려온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아들로만 살아온 내게 아버지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처음 겪는 부모의 마음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생명의 탄생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함께 책임감도 뒤따랐다.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숙명이 나의 인생에서도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순간 나의 아버지 역시 ‘나처럼 자식에 대한 책임의 무게를 느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아마도 쌍둥이 형제를 보았으니 아버지의 책임감은 최소한 나의 곱절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가장의 역할과 수도 생활을 병행하셨으니, 일반 가정의 아버지들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고 팍팍한 살림살이에서도 아버지는 항상 우리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자식을 가져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던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은 신생아를 둔 초보 아빠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훈계가 듣기 싫어 버릇없이 버럭 소리 지르고 집을 뛰쳐나가서 며칠 간 들어오지 않았던 철없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일 내 아이가 성장해서 나처럼 철없는 행동을 한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해본다. 이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러운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원망의 소리를 내가 듣는다고 상상하면 지난날의 못난 행동이 무척 후회된다.
그럴 때면 상제님께서 부모에게 불손한 행동을 보인 정남기(鄭南基)를 “네가 부친에게 불경한 태도를 취했을 때 부모의 가슴은 어떠하였겠느냐 너의 죄를 깨닫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하지 말지니라.”01라고 꾸짖으신 말씀이 생각난다. 예전에는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던 구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님께 불효를 저지른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렇게 죄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교차될 때마다 나는 곤히 자는 아이의 얼굴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아들을 보면서 느꼈던 사랑이 아버지가 나에게 주었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새삼 가슴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진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지만 내가 느꼈던 그 감정의 본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철없는 아들에서 한 명의 어린 생명을 책임질 아버지로 성장해 간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상제님께서는 장익모(張益模)의 집에 가셨을 때 그가 자기 어린 아들을 지극히 귀여워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교훈하시기를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도의로서 부모를 잘 공양하라”02고 말씀하셨다. 내가 자식에게 주고 있는 사랑은 결국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부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이처럼 자식을 통해 보은(報恩)의 도리를 조금씩 깨우쳐 가는 과정이 바로 아버지가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순회보 215호>
01 교법 1장 40절.
02 교법 1장 4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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