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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포덕에 대한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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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빈 작성일2018.12.11 조회5,4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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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 4방면 평도인 김용빈

  

  지인의 소개로 대순진리회에 입도한지도 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여주도장에서 식당 당번, 수호, 토성도장에서 연수, 방면 각 회관에서의 봉안치성 및 매월 여주도장 참배 등에도 부지런히 참석을 해왔고, 상제님 말씀과 행적들을 나름대로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수임선감의 교화도 자주 들었습니다. 이는 대순진리회의 도(道)에 대해 좀 더 알고, 이해하고, 가슴으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그리고 나아가 비록 어리석고 부족한 나의 생각이지만 진정한 믿음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젊어서 한때 불가에 귀의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창 정신적으로 성숙할 시기에 산사(山寺)에서 불경을 읽고 수행을 한 탓에, 그 후 현재까지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근본에는 불교적인 요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불가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 즉 고해(苦海)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衆生)을 번뇌에서 벗어나 극락으로 인도, 즉 제도(濟度)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말씀을 잘 설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항시 불경을 공부합니다. 물론 선을 중시하는 승려들은 참선을 통하여 문득 한 순간의 깨달음, 즉 돈오(頓悟)를 이룸으로써 불경의 문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상황에 따라 부처의 가르침을 근본에 둔 삶의 이치를 대중들에게 설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승복을 걸쳤다고, 불경을 많이 안다고, 독경을 잘하고 예불을 잘한다고, 설법을 멋지게 한다고 해서 일반 대중들이 무조건 그들을 마음에서 진심으로 따르고, 나아가 불교를 참되고 독실하게 믿는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 치의 혀만으로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즉 평소에 수행자의 생각과 말 그리고 행실이 올바른 일체를 이룰 때, 우리는 그들에 대한 신뢰감을 느끼고 존귀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수행자들의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행위가 가식 없이 올바르게 합치할 때 그들이 설파하는 한 마디의 말과 행동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의 신앙이나 종교를 진정으로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는 필수요건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오늘날 인류 사회는 날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과학 분야에서 인간은 보다 나은 효율성과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 가히 놀라운 속도로 새로운 것을 발명하고 있습니다. 그 바탕은 인간의 뛰어난 두뇌계발입니다. 정신적인 인문·사상 분야에서도 인류가 문자를 일반대중에게 널리 보급하면서 과거보다 일반인들이 손쉽고 빠르게 학문을 습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인식능력을 향상해 지적 측면에서 과거 인류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인들이 단순히 교리적인 지식만으로 일반인들을 원하는 뱡향으로 이해시키고 인도하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 상제님의 대순진리를 믿고 수도하는 많은 수도인들이 포덕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저는 보아왔습니다. 또한 몇몇 선각께서 저에게 포덕을 한 번 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생각을 해보니 기독교나 천주교, 불교는 이미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종교이고 그 교리의 핵심도 일반인들이 상식적으로 잘 알고 있는 현실입니다. 특별한 포교활동 없이도 많은 이들이 순수한 믿음 또는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신앙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어느 교회, 어느 성당, 어느 사찰에 마음을 의지하고 다닐지는 그곳의 성직자 · 수행자의 행실이나 말이 자신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이끄는 경우, 또는 그 곳에서 함께하는 교인들과의 관계에 따라 정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대순진리회를 아는 국민들은 얼마나 될까요? 나 자신도 입도 직전까지 몰랐으니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신앙을 어떠한 방법으로 알려서 그들이 상제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성실하게 수도하는 도인으로 이끄는 포덕을 할 수 있을까요?
  도전님께서는 포덕과 교화, 수도를 종단의 기본사업으로 삼으셨는데, 이는 도인 개개인이 힘써 수도하고 교화를 마음으로 깊이 새겨들어 자신의 올바른 완성을 이루어야 비로소 일반인에게 참된 포덕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진실한 마음을 체득하려는 노력보다 『전경』 몇 구절과 선각으로부터 들은 교화 일부만으로 남을 포덕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순진리의 도에 대해 짧은 지식이나 단순히 들은 것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이해시키기보다는 나의 대순진리에 대한 믿음이 근본부터 올바르고 진실해야 한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나아가 저의 가식 없는 바른 언행이 상대방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때 진정한 포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단순히 외면적인 것에 충실하기 보다는 내면의 완성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참되고 진실한 말 한마디와 행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도를 말하기 전에 자신의 수도를 바르게 갈고 닦아 참된 인격을 함양해야 할 것입니다.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승려 중에 원효대사가 있었습니다.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중도에 동굴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 어둠 속에서 주변을 더듬거려 얼떨결에 마신 물이 그리 달고 맛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해골에 고인 물이었습니다. 원효는 순간 속을 토하면서 기겁을 하였으나 이내 진리라는 것은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후 원효는 외면적인 수행하는 모양새에 치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과 참된 인성을 다스리는데 충실했습니다.
  그는 겉으로는 광대로 거지로 살면서도 함께한 사회 하층민인 그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을 진실로 전하여 고단한 생활에 지친 그들에게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내면을 알차고 올바르게 수행한 원효는 외면적으로 자유분방하고 괴이한 생활을 하였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힘들고 지친 백성들은 물론 벼슬아치나 왕족들에게도 불경을 강의하여 많은 이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또 『화엄경소』,『대승기신론소』 등 방대한 양의 저서를 남겨 학문적으로도 후학을 양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원효대사의 이러한 힘은 내면의 수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의 수도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애(無碍)의 삶이었습니다. 사찰에서 종일 불경을 공부하고 염불하는 수행의 외적인 행위에 얽매이지 않고, 아프고 힘들고 쇠약한 백성들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수행하고 그 속에서 우러나오는 참소리로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습니다. 원효대사는 그들을 참된 불교의 정신적 세계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치성이나 참배, 교화 등에 잘 참석하고 『전경』을 열심히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신앙인 대순진리회의 종지나 신조, 목적과 훈회, 그리고 수칙을 일상 생활사에서 내 몸에 자연스럽게 배이도록 수행하여, 주위의 대순진리회를 모르는 일반인들로부터 인격이나 품성에서 존경받고, 나아가 그들에게 믿음이 가는 존재로 부각될 수 있도록 먼저 자신을 열심히 수도함이 우선이라 하겠습니다. 자신의 내적인 수행이 바르게 이루어지고 외적으로도 바른 행실과 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함께 갖춘다면 포덕에 있어서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닐까요?
  과연 저를 비롯한 많은 도인들이 훈회 다섯 말씀 중에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지키는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저 자신의 내면이나 심성을 옳게 수행하지 못하고는 이웃이나 지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저의 포덕은 결국 앵무새가 사람으로부터 듣고 흉내 내어 내뱉는 소리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니 누가 귀담아 듣고 공감하려고 하겠습니까. 세월이 갈수록 일반인들의 지적 수준은 높아지는데 자신의 전인적(全人的) 수행이 부족한 상태에서 몇 마디 말로 상대를 어찌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역공을 당하여 우리의 도를 올바르게 전하지 못하고 욕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라는 사회는 빠르고 다양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사고방식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나 종교도 모두 사람이 주체입니다. 이끌어 가는 자나 따라가는 자 모두가 사람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의식이 바뀌어 가면 모든 것이 함께 따라서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순진리회의 많은 제도나 방식, 행태 중에 변해야 할 것이 많지만, 먼저 우리 도인들의 포덕에 대한 인식이 먼저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춰 근본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점진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식자들을 우리의 도로 인도하려면 단순히 글과 지식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들은 글을 논하는 지식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압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과연 무엇으로 그들을 우리의 도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도인들이 바르고 참되게 내면적으로 수행되어 인격적으로 그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그들에 대한 포덕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울러 우리의 대순진리회가 진정으로 멀리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적으로 나아가려면 얼마나 많은 도인을 포덕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한 사람의 도인이라도 바르고 참되게 함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도인 한 명이 수백, 수천의 대중을 도인으로 포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의 시대에 서 있는 우리 도인들 모두 대순진리의 근본을 항상 생각하면서도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보다 많은 일반인들이 우리 도인들을 통해 대순진리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동참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진솔한 자기 내면의 수도와 희생의 정신을 가다듬는 데 가일층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자기 노력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도 아니요, 누구로부터 칭찬 듣거나 높은 직책으로 올라가기 위함도 아닙니다. 우리들의 올바른 수도와 그에 따른 참된 인격 형성은 우리로 하여금 보다 많은 포덕을 가능케 할 것이며 이는 먼저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광구천하라는 상제님의 강세의 큰 뜻을 조금이나마 실현하여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를 보다 행복하게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순회보> 1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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