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대순진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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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광석 작성일2018.04.19 조회3,003회 댓글0건본문
유광석 박사01
종교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학자들과 종교적 신심을 삶의 중심으로 내면화한 종교인들 모두에게 세상의 무수한 변화들은 이해의 대상을 넘어 도전이고, 목표이고, 또 하나의 강제이고, 피할 수 없는 고난이고,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한국적 문화전통과 종교적 심성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 대순진리회 역시 크고 작은 세상의 변화들과 함께하면서 원래의 모습과 다르다거나 같다거나 아니면 어떻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것도 아니면 어떻게 새로운 세상에 도인들이 대처해야 하는지와 같은 고민들에 대해 많은 내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대순사상이 추구하는 도인의 길은 무엇이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이 세상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해 종교사회학을 전공하는 외부자로서 나는 대순진리회의 세계화가 아래와 같은 이유로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 속한다.
첫째, 사회학적으로 지구화(globalization)의 문제는 기존의 민족국가(nation state), 민족집단(ethnic group), 인종(race), 경제권역(economic area), 문화권역(cultural area) 등에 기초한 인식의 지평을 모두 무효화시키고 있다. 하나의 분석단위로서 지구사회(global society)가 도래하면서 이제 ‘우리나라’, ‘우리 민족’, ‘우리 종단’과 같은 인식의 단위들이 지구사회에 존재하는 ‘모두를 위한 나라’, ‘모두를 위한 민족’, ‘모두를 위한 종단’ 등으로 인식의 지평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 및 교통기술의 발전과 함께 노동이나 자본의 활발한 전 지구적 이동을 기초로 경제적 자원뿐만 아니라 새롭고 이질적인 문화와 관념들의 홍수 속에서 이제 과거의 민족 중심적, 국가 중심적, 집단 중심적인 인식의 지평이 자연스럽게 붕괴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거대한 지구화의 흐름은 개인이나 개별사회가 편입될 것인지 아닌지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 거대한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지구상의 작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에서 그것도 소수 종단인 대순진리회가 지구화라는 거대한 세상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도전할 것인지는 종단 전체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 위기감은 종단의 양적 규모가 크든 작든, 종단의 사회적 성향이 보수적이든 개혁적이든, 종단의 기원이 한국이든 외국이든 할 것 없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단체들이 직면한 과제이다.
둘째, 세계화의 추세는 중국이나 미국과 같은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감소시킨다. 그들이 중요한 포덕사업 대상국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세계화는 정치 경제적으로는 단일국가 중심체제에서 벗어나 다원적 경쟁과 협력체제로 개편되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이질적 문화들 간의 공존과 갈등, 상호이해와 경쟁의 시대로 변하고 있다. 한국에 존재하는 600여 개의 크고 작은 종교단체들이 하나의 종교시장을 형성하던 단계를 넘어 이제 거시적 종교경제의 틀 안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는 한국에서 매우 작은 소수종교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신자 수가 천만 명이 넘는 거대 종단이고, 국내 이슬람 인구는 10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수십억 명에 이르고, 한국의 창가학회(KSGI)도 국제적으로는 5천만 명에 이른다. 다시 말하면, 국내에서는 소수종교이지만 국제적으로는 다수종교이고 거대종교로서 자신들의 종교적 정체성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종단들은 일찍이 그들의 세계화 전략을 추진했고 많은 투자와 노력으로 가장 빠르게 유럽,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골고루 성장하고 있는 세계적 종교단체들로 성장했다.
셋째, 세계화는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의 전통이 흔들리면 집단의 정체성도 혼란스럽게 된다. 그래서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모든 종교단체들의 세계화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연한 세계화전략이 요구된다. 한국 내 민족종교들의 급격한 쇠퇴를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목격할 때마다 종교사회학자로서 안타깝고 애석할 뿐이다. 그 종교에 깃든 수많은 인간의 노력, 열정, 순수한 정신이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들이 비단 한국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실 인류 종교사에서 대부분의 종교단체들은 탄생 후 한 세대(약 30년)를 넘지 못하고 사라진다. 종교들의 역사가 모두 그러한 흥망성쇠의 한 단면에 불과할 만큼 덧없고 짧은 생애주기를 가진다. 무엇이 정말 대순진리회의 진정한 생명력인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세계화의 흐름에서 단절되거나 진부한 과거의 전통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대순진리회의 생명력을 결국 고갈시킬 것이란 점에는 의문이 없다. 모든 세계종교의 기본적 교리는 부분적으로 엄격하면서도 부분적으로 포용적이고 유연하다. 이러한 패러독스가 교리의 해석을 어렵게 하지만 교리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종교의 시대적 적응을 더 현명하게 이끌어왔다고 생각한다. 세계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안목에서 종단의 전통을 더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넷째, 세계화란 관계성의 확장을 수반한다. 대순사상을 기초로 한 포덕사업도 결국은 도(道)를 매개로 한 관계성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동양인 서양인, 한국인 외국인을 구분할 것 없이 세계적 관계망, 즉 인적 물적 네트워크의 건설에 종단의 모든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종교적 의무가 아닐까. 물론, 국제적 네트워크의 건설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노력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기 쉽다. 국내에서 할 일도 너무 많은데 남의 나라에서의 일은 차후에 여유가 생기면 집중해보자는 자조적인 위로도 자주 듣는다. 학자들이 모인 학회나 대학들에서도 이러한 긴장이 늘 존재한다. 아니 인류역사 속의 모든 조직 내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제나 국내파와 국제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적 인식 그 자체가 이제 더 이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생뚱맞은 분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인식의 틀 안에서는 사회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모든 조직의 결정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조직의 생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고, 그것부터 순서대로 제한된 조직의 내적 자원을 투여하게 될 것이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생존하기 위해 대순진리회도 역시 비슷한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국제적 또는 세계적 네트워크의 건설에 여전히 큰 우선순위를 두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생존과 직결된 사안이 아니라는 전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국제적 경험의 부족에 기인한 시대착오적 인식이거나 자신이 믿는 종교적 믿음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의 결여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자신의 생존과 번영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서 지구 사회의 모든 주체들은 지구적 관계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위와 같은 세계화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적 경험을 기초로 몇 가지 사례를 예시함으로써 그러한 전략적 판단에 참고가 되기를 희망한다.
먼저, 해외에서의 포덕사업에 헌신할 수 있도록 해외에 가정을 파견하고 재정적으로 충분히 지원할 필요가 있다. 유물사관에서 오랜 기간 학습된 중국인들보다는 오히려 동양적 사상에 매력을 느끼고 호기심을 갖고 있으면서 다양한 종교사상에 대해 유연한 성향을 지닌 북미나 유럽에서의 포덕사업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적 접근일 수 있다. 대순사상의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관념들을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동영상, 애니메이션, 인터넷 방송 등의 디지털 컨텐츠로 개발하고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교리적 관념에 대한 지루한 설명과 해설보다는 서양인들이 중요시하는 명상, 수행, 독송 등의 종교 행위적 표현을 중심으로 행위 컨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하여야 한다. 한국적 사상에 관심 있는 외국인 학생들과 함께 서울 시내의 여러 종교시설들에 대한 필드 트립(Field Trip)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들의 관심은 교리보다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종교 행위를 먼저 배우고 그 행위의 교리적 의미를 추후에 배운다고 해서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둘째, 종단의 사회사업을 국제적 NGO들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제구호 및 자선사업의 대부분을 종교적 NGO들이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러한 국제협력은 시의적절하고 실질적인 것이다. 주로 기독교 NGO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전략적으로 앞서있지만 점차 불교, 이슬람 및 신종교 단체들도 NGO활동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대순사상은 어느 면에서 내세 지향적이라기보다 현세 지향적이다. 즉, 현세에서 개벽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면, 현실사회의 해원상생을 위해 다른 사회단체들과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상생할 수 있는 포용력과 유연성을 발휘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
셋째, 종단 내의 인적 다양성을 증진시키는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대순진리회는 하나의 거대조직으로서 그 구성원의 다양성을 통제하거나 억제하는 방법으로 조직의 구심점을 유지하기 어렵다. 조직의 원리상 조직 내 구성원의 사고와 행위방식의 다양성이 조직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활동영역의 확장에 있다. 종교조직은 그 특성상 다양성과 일관성이 늘 상존하고 긴장 관계에 있지만, 세계화 전략에서 인적 다양성은 조직의 성장을 위한 큰 자원이고 원동력이다. 교리적 및 종교 행위의 통일과 일관성도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이 강제적이거나 인위적으로 만든 구조라면 모래성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다양성에 기초한 자발적 순응과 실천이 종교조직의 근본적 생명력이라면 지구화 시대에 종교조직의 생존은 바로 이러한 다양성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지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인적 다양성을 개발할 수 있는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교육 및 훈련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들은 종교들의 성장과 쇠퇴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여러 종교들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가진 필자의 개인적 소견에 불과한 것이지만, 누구보다 대순진리회와 같은 한국의 민족종교들이 세계적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미국이나 유럽의 종교연구자들과 함께 국제학술대회에서 만날 때면 나는 한국에서 토착적으로 생성된 종교들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는 그들의 무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론 그러한 무지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국 학계의 학문적 및 종교적 편향성에 서글픈 마음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올해 6월 대진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신종교학회(CESNUR)의 성공적 개최를 보면서 행사를 주최하고 기획하고 봉사한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종교에서도 역시 말보다는 행동이 더 감동을 준다. 인간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종교에 미래가 없는 것처럼 세계를 감동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종교의 세계화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미래를 누가 알겠는가라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미래는 늘 존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01 프로필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University of Ottawa, Canada 종교사회학 석사 및 박사
한국종교학회, 한국종교사회학회, 한국신종교학회 이사
Asian Journal of Religion and Society 편집이사
현,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학술연구교수
주요저서로 <종교시장의 이해> 다산출판사(2014), <21세기 종교사회학> 다산출판사(2013), <종교와 사회진보> 다산출판사(2015)와 다수의 논문이 있으며, 현재 John Temple Foundation의 “Religious Competition and Creative Innovation” Project 및 한국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SSK) 등에 참여하고 있다.
<대순회보 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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