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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땅을 찾아 나선 고려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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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주동 작성일2022.06.23 조회2,6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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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9 방면 교정 이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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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고려인 이주 150주년 기념으로 방영한 ‘카레이스키 150년 만의 귀향’을 보았는데, 매우 감동적이고 인상 깊었습니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고려인 3, 4세대들이 자동차를 타고 조상의 땅을 찾아 나서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잘 닦여지지 않은 도로, 부실한 안내판 등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조상의 땅인 한반도까지 꼭 가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기 위해 고난을 자처하고 모험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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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일제 식민지 시절, 소련은 일본과 전쟁 중이었으며 스탈린은 연해주에 거주하던 고려인이 일본군의 첩자 역할을 한다며 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그 숫자가 20만 명에 이릅니다. 70년 넘게 터전을 닦아온 연해주를 떠나 도착한 곳은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허허벌판,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 혹한과 굶주림, 지친 몸을 뉠 곳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곳에서 생존을 위해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현지 적응과정에서 기후와 풍토병, 기아 등으로 사망하였으며, 심지어 지식인 1만 명이 사상범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는 등 이주 이민자의 10%가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민족적 수난은 힘없는 나라가 겪는 비극이며, 국력이 쇠약했을 때 일어나는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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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강제 이주를 당한 고려인 3, 4세 후손들이 중앙아시아를 횡단하여 북한을 지나 남한을 종착지로 하는 15,000km 유라시아 대장정에 올랐습니다. 조상들의 강제 이주 경로를 역으로 횡단하는 코스였습니다. 과거 1차, 2차 대장정 때는 한반도로 들어가는 관문인 북한에서 입국허가를 내어주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지만, 조국 땅에 간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북한의 입국허가를 받아 고려인 최초로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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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년 전에는 하나의 조국이었지만 현재의 조국은 분단 상황이므로 대장정이 갖는 의미도 남달랐을 것입니다. 두만강 철교를 건너 맨 처음 도착한 방문지는 한반도의 지붕인 백두산이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웅장하고 맑은 천지, 오랜 세월을 떠났다가 부모님 품으로 돌아온 사람처럼 흥분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마음속엔 이국만리 불모의 땅에 버려지고 그 세월을 견디어 온 중압감을 내려놓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대장정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요. 백두산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가 누군지 어떤 민족에 속하는지 같은 질문이 다 없어지는 기분이에요. 왜냐하면, 제가 어느 한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위대한 민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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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 넘게 달려온 그들은 50만 중앙아시아 고려인을 대표해 목표를 이룬 것입니다. 그들에게 조국이란 과거의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닌 현재 삶을 존재하게 하는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었습니다. 멀고 먼 타향에서 삶의 활력을 찾는데 필요한 정신적 동력을 자신들의 뿌리인 조국에서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들 3, 4세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들에게 정신적인 가치, 즉 태생적 가치관의 부재에서 오는 정체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국 방문을 통해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자긍심을 가짐으로써 자신들 정체성 부재의 혼란을 해소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참가자가 70년 전 강제 이주 상황을 상기하면서 “우리 할머니가 이주 당시 9살의 작은 소녀였을 텐데 얼마나 무섭고 기가 막혔을까요. 그런 생각 하면 제가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없더라고요.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책임이 생긴다”라고 한 말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들의 조부모, 증조, 고조가 격동의 시대에 삶을 극복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자산으로 그 후손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동기가 되어 한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간직해왔던 것입니다. 그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고향 땅인 조국 방문은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으로 파란의 세월을 견뎌온 선조들이 이룩한 발자취의 의미를 되새기며, 자신들도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일원임을 공감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려인들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전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마음속으로 늘 원래 살던 조상의 땅에 돌아가고 싶어 했으며, 항상 한국 전통을 지키고 살았습니다”라는 대장정 단장의 말처럼 그들은 이국만리 타지에서도 한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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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중앙공원에 세워진 강제이주 고려인 희생자 추모탑, 본체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으로 민족이산의 아픔을 표현한 조형물 

 

  영상이 끝나고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었던 저는 몸을 쓰기보다는 생각, 공상을 많이 했습니다. 수도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순진리에 대한 믿음과 해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 수도에 매진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모사재천 성사재인’의 시대를 맞이하여 모든 운이 열려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천상계에서 선령신이 60년의 공을 쌓아 타낸 자손인 나는 수도를 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다시 되새겨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 의지에 따라서 길이 열려있다는 것과 현재 수도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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