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상생이다』 - 1. 지식 융합시대, 마음과 뇌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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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인식 작성일2018.12.19 조회2,583회 댓글0건본문
코너소개
과연 마음이란 무엇일까? 근래들어 마음에 대해 규명하려는 연구들이 진행중이며 이미 상당부분 진척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상생이다』 - 1. 지식 융합시대, 마음과 뇌의 연구 코너는 이러한 마음을 학문 간의 융합을 통해 알아보는 코너로 조선일보의 『이인식의 멋진 과학』 칼럼으로 널리 알려진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KAIST 겸직교수가 기고하는 코너입니다. 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로서 최신 과학·공학 지식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독창적이고 흥미롭게 소개하기로 유명한 그의 글을 통해 21세기 학계의 화두인 뇌 과학과 과학기술, 인문사회학 간의 융합에 대해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 첫 번째 주제로 과학에서 마음의 연구, 두 번째 뇌 연구와 인문사회학의 융합, 세 번째 뇌 연구와 과학기술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총 3회에 걸쳐 연재를 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과학은 마음을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가?
글 이인식
물질과 생명의 본질에 관한 비밀은 20세기 중반에 과학의 발전으로 대부분 밝혀졌지만 세 번째의 비밀은 아직도 확실한 해결의 열쇠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수수께끼이다. 마음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과학 분야로는 인지과학, 진화심리학, 신경과학을 꼽을 수 있다.
● 마음과 컴퓨터
사람의 마음이 하는 일은 매우 다양하지만 대개 인지(cognition)와 정서(emotion)로 나뉜다. 인지는 지식, 사고, 추리, 문제 해결과 같은 지적인 정신과정을 비롯하여 지각, 언어, 기억, 학습까지 포함한다. 요컨대 인간이 자극과 정보를 지각하고, 여러 가지 형식으로 부호화하여, 기억에 저장하고, 뒤에 이용할 때 상기해 내는 정신과정이 인지이다. 이와 같이 인지기능이 다양하기 때문에 마음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곧바로 두 가지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는 마음에 관하여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어느 학문도 다른 학문과의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연구를 해서는 결코 마음의 작용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이 형성된 학문이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이다. 인지과학은 심리학, 철학, 언어학, 인류학, 인공지능, 신경과학 등 여섯 개 학문에 의하여 학제간 연구로 출발했다.
인지과학은 컴퓨터가 마음의 이해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인간이 문제를 해결할 때 마음의 작용과 컴퓨터가 프로그램을 처리할 때 수행하는 기호의 조작이 아주 비슷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요컨대 인지과학에서는 사람과 컴퓨터를 모두 기호를 조작하는 체계라고 전제한다.
기호체계 가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사람의 마음은 정보를 처리하는 체계이다. ② 정보처리는 계산(computation), 곧 기호를 조작하는 과정이다. ③ 컴퓨터의 프로그램은 기호를 조작하는 체계이다. ④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컴퓨터의 프로그램으로 모형화 될 수 있다. 말하자면 기호체계 가설은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사람의 뇌, 소프트웨어는 사람의 마음에 해당되는 것으로 본다.
인지과학은 초창기에 마음의 기능 중에서 인지의 연구에 주력하고 정서의 역할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1994년 미국 신경과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 결과에 따라 인지과학에서 정서 기능을 배제한 것은 큰 실수로 밝혀졌다. 다마지오는 이성과 정서가 함께 긴밀하게 작용하지 않으면 의사결정을 제대로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냈기 때문이다.
인지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마음의 작용을 설명해주는 계산 이론을 내놓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계산 이론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적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 진화론과 마음
찰스 다윈의 진화 이론에 따르면, 생물이 자신의 집단 안에서 경쟁하는 다른 개체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은 자손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사람의 마음을 이러한 적응의 산물로 간주하는 학문이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이다. 진화심리학은 진화생물학과 인지심리학이 융합된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생물학에서 도출된 다섯 가지 원리를 적용하여 마음을 연구한다.
. 원리 1 - 뇌는 컴퓨터이다. 뇌를 구성하는 신경회로망은 환경에 적절한 행동을 일으키도록 설계되어 있다.
. 원리 2 - 뇌의 신경회로망은 석기시대에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의 조상이 진화의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 원리 3 - 우리가 쉽게 해결한다고 느껴지는 문제들은 대부분 의외로 복잡한 신경회로망을 필요로 한다.
. 원리 4 - 상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제각기 전문화된 상이한 신경회로망이 존재 한다.
. 원리 5 - 현대인의 두개골 안에는 석기시대 조상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다섯 가지 원리가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설명하는데 적용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라고 주장하고, 뇌의 신경회로망이 오늘날 일상생활의 문제가 아니라 수렵채집 생활의 일상적 문제 해결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현대인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것으로 간주한 행동 특성들, 이를테면 언어, 폭력성, 미적 감수성, 질투심, 기만행위, 이타주의 등이 자연선택에 의한 적응의 산물임을 밝히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자들은 남녀의 성 역할이 다르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남녀의 마음이 다르게 형성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자연선택보다는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으로 접근하여 인간의 짝짓기 행위를 분석한다. 대표적 학자는 미국의 제프리 밀러이다. 2000년 펴낸 『짝짓기하는 마음 The Mating Mind』에서 “20세기 과학은 오로지 자연선택만으로 마음의 진화를 설명하려고 애썼다”고 하면서 “짝 고르기를 통한 성적 선택이 인간 마음의 진화에서 무시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적 선택에 대한 노골적인 관심 없이 인간의 진화를 논하는 것은 로맨스 없는 드라마와 같다”고 덧붙였다.
● 뇌의 지도 커넥텀
사람의 마음은 뇌에서 나온다. 마음의 생리적 기초를 이해하기 위하여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 신경과학(neuroscience)이다. 인지의 생물학적 기초를 탐구하는 분야는 인지신경과학, 정서의 생리적 기초를 연구하는 분야는 정서신경과학이라 이른다.
신경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뇌의 기능을 표시한 지도를 작성하는 데 있다. 의학 영상 기술의 발전으로 뇌의 지도 제작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컴퓨터 기술의 도움으로 뇌의 내부를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됨에 따라 마음의 활동에 관련된 뇌의 영상을 찾아내서 뇌의 지도를 만들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뇌 영상 방법으로는 컴퓨터단층촬영(CT),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MRI)이 손꼽힌다. 특히 기능성 MRI(fMRI)는 뇌의 기능 연구에 필수적인 영상장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뇌 영상 기술로 세포 수준의 연결 상태를 파악하여 지도를 그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2005년 신경세포(뉴런)의 연결망을 지도로 표현하는 새로운 분야가 출현했다. 뇌신경 연결지도는 커넥텀(connectome)이라 명명하고, 커넥텀을 작성하고 분석하는 분야는 커넥터믹스(connectomics)라 부른다.
커넥터믹스는 재미 과학자인 세바스찬 승(한국명 승현준)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2010년 9월 테드(TED) 컨퍼런스에서 “나는 나의 커넥텀이다”라는 제목의 연설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오는 6월 미국에서 출간 예정인 ‘커넥텀’이란 저서의 초벌원고에서 세바스찬 승은 “커넥터믹스는 게노믹스(유전체학)가 생물학에 중요한 만큼 신경과학에 중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람의 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커넥터믹스에 의하여 뇌의 지도가 완성되면 그 신비가 벗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고의 대륙, 정서의 섬, 의식의 골짜기, 언어의 바다 등 미지의 영역이 그 모습을 드러낼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대순회보> 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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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인식 :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과학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카이스트 겸직교수로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과학동아』 『주간동아』 『시사저널』등에 기명칼럼 600편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식의 대융합』 『기술의 대융합』 『유토피아 이야기』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 『미래교양사전』 『짝짓기의 심리학』 『신화와 과학이 만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한국출판문화상,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등을 수상했으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칼럼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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