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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상생이다』 - 2. 지식융합시대, 마음과 뇌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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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인식 작성일2018.12.19 조회2,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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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 연구와 인문사회학의 융합


글 이인식 


  신경과학에 의해 마음의 물리적 기초가 밝혀지기 시작함에 따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융합 학문이 태동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사회신경과학, 신경경제학, 신경마케팅, 신경신학, 신경윤리를 꼽을 수 있다.


 

사회과학과 신경과학의 융합

 

  인간의 사회적 인지 및 행동의 기초가 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탐구하기 위하여, 신경과학이 사회심리학과 융합하여 출현한 학제 간 연구는 사회신경과학(social neuroscience)이라 불린다.
  사회신경과학은 2006년부터 미국에서 전문 학술지가 창간된 것을 계기로 하나의 독립된 학문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사회생활과 뇌의 구조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신경과학의 주제는 도덕적 행동, 모방 심리, 정치 성향 등 갈수록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사회신경과학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촉발시킨 연구 주제는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이다. 트롤리는 손으로 작동되는 수레이다. 트롤리 문제는 [그림]처럼 두 개의 시나리오로 구성된다. 하나는 트롤리의 선로를 변경하는 시나리오이다. 트롤리가 달리는 선로 위에 다섯 명이 서 있다. 트롤리가 그대로 질주하면 모두 죽게 된다. 트롤리의 선로를 바꿔 주면 모두 살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선로 위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트롤리의 선로를 변경하면 그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의 시나리오는 트롤리 앞으로 한 사람을 밀어 넣는 것이다. 선로 위의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트롤리를 가로막아 정지시키는 경우이다. 두 시나리오는 트롤리를 저지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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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조슈아 그린은 사람들이 대부분 첫 번째 시나리오에는 공감하지만 두 번째 시나리오에는 반대하는 이유를 밝혀냈다. 2001년 9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린은 두 번째 시나리오가 첫 번째 시나리오보다 더 강력하게 정서와 관련된 부위를 활성화시켰다고 보고했다. 이성이 윤리적 판단을 좌우한다는 대다수 철학자의 주장과 달리 감정이 예상 외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최초의 연구로 평가된다.
  사회신경과학의 핵심 연구 주제는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지켜볼 때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활성화되는 뇌 세포 집단을 거울 뉴런이라 한다. 거울 뉴런의 존재는 우리가 관찰한 타인의 행동은 무엇이든지 마음 속에서 그대로 본뜰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거울 뉴런을 이해하면 왜 다른 사람이 하품하는 모습을 보면 전염이 되어 입을 벌리게 되고, 또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이 눈물을 흘리면 감정이입이 되어 따라서 울게 되는지 설명할 수 있다.


 

경제학과 신경과학의 융합

 

  경제학에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융합하여 인간의 선택과 의사 결정을 연구하는 분야를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이라 한다. 신경경제학은 1999년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폴 글림셔가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원숭이의 뇌에서 의사 결정에 관련된 신경세포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새로운 학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신경경제학은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1979년 이스라엘 태생의 인지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발표한 논문을 계기로 태동한 행동경제학은 심리학과 경제학이 융합된 학문이다. 이를테면 신경경제학은 행동경제학의 접근방법에 추가로 신경과학의 연구를 융합한 셈이다.
  행동경제학의 핵심 개념의 하나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이다. 손실 회피는 한 마디로 밑지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뜻이다. 2007년 1월 미국 신경과학자인 러셀 폴드랙은 <사이언스>에 사람이 손실 회피를 나타낼 때 뇌 안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연구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밖에도 2005년 6월 미국 신경경제학자인 폴 자크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은 뇌 안에서 신뢰의 행동을 일으키는 생리적 메커니즘을 밝혀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 신경마케팅(neuromarketing)은 신경과학을 마케팅에 접목한 분야이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장치를 사용하여 소비자의 구매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한다. 2004년 미국 신경과학자인 리드 몬태규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 장치로 코카콜라와 펩시콜라에 대한 소비자의 뇌 반응을 조사했다. 코크와 펩시의 승부만큼 마케팅 전문가를 괴롭힌 것도 없었다. 왜냐하면 피시험자가 예비지식 없이 치르는 심사에서는 항상 펩시가 코크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열세였기 때문이다. 몬태규는  평가와 관련된 뇌 영역이 펩시보다 코크에 대해  훨씬 더 활성화되는 것을 밝혀냈다. 코카콜라의 장기간에 걸친 광고가 소비자의 기호와 관련된 뇌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데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신경신학과 신경윤리

 

  인간이 영성을 주관적으로 체험할 때 뇌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연구하여 영성과 뇌 사이의 관계를 밝히려는 학문은 신경신학(neurotheology) 또는 영적 신경과학(spiritual neuroscience)이라 불린다. 신경신학은 신과 종교의 기원을 신경과학에 바탕을 두고 연구한다.
  신경신학의 대표적 인물은 미국 신경과학자인 앤드루 뉴버그이다. 그는 뇌 영상 기술을 사용하여 명상 중인 티베트 불교 신자와 기도에 몰두하는 가톨릭의 프란치스코회 수녀가 강렬한 종교적 체험의 순간에 도달할 때 뇌의 상태를 촬영했다. 2001년 펴낸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에서 뉴버그는 명상이나 기도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머리 꼭대기 아래에 자리한 두정엽 일부에서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고 이마 바로 뒤에 있는 전두엽 오른 쪽에서 활동이 증가되었다고 밝혔다. 요컨대 명상이나 기도에 의해 자신을 초월하는 종교적 체험, 곧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 것은 객관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일련의 신경학적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뉴버그의 이러한 결론은 신이 진실로 존재한다면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뇌밖에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신경과학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신경과학의 발달로 사람의 뇌를 조작하는 기술, 곧 신경공학(neurotechnology)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신경공학의 윤리적 문제를 성찰하려는 시도는 신경윤리(neuroethics)라 이른다.
  신경윤리의 정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 뇌의 질환 치료 또는 기능 향상에 관한 옳고 그름을 검토하는 철학의 한 분야’라고 정의된다. 다른 하나는 ‘뇌의 기초를 이루는 메커니즘을 이해함으로써 알려지게 된 질병, 죽음, 생활양식, 생활철학 등의 사회적 쟁점을 우리가 어떻게 다루기 바라는지를 검토하는 분야’라고 정의된다.
  2002년 들어 신경윤리 학술대회가 미국과 영국에서 열렸으며 2009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학술 논문이 시나브로 발표되고 있다.

 

 <대순회보> 1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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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이인식 :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과학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지식융합연구소 소장·카이스트 겸직교수로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겨레』 『과학동아』 『주간동아』 『시사저널』 등에 기명칼럼  600편을 연재했다. 지은 책으로는 『지식의 대융합』 『기술의 대융합』 『유토피아 이야기』 『나노기술이 미래를 바꾼다』 『미래교양사전』 『짝짓기의 심리학』 『신화와 과학이 만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한국출판문화상,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등을  수상했으며,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칼럼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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