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용맹스럽고 하이에나는 비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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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정윤 작성일2018.01.28 조회5,487회 댓글0건본문
공주2 방면 평도인 오정윤
(일산대진고 교사)
육아 휴직을 마치고 학교에 가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아이들의 밝은 얼굴과 명랑한 웃음소리가 참 오랜만이네요. 온 세상이 활기차고 떠들썩한 것 같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9월 첫 수업을 들어갔지요. 첫 주 수업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먼저 한 학기 동안 배울 내용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 주고 수행평가 내용과 기준, 수업 규칙 등에 대해 설명하지요. 뒤이어 첫 수업에서 제가 학생들에게 즐겨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가장 용맹한 동물은 무엇인가요?”
“사자요. 호랑이요.”
“그럼 하이에나는 어떤 동물인가요?”
“비겁한 동물이에요.”
“썩은 고기를 먹어요.”
학생들은 아주 확신에 차서 크게 대답합니다. 그 중 몇몇 학생들은 ‘왜 저런 질문을 할까?’ 하는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하구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없나요?”
“…?”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대에서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삽니다. 사자는 가장 용맹한 동물의 왕으로 잘 알려져 있고, 하이에나는 사자가 사냥한 짐승을 도둑질하는 얌체 같은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사자들은 비교적 비겁한 편이랍니다. 한 동물학자는 “그들은 하늘에서 맴도는 독수리들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사자들은 스스로 먹이를 사냥하는 것보다 다른 동물들이 잡은 먹이를 가로채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겁니다.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다른 맹수의 노획물이나 자연사한 동물들이 사자 먹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지만 반면에 하이에나는 사냥을 매우 잘할 뿐더러, 비겁하지도 않고 썩은 고기만 먹지도 않습니다.
네덜란드의 행동연구가 한스 크루크(Hans Kruuk)는 수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하이에나의 생활을 관찰하여 여러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에나는 늙거나 병든 동물보다 건강한 동물을 사냥한답니다. 우연히 썩은 고기를 발견했을 때에만 그것을 먹을 뿐, 대체로 하이에나는 자신의 먹잇감을 스스로 사냥합니다. 하이에나의 사냥은 주로 행동연구가들과 관광객들이 잠자는 밤에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먼동이 틀 무렵 사람들은 먹이 옆에 앉아 있는 사자와 그 뒤에서 서성이며 기다리는 하이에나를 보게 되는 거지요. 그러나 사자가 그 사냥감을 죽이는 동안 하이에나가 비굴하게 그 찌꺼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비겁한 사자가 하이에나의 노획물을 가로챈 것이랍니다.01
제가 학생들에게 사자와 하이에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성급하게 선입견(先入見)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지요. 용맹스럽다는 선입견으로 보면 사자는 용맹스럽게만 보이고, 비겁하다는 선입견으로 하이에나를 보면 하이에나는 얌체처럼 보일 뿐입니다. 선입견에 지배당하면 우리의 사고는 굳어버려 진실과 멀어지기 쉽습니다. 첫인상이 나쁘다고 좋지 않은 태도로 대하거나, 일류대학을 나왔다고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단정하는 등 선입견으로 인한 오해와 불신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선입견을 가지고 누군가를 판단할 때, 우리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상대에게 마음 아픈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둘째,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고의 폭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인간은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요. 동물의 왕으로 알려진 사자는 비겁한 모습 또한 지니고 있고, 남이 사냥한 동물의 썩은 고기만 먹는다고 알려진 하이에나는 용맹한 모습 또한 지니고 있어요. 한 가지 분류로만 선을 그어버리면 사자와 하이에나의 다양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과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깊이 있고 풍부한 삶을 채워갈 수 있겠지요.
대순진리회의 다섯 가지 훈회 중 첫째는 “마음을 속이지 말라.”입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나오는 해설 말미에는 “인성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진실 추구를 위해 올바른 처신을 하고자 한다면 사심에 사로 잡혀 도리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수도와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원만함을 유지해야 하고, 선입견과 편견(偏見)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심을 버리고 진실함을 보기 위한 수련은 말처럼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눈과 마음을 가리는 선입견과 편견은 마치 눈에 끼는 선글라스와 같습니다. 빨간색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빨갛게 보이고, 파란색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파랗게 보입니다. ‘용맹’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사자를 보고, ‘비겁’이라는 선글라스를 끼고 하이에나를 보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선글라스를 끼고 우리 동료를, 주위 사람을, 세상을 보고 있을까요? 선글라스를 벗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다양하고 진실한 이 세상의 모든 색깔을 알아갈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야 진실하고 공평무사한 인격으로 원숙해질 테니 말입니다.
01 발터 크래머·쾨츠 트렌글러, 『상식의 오류사전747』, 경당, 2007.
<대순회보 10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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