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의 베트남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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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민 작성일2018.12.12 조회5,781회 댓글0건본문
영덕6 방면 선무 김지민
도장 종사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던 중, 유럽여행을 가기로 했던 스스로의 다짐이 떠올랐다. ‘아, 이제는 어디론가 여행을 가도 좋을 것 같다.’라는 마음이 문득 들었고 행여 굳은 다짐이 다시 풀어질까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도장에서 베트남과 교류가 많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예사로 여겼는데 도장에서 국제팀장을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앞으로 베트남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대화 후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며칠 뒤 방면 수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방면 선감께서도 넌지시 “베트남어를 공부해 보는 건 어떻겠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속으로 ‘내가 하라면 다 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럽여행에 마음이 쏠린 상태여서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당장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이 더 지속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유럽여행 준비는 순조롭지 못했고 자연스레 ‘베트남 어학연수를 가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6학년, 나는 겨울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필리핀에 2달간 어학연수를 갔다. 우연한 계기였는데 그때 경험 이후로는 집을 장기간 떠나 있어도 향수병에 걸리는 일은 없게끔 단련이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예전의 어학연수생활이 너무 그리워 어머니께 한 번 더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2번의 어학연수 경험을 통해 나는 영어실력 향상과 외국생활에 대한 자신감이 붙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는 교수님을 따라 대만에 2달간 어학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다. 우연한 계기였지만, 그동안 중국어는 물론 여러 가지 소중한 경험들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외국생활의 노하우가 생겼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외국을 가면 더할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나를 한 발자국 더 나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무부 국제팀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던 차에 ‘이왕 종사원으로서 도의 일을 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의 마음을 유럽여행에서 베트남 어학연수로 기울게 했다. 그렇게 베트남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후,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기간은 두 달. 과연 두 달 만에 베트남어에 대한 물꼬를 틀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지만, 대만 어학연수 때도 중국어를 익힌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현지에서 숙식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이 조금 막막했다. 하지만 한번 베트남에 가기로 마음을 먹은 나에게 그런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넓은 베트남에 나 하나 먹고 잘 곳 없을까.’라는 생각에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니 국제팀장께서 대진대학교 국제교류팀과 연결하여 현지에 있는 한국인 한 분을 소개해 주셨다. 그분께 바로 연락을 했고, 잘 아는 현지인 집에서 숙식할 수 있게끔 해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대진대학교와 교류하고 있는 하노이 백과 대학교에 한국어 원어민 강사로 강의를 한번 나가 보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공부뿐 아니라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마음을 뒤로하고 이제 베트남에 가서 어떻게 베트남어를 배울지에 대한 방법을 강구했다. 몇 번의 어학연수 경험을 토대로, 나에게는 과외가 제일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베트남에서는 어디서 과외선생님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급선무였다. 이런저런 사이트를 통해 알아보던 차에 하노이 사범대학교 베트남어학과에서 외국인을 위한 어학당이 있다는 정보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벌써 몇 년 전의 이야기이고 그것 이외에 최근에 올려진 정보가 없어서 난감했다. 어찌 되었건 있다니까 그 말만 믿고 일단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준비하는 과정은 항상 완벽할 수 없고 미흡한 부분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또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이다.
▲ 하노이 시내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국제팀장으로부터 소개받은 분이 공항에 마중 나왔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 후 내가 머무를 집주인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게 되었다. 집주인은 택시기사인데 베트남처럼 더운 나라에서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꽤 좋은 직업이라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묵을 방에 짐을 풀었고 바로 백과대학으로 가서 학장과 면담을 했다. 다행히 그 대학의 한국어 강사가 통역을 해줘서 웃으면서 첫인사를 마쳤던 것 같다.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베트남어 공부가 남았다. 여기에 온 주목적은 베트남어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중요한 일이 해결되지 않으니 마음도 덩달아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SNS에 내가 베트남에 있다는 소식을 올리니 대만에서 사귀었던 친구가 대학 동창 중에 베트남 사람이 있다고 소개를 해주었다. 이 시점에서 지금은 지구촌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났고 바로 채팅창으로 전화번호를 교환하여 통화했다. 물론 이때는 모든 일을 영어로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친구와 연락을 하여 다음 날 바로 만남을 가졌다. 이후 친구의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매일 밖으로 나가 현지 음식도 먹고 시내 구경도 하면서 베트남 문화를 익혔다.
그러나 현지 분위기를 체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어 공부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아쉬움은 여전했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던 중, 내가 강의하는 한국어반 학생이 하노이 사범대학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사범대학 위치를 물어보니 내가 사는 곳과 1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음 날 택시를 타고 하노이 사범대학교에 갔다. 다행히 베트남어 학과 조교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시간과 가격을 조율하고 수업료를 지불하고 돌아왔다. 그게 벌써 베트남에 온 지 3주째 되는 날이었다. 일이 생각보다 지체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믿고 여기까지 왔으니, 욕심으로 인한 조바심으로 될 일도 그르치게 하지말고 마음을 비우자.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남은 기간을 잘 보내기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우여곡절 끝에 나의 과외선생님은 정해졌고 일주일에 4번 하루 3시간씩 과외를 받았다. 그러면서 일전에 소개받은 친구와 주말에 짬을 내서 할롱베이, 하이퐁 여행도 가고 한국어 반 학생들과도 친해져 하노이 시내 곳곳을 둘러보며 지냈다. 과외를 시작한 후로 현지인의 말이 들리니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외워져 직접 말로도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주중에는 베트남어 과외와 한국어 강의에 충실했고 주말에 그 주에 배운 것들을 활용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이었으므로 체력적으로 힘들 때마다 편히 쉬는 건 한국에 가서 쉬기로 마음먹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왔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 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어 헤어짐이 너무 아쉬웠다. 어학연수는 이번이 4번째지만, 이번만큼 단기간에 많은 사람을 알고 떠난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주에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수업 들어가는 반 학생들이 환송회를 열어주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백과대학 학장 부부와 선생님들도 나에게 작별인사를 해주고, 또 개인적으로 사귄 친구들도 만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을 기약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나의 두 달간의 베트남 기행은 끝이 났다.
글로 다 적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타국에 홀로 있으면서 더더욱 상제님 생각이 많이 났다. 들고 간 납폐지가 모자라 중간에 국제택배로 납폐지를 받아 기도를 모실 정도로 매일매일 빠짐없이 기도를 모시고 법수를 마셨다. 내가 이렇게 절실하게 기도를 모시고 상제님을 찾은 적이 있던가 싶을 정도로 스스로도 어리둥절하고 신기했지만, 그 기간을 통해 좀 더 성숙해진 것 같다. 일을 함에 있어서 순서를 알고, 경거망동하여 그르치지 않게끔 다 된 것 같은 일도 다시 한 번 살피고, 무엇보다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이곳에 왜 있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수도를 하는 이유를 알고 그 마음을 더욱 굳건히 했다.
이제 나는 어딜 가든 걸리는 것이 없을 것이다. 걸리는 것이 있다면 불평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함을 기뻐하고 다듬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을 가기 전, ‘내가 하라면 다 하는 사람인가.’라는 마음에서 ‘하라면 해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바뀌게 된 계기는 베트남 어학연수였다. 그리고 모든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하늘에서 사람을 통해서 알려주시는 것이고,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을 만하니까 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규정하고 재단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사람은 무한한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과대평가하여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나를 알아가는 일을 부지런히 하면서 주어진 일에 도전해 보려는 시도를 병행한다면, 못할 일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 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라는 말씀과 같이 음과 양은 같이 가야 하는 것이 맞지만, 무엇을 하더라도 하늘에선 마음가짐을 보는 것이 우선이지 양적으로 드러나는 실력이나 능력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조상님께서 60년간 빌고 빌어 이 세상에 나를 보내셨는데, 앞으로 있을 중요한 일들에 쓰임이 될 수 있게 내 몸을 관리하는 것 또한 게을리 해선 안 된다는 깨달음도 있었다. 이번 연수로 베트남 사람들이 나에게 준 마음의 여운은 아직까지 진하게 남아 있다. 미래를 기약하고 왔기 때문에 이번이 첫 물꼬를 튼 것으로 생각하고 베트남어 공부를 더 깊이 할 예정이다. 그리고 도의 일을 하는 데서 상제님에 대한 일심(一心)을 가지고 노력하는 자세를 먼저 보여야 할 것 같다. 이때의 열정을 기억하고 그 마음가짐을 소중히 간직하여 앞으로 또 다른 상제님의 일을 하는 데에 쓰임이 될 수 있는 도인이 되고 싶다.
<대순회보> 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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