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금강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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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창심 작성일2018.12.11 조회5,605회 댓글0건본문
금릉1-6 방면 교감 노창심
“엄마는 딸내미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나?”
“그래 알았다, 알았다. 이번에는 한번 가보자.”
집에 올 때마다 어디를 그렇게 가자고 졸라대는지 이번에는 할 수 없이 응낙하고 만다.
딸아이랑 떨어져 산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평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은지 늘 시끄럽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말이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얼굴빛도 어두워졌다. 무슨 말 못할 고민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일부러 묻지도 않았다. 괜히 말 붙였다가 욱하는 성격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냥 뒀다.
그러기를 몇 달, 녀석이 공부를 좀 하겠다며 2년만 시간을 달라기에 대학원을 가려나보다 하고 그러라고 했다. 그것이 대순진리회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순진리회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고 먹고 살기 바빠 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별로 평이 안 좋았다. 어찌할 줄 몰라 녀석을 말렸지만, 평소에도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가 이미 마음을 굳혔는데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길로 녀석은 집을 떠났고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 한 번씩 집에 들렀다. 뭔가 모르게 조금씩 변해가는 녀석에 대해 정확히 어떤 느낌이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뭔가 바뀌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겉모습은 바뀐 것이 없는데 느낌은 달라졌다.
그러다가 남편이 사고로 손쓸 틈도 없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정신도 없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한데 아들, 며느리와 친척들이 와서 일을 치렀다. 그런데 녀석의 동료라고 하면서 젊은 사람들 한 무리가 와서 장례식장 손님 접대에서부터 장지 가는 길, 운상까지 마치 자기들 일인 양 도와줬다. 더구나 발인하는 날엔 비까지 왔는데 입은 양복이 비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서 산소 일을 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렇게 대순진리회 사람들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들었던 말과는 판이한 분위기에 놀랐고 남의 집 초상을 자기 일처럼 성심껏 하는데 또 놀랐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의심도 잠깐 했었지만 여념이 남을 겨를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녀석은 매번 집에 올 때마다 어딘가를 같이 가자고 졸랐다. 무슨 도장이라나 뭐라나. 딸내미가 어디서 뭘 먹고 사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가 고정 레퍼토리다. 전에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는데 혼자 지내다 보니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녀석의 말이 귀에 맴돈다. 이번에는 같이 가리라 마음먹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까짓것.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일찍 집에 와서 짐을 챙겨 들었다. 한복을 꼭 가지고 가야 한다기에 아들 결혼식 때 입었던 한복을 챙겼다. 몇 번 입지도 못할 것을 비싼 돈 들여 마련해서 아깝다 생각했는데 이렇게라도 입게 되니 다행이다. 그리고 먼 길 가는데 여비로 지갑에 돈도 좀 넣었다.
몇 년 만에 녀석이랑 지하철을 같이 탔다. 말이 많아 시끄러운 건 여전하다. 집 대문을 잠그고 나오면서부터 계속 뭐라고 이야기를 해대니 녀석한테 홀린 듯 따라갔다.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왕에 빼든 칼인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몇 걸음 걷지 않아 무슨 학원 같은 건물 3층에 올라간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녀석을 보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교감요, 오셨습니까?”
“네, 왔어요, 김 선사. 여기 우리 엄마.”
“안녕하십니까,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장례식 때 인사드렸는데 기억하시는지….”
“아~, 제가 기억력이 좋질 않아서 제대로 인사도 못했네요. 아무튼, 감사합니데이.”
녀석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인사를 한다. 다들 장례 때 왔다는데, 난 기억이 없다. 하긴 그땐 정신없었으니까.
하나 둘씩 사람들이 버스에 탄다. 45인승 대형 버스가 꽉 찼어도 다들 젊은 사람들밖에 없다. 내 또래는 안 보인다. 녀석이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설명을 한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말 하나는 청산유수다. 게다가 듣는 사람들 반응도 좋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하고 녀석이 자랑스럽다. 좀 있으니 한 사람씩 마이크를 돌려서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도 한 자락씩 한다. 대순사람들이 막힌 구석이 있고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무너진다.
부산에서 몇 시간을 달려 속초에 도착한 건 한밤중. 녀석이 이끄는 대로 따라 들어간 곳이 오늘 잠을 잘 숙소란다. 방 하나가 정말 큰데다 침구들은 한쪽에 가지런히 쌓여 있다. 사람들은 방에 들어오는 대로 신발장에 신발을 넣고 옷을 걸고 짐은 조용히 벽 쪽으로 줄을 세운다. 조용하면서도 일사불란한 모습이 몸에 밴 행동인 듯했다. 얼마나 세뇌를 하고 닦달을 했으면 저리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자기보다 남의 이부자리를 먼저 챙기는 모습이 요즘 사람 같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아침에 무슨 행사를 해야 한다며 녀석이 일찍 씻고 자자고 한다. 난 궁금한 것도 많고 여기가 어딘지 둘러보고 싶은데 온종일 마이크 잡고 있던 녀석이 피곤할 것 같아 일찍 씻고 자기로 했다. 과연 여기가 어디일까?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어제 예닐곱 시간 버스를 타고 먼 길 온 것이 무색할 정도로 온몸이 가뿐하다. 같이 온 젊은 사람들은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한복을 입고 무슨 준비를 하는지 새벽부터 분주하다. 나도 얼떨결에 마음이 바빠 허둥지둥 한다. 다들 질서정연하게 움직인다. 젊은이들이 나란히 선 줄 맨 끝에 나도 섰다.
“여기는 대순진리회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입니다. 금강산 제 1봉인 신선봉의 정기를….”
맨 앞에 선 인솔자가 뭐라고 이야기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저 일행을 놓칠세라 앞사람 뒤꽁무니 쫓아가기 바쁘다. 그렇게 나란히 두 줄로 서서 커다란 대문으로 들어간다. 막 지은 듯 깨끗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지붕엔 기와를 얹었지만, 유리문이 달린 몸체는 현대식이다.
눈이 휘둥그레 저절로 돌아간다. 가도 가도 건물이다. 말로만 듣던 중국의 아방궁이 이런 모습일까 싶다. 분명 산마루 한 정상인 것 같은데 이렇게 많은 건물이 있는 게 신기하다. 가끔씩 가보는 관광지에 있는 절이랑은 좀 다르다. 아니 다른 듯 같은 듯 뭔가 느껴지는 건 있는데 말로는 못하겠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줄줄이 서서 뭐가 그리 바쁜지 총총걸음이다. 저 사람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그런데 뭐지 이 눈에 익은 그림들은? 건물마다 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림들이 가득하다. 금방 물보라가 떨어질 것 같은 폭포 그림에 속이 다 시원해진다. 애들한테 읽어줬던 전래동화에 선녀가 목욕하러 왔던 폭포수 연못 같다. 옛날하고 아주 먼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그 시절 도끼를 빠트린 연못에 신선 노인이 ‘펑’ 하고 나타날 것만 같다. 구름타고 날아 올 것만 같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 지진인가? 몸이 붕 뜬 기분이다. 그간 녀석이 내게 했던 말들이 귀에 울린다.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엄마, 새벽에 물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하는… 우리 민족은 천손 민족이라 신명을 잘 받들어서… 상제님께서 우리나라로 오셨거든… 전라도에 금산사라는 절에 미륵불상… 엄마가 만날 말하는 미륵님이 상제님으로 오신… 옥황상제님께서… 축은 소띠고 꿈에 소를 보면 조상님이라고 하잖아… 새벽 1시에 기도를 모시면 법수가… 대순진리회에 도장이 여주… 강원도 금강산 1만 2천봉 기운을 받아… 우리가 전생에 다 신선, 선녀였거든… 앞으로 1만 2천 도통군자가 우리나라에서…”
나도 어지간히 녀석한테 세뇌를 당했나 보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들었던 그 이야기 속에 유독 금강산 1만 2천봉은 귀에 익었다.
금강산 찾아 가자 1만 2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철따라 고운 옷 갈아입는 산.
이름도 찬란하여 금강이라네. 금강이라네.
어린 시절 고무줄놀이를 하며 불렀던 그 노래가 귀에 익어서 그런가? 까맣게 잊고 살았던 옛날이야기가 사실이었나? 그래? 그럼 여기가 금강산인가?
<대순회보> 1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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