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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정이 빚어낸 따스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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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잔스촹 작성일2018.12.21 조회2,5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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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잔스촹(사천대학 노자연구원 원장)
번역: 박마리아(대순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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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한·중 수교 20주년에 즈음하여, 필자는 2012년 11월 25일부터 12월 1일에 걸쳐 종단 대순진리회와 대진대학교의 초청으로 중국도교협회 일행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번 방문단의 대표는 중국도교협회 부회장인 딩챵윈(丁常云) 도장(道長)이었다. 그 외에 중국국가종교국 외사처 주임인 샤오더쉬옹(肖德雄) 선생, 절강성 천태산 동백궁(桐柏宮)의 주지(住持)인 쟝까오쳥(張高澄) 도장, 그리고 중국도교협회 국제부 주임인 인즈화(尹志華) 박사, 북경대학 왕쭝위(王宗昱) 교수, 진쉰(金勳) 교수, 중국종교문화출판사 편집자 훠커궁(霍克功) 박사 및 중국도교학원 린용펑(林永峰) 강사, 중국도교협회 연구실 연구원 톈스춘(田世春) 도장, 중국도교협회 국제부 직원 리진(李晉) 등을 합쳐 모두 열 한 명의 일행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필자는 이번 방문단 중에 종교학을 연구하는 네 명의 학자 중 한 사람이다.
  한국 대순진리회의 세심한 배려와 일정 속에서 방문단 일행은 대진대학교, 고려대학교, 국립중앙도서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과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방문하였고, 그 외 율곡 선생님의 생가와 한국민속촌 등 유적지와 관광명소를 둘러보았다. 이번 방문단을 위해 대순진리회에서는 많은 준비를 하였으며, 세심한 배려 속에 일정이 진행됨으로써 즐겁고 유쾌한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2.  대진대학교를 방문하다

 
  11월 26일, 방문단 일행은 대순진리회 관련 인사들의 안내에 따라 대진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대진대학교는 한국의 수도인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었는데, 대순진리회가 설립한 종합대학교라 하였다.
  일행은 서울에서 출발하여 대략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 학교의 정문을 볼 수 있었다. 중국 대륙의 많은 기관의 정문 앞에 놓여 있는 돌 사자상과 다르게, 대진대학교 정문을 수호하는 석상은 호랑이상이었으며, 좌우에 한 마리 씩 놓여 있는 모습이 마치 실물처럼 생동감이 느껴졌고 용맹스러워 보였다. 필자는 그 두 마리 호랑이상의 암수를 구별할 수 없었는데, 어쩌면 암수 한 쌍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두 마리 호랑이상이 머리를 약간 돌린 듯한 자태는 필자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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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문을 통과한 후, 다시 얼마쯤 가서 우회전을 하자 캠퍼스로 진입하게 되었다. 캠퍼스는 왕방산(王方山)의 고저 변화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경관의 형세에 따라 설계되어 있었는데 매우 질서정연한 모습이었다. 일행을 안내했던 박마리아 박사는, 일설에 신라시대 헌강왕이 도선국사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산이라 하여 왕방산이라 이름한다며 왕방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말해 주었다. 오늘날 단지 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헌강왕이 도선국사를 만났던 당시의 자취와 흔적은 찾아볼 길이 없으나, 왕방산(王方山) 산 중에 솟아있는 바위들이나 무성한 수목들을 보니 마음이 후련해지고 행복한 기분이 드는 것이 마치 신선 수도의 한 경지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 전체적인 주변의 지세를 살펴 보니, 멀리 논밭이 보였고, 물길이 눈 앞에 펼쳐지니 진정한 풍수의 의미가 깃든 보배로운 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를 방문하던 날 저녁, 필자는 자신도 모르게 싯구가 떠올라 ‘설대진대학풍수’(說大真大學風水)라는 칠언시를 지었다.

 
王方山中聚仙壇, 藏風得水靈氣摶.
大真學校居正位, 護衛虎龍感妙玄.
案朝有序人丁旺, 度數無違才智全.
旭日東昇光萬丈, 甘泉汨汨潤心田.

 
왕방 산중에 선단(仙壇)이 있어,
바람을 숨기고 물을 얻으니 영기가 흐르네.
대진대학은 정위(正位)에 자리해 있는데,
용과 호랑이가 호위하니 현묘하구나.
앉은 자리에 질서가 있고 인재가 모여드니,
도수(度數)에 거스름이 없고 재기와 지혜를 갖추었네.
동방에서 욱일(旭日)이 솟아 그 빛이 만장(萬丈)에 이르는데,
넉넉한 감천(甘泉)이 마음을 적시누나. 

 
  이 시가 대진대학교의 풍수에 적합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알 수 없으나, 필자 자신이 그 곳 풍수의 매력에 도취되었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도취는 대진대학교 경관이 지닌 특유의 시정화의(詩情畫意) 외에도, 그곳에 넘쳐나던 진실과 정성 그리고 열정적인 분위기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이 대진대학교의 본관에 들어서자 이근영(李根永) 총장께서 일행을 맞아 주심은 물론, 배규한(裴圭漢) 부총장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책임자들께서 일행을 맞아 주셨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우리를 반겨주시는 것으로 보아 한·중 간의 문화 교류를 매우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뒤이어 좌담회가 시작되어 이근영 총장께서 환영사를 말씀해 주셨는데, 필자로서는 한국어를 알아 들을 수는 없었으나 통역된 말을 통해 진심과 정성이 담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진대학교와의 문화적 교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중국도교협회 부회장이신 딩챵윈 도장께서 중국도교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법융(法融) 도장의 문집과 『금액환단인정도(金液還丹印證圖)』라는 진귀한 고서의 사본을 대진대학교에 기증하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두 번째로는 ‘한·중 종교문화학술교류’를 강연회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는데, 관련 부서에서 계획한 바에 따라, 필자와 훠커궁 박사가 1차 강연을 맡게 되었다. 필자의 강연 제목은 『평안도교에 대하여(論平安道教)』였으며, 훠커궁 박사의 강연 제목은 『도교 내단의 현대적 의의(道教內丹的現代意義)』였다. 먼저 대순진리회에서는 강연 원고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회의집을 만들어 회의 참가자들에게 배포하였는데, 이 모든 작업이 매우 세밀하게 진행되었다고 생각된다.
  강연을 마치고 나자, 여러 청강자들이 필자가 한국에서 출판한 『도교문화15강』에 서명을 요청하였다. 그리 대단한 저작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많은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큰 기쁨을 느꼈다.

 

 
3.  도교경전문헌으로 맺어진 우의
 
  이번 방문에 있어, 중국도교협회 방문단과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한국의 고려대학교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중화도장(中華道藏)』과 『노자집성(老子集成)』이라는 도교경전 문헌을 기증하는 것이었다. 11월 26일, 일행은 오찬을 마친 연후에 곧장 고려대학교로 향했다. 고려대학교는 한국의 삼대 저명 대학 중의 하나로서, 한국의 수도 서울의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해 있었다. 고려대학교는 1905년에 건립되어 현재까지 백 년 이상의 역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하고 종합적인 학과를 보유하고 있음은 물론, 우수한 교수진들과 최첨단의 과학 연구 설비를 갖추고 있고, 문헌사료 보존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에서는 중국도교협회에서 도서를 기증한다는 사실을 크게 환영하였다.
  도서 기증식은 고려대학교의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거행되었다. 최용철 원장께서 환영사를 마치자 딩챵윈 도장께서 이에 뒤이어 중국도교협회를 대표하여 민족문화연구원에 도서를 기증하는 데 대한 인사말씀을 하였다. 최용철 원장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을 대표하여 중국도교협회에서 『중화도장』 선장본과 『노자집성』 등의 도서를 기증한 데 대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최용철 원장께서는 이러한 도서 기증이 고려대학교의 장서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었음은 물론 고려대학교의 도교문화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였다.
  기증식이 끝난 후에, 딩챵윈 도장은 민족문화연구원의 학술대회장에서 『공동으로 창건하는 평안사회와 조화로운 화합의 세계(共建平安社會 共創和諧世界)』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하였다. 딩챵윈 도장은 강연의 내용에 있어, ‘선도귀생(仙道貴生)’, ‘자애화동(慈愛和同)’, ‘흔락태평(欣樂太平)’ 등 도교 교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도교가 심신의 조화, 사회의 조화, 세계의 조화, 자연의 조화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당시 그의 강연은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음은 물론 많은 찬사를 받았다.
  11월 27일 오전, 필자는 도교협회방문단과 함께 국립중앙도서관을 방문하였다. 심장섭 도서관 관장은 개량 한복을 입고 매우 정중하고도 친절한 모습으로 중국도교협회 방문단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딩챵윈 도장이 중국도교협회를 대표하여 『중화도장』 선장본과 『노자집성』 등의 도교 서적을 도서관에 기증하였다. 심장섭 관장은 도서관을 대표하여 기증된 도서를 수령하였으며 앞으로 도서들을 잘 보관할 것은 물론 잘 활용하도록 애쓰겠다고 하였다. 심관장은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도교에 관한 도서가 약 700부 정도 되며, 도가와 도교연구에 관한 석·박사 학위 논문이 약 2,000여 편에 이른다고 하였다. 이번에 이렇듯 진귀한 도교 서적을 기증 받음으로써 국립중앙도서관이 도교 연구의 중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도서 기증식을 마친 이후, 한·중 양측은 전통문화, 특히 도교 문화의 역사와 사회적 작용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심관장은 회의실 벽면에 걸려 있는 한 폭의 그림을 가리키며, 그 그림이 한국의 전통적인 양생수련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현대 사회에 있어, 적지 않은 사람이 도교의 양생학을 매우 좋아한다고 하였다. 화제가 양생학으로 기울자 곧이어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교류를 통해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생명수양 방법에 있어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원래 ‘도’는 양국의 역사문화 교류 과정에 존재해 왔던 것이며, 또한 양국의 현실 생활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도를 통해 한·중의 문화교류와 우의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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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과의 특별한 교류
 
  11월 27일 오후에 방문단은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을 참관하였다. 대순진리회는 강증산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이어받은 조정산 도주님께서 1925년 무극도를 창도하신 것으로부터 발전되어 온 종단이다. ‘대순’이라는 말은 『상서』 「태세하」(尚書·泰誓下)에서 “무오일(戊午日)의 다음날이 되자 주 무왕(周 武王)이 육사(六師)를 크게 대순(大巡)하고 감찰하였으며, 많은 사람에게 맹세하였다.”라는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후에, 다른 많은 문헌에서도 대순이라는 말로서 신명이 천하를 돌아보셨다는 말로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전경』에서는,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과 보살이 회집하여 인류와 신명계의 이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라 하였다.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구천상제님, 옥황상제님 그리고 다시 도전 박우당님으로 계승되었다. 구천상제는 곧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강성상제’이시며, 옥황상제님은 ‘조성옥황상제’라고도 한다. 대순진리회 교리 내용을 보면, 종지로는 음양합덕, 신인조화, 해원상생, 도통진경이 있으며, 사강령으로 안심, 안신, 경천, 수도를 들 수 있고, 성, 경, 신을 삼요체로 삼고 있다. 이러한 교리 내용은 중국 도교에서의 내용과 일부 상통하는 점이 있어 일행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오후 두 시쯤, 일행은 대순진리회 사회복지재단 노인전문병원과 노인요양시설을 둘러보았다. 요양시설에 들어서자 요양사들이 연로하신 할머니의 어깨를 두드려 드리고, 안마를 해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부모님을 돌봐드리는 모습처럼 보였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 대순진리회가 사회자선사업 측면에 얼마나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노인요양시설과 병원 참관 후, 일행은 차를 타고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에 도착하였다. 여주본부도장은 대순진리회의 대표적인 도장으로서, 성전인 영대 내에는 대순진리회의 양위 상제님과 석가모니의 원위를 비롯하여 천지신명 그리고 48장이 모셔져 있다. 여주본부도장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에 위치해 있으며 좌향은 인좌신향(寅坐申向)이다. 약 오만 평의 대지 위에 40여 동 이상의 건물이 들어서 있으며, 북쪽으로는 광주산맥이 연맥해 있고, 도장의 남쪽으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도장은 배산임수의 지형으로서 도장 내에 많은 수목이 우거져 있어, 눈과 마음을 매우 행복하게 한다. 멀리서 보게 되면, 마치 매화꽃이 산 위에 떨어지는 듯한 모습으로 ‘매화낙지혈’의 풍수지리 형세를 갖추고 있다.
  도장 참배자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방문단은 모두 정장을 입었으며, 두 손을 단전 위에 모은 채 조용한 발걸음으로 영대로 올라갔다. 영대에서 배례를 올린 후, 일행은 영대 내부에 모셔진 여러 신명들의 성화를 올려 보았다. 비록 회화의 표현 기교는 중국과 다를지라도 매우 익숙하게 보아온 듯한 신명들의 모습은 필자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하였다.
  영대 참배 후에, 도장에서는 큰 규모의 좌담회를 마련하였다. 필자는 이전에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매우 예의가 바르다고 들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일행이 회의실로 들어갈 때, 대순진리회 여러 부문의 관계 인사들과 도인들이 먼저 회의장에 도착하여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듯이 보였으며, 좌석마다 과일과 과자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환영과 접대는 마치 천상의 서왕모가 거행하는 선도복숭아 축제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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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담회에는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의 도인들과 중국도교협회 대표단 일행 외에도 한국주재중국대사관의 펑춘타이(馮春台) 참사도 특별히 참가하였다. 좌담회가 진행되는 동안 여주본부도장 윤은도 원장께서 환영사를 해 주시고 류기찬 감사원장께서도 환영사를 하셨으며, 딩챵윈 부회장이 이에 뒤이어 대순진리회의 성대한 환영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전하였다. 딩챵윈 도장은 중국도교협회가 대순진리회를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대순진리회와 도교가 교의 사상과 신앙 면에서 상통하는 면이 많아 매우 친근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서, 우리 모두가 도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또한 딩챵윈 도장은 이후에도 서로 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빈번한 교류를 통해 도의(道誼)를 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였다.
  쌍방 대표의 인사 말씀이 있은 후에, 뒤이어 학술 강연이 시작되었다. 여주본부도장에서 학술 강연을 맡은 이는 모두 세 사람으로서 북경대학 철학과 왕쭝위 교수, 절강성 천태산 동백궁 주지 쟝까오청 도장 그리고 중국도교협회 국제부의 인즈화 박사였다. 이들의 강연 제목은 ‘도교의 신선신앙 - 태청(太淸)을 소요(逍遙)하다(道教的神仙信仰 - 逍遙太清)’, ‘당송시기 천태산 도교의 발전 및 공헌(唐宋時期天臺山道教發展及貢獻)’, 그리고 ‘도교의 환경보호사상(道教的環境保護思想)’이었다. 강연 후에는 도교 문화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 토론을 나누었다.
 

 

5.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도착 전후의 풍우(風雨)과 상서로운 무지개
 
  11월 28일에는 대순진리회의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토성도장은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에 위치해 있으며,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서 대지 약 3만 5천 평, 건평 7천 평의 규모이다. 도장의 남쪽으로는 설악산이, 서쪽으로는 신선봉이 있으며, ‘학사비천혈’(鶴舍飛天穴)의 명당자리에 자리해 있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은 영기가 가득찬 곳으로서, 대순진리회 『전경』 예시편에서는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고 하였는데, 토성도장은 수련도장으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을 방문하기로 했던 당일 아침 비바람이 불었으나, 차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이어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하늘 한 켠에서 또 다른 한 켠까지 걸쳐진 무지개는 아주 커서 마치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처럼 보였으며, 일행을 태운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커다란 무지개도 우리를 따라 함께 행진하는 듯 여겨졌다.
  약 한 시간 넘게 달린 끝에 일행은 토성수련도장에 도착하였는데 이때 갑자기 광풍을 동반한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일행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토성도장 총무부장은 유쾌하게 웃으며, “멀리서 귀빈이 도장을 방문하실 때, 이렇게 바람이 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하늘에서 환영 의식을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도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하늘에서 우리의 반가운 심정을 아시고 우리 마음을 대변해서 환영의 마음을 표현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토성도장 총무부장의 안내로 일행은 회의실로 가서 다과를 먹으며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반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우리는 다시 도장을 참배하였는데, 유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전히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는 엄숙하고 경건한 도장에 다채롭고 아름다운 느낌을 더해주어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내고 있었다. 필자는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어 이러한 경관을 포착하였다.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온 필자는 아침 나절에 목격했던 그 정경들을 떠올리며 『참방한국대순진리회토성도장기서(參訪韓國大巡真理會土城道場紀瑞)』라는 시 한 수를 지었다.

 
飛鶴穴中訪大巡, 虹橋長架伴瑞雲.
田園序井農家樂, 疊翠層巒綠樹輪.
暮鼓晨鐘依節律, 卦時星象准乾坤.
土城道場人氣旺, 養性修真夏複春.
 
비학혈 중에 자리한 대순진리회를 방문하니,
무지개 다리가 상서로운 구름을 벗하고 있구나.
정갈한 전원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기쁨을 간직한 채,
푸른 수목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네.
저녁의 북소리와 이른 아침의 종소리가 음률을 이루고,
걸려 있는 자리로서 건곤을 바로잡네.
토성도장은 사람이 흥하니,
성(性)을 기르고 참됨을 닦아 영원함을 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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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반월(半月)의 미식과 한국민속촌의 장독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민속촌을 다녀 온 것은 필자에게 또 다른 기쁨을 안겨 주었다. 만약 한국의 미식(美食)이 구복(口福)을 체험하게 했다면, 민속촌을 방문한 것은 안복(眼福)을 만족시킨 일정이라 할 수 있다.
  일정을 시작하면서 방문단이 식사를 했던 대부분의 식당들은 모두 정통 한국 식당들이었는데, 후에는 진쉰 교수의 의견을 수렴하여 일상적이고 편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다. 지금 일행이 갔던 모든 식당들을 일일이 기억하기는 어려우나, 특별히 깊은 인상을 주어 기억에 남는 곳으로 ‘반월(半月)’ 식당을 예로 들 수 있을 듯하다. 필자는 중국으로 돌아온 후 인터넷으로 반월 식당을 검색해 보았으나 그에 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었는데, 이로 볼 때 반월 식당은 소규모의 별로 유명하지 않은 식당인 듯하다. 그러나 그곳의 음식 맛은 매우 훌륭하여 깊은 여운을 남겼다.
  반월 식당은 도로가에 인접해 있었으며 실내장식이 매우 고풍스러웠다. 식당 직원들이 음식을 내 올 때, 필자는 접시 위에 ‘만월(滿月)’이란 글자가 찍혀 있는 것을 보았다. 식당 이름이 ‘반월’인데 반해 찬구에 ‘만월’이란 이름이 찍혀 있는 것은 도교 내단 수련 중 월체(月體)라 이르는 상징적인 비유를 연상시켰다. 도교의 내단 수련에서도 달의 변화를 의미하는 회(晦), 삭(朔), 현(弦), 망(望)이라는 말로서 내단 수련에서의 화후(火候) 변화와 인체 내 기의 음양전환을 비유한다. 의미를 두고 한 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다지 남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작은 식당에서 이렇듯 전통적인 단도 수련의 순서를 접하게 됨을 볼 때, 보이지 않는 힘이 필자를 이번 한국의 방문에 참여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이러한 느낌을 기록으로 남기고픈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자 마자, 핸드폰을 사용하여 『제반월찬관(題半月餐館)』이라는 시 한 수를 지었다.
 

半月佳餚美又香, 賓朋滿座共酒薑.
煉心修命觀月象, 論道談奇借漢江.
泡菜築基勤進火, 煎包墊底不慌忙.
湯肉成丹卦爻現, 一輪圓月在腹腔.
 
반월의 요리는 보기 좋고 맛도 좋으니,
여러 친구들과 둘러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마음과 몸을 닦음은 달의 변화와 닮아 있어,
한강에 비친 달 그림자로 도(道)와 기(奇)를 논하네.
김치를 기본 삼아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내니,
기름에 구운 음식들로 배가 불러와 서둘 것이 없구나.
국과 고기가 단(丹)을 이루어 괘효(卦爻)로 나타나니,
둥근 달이 복강(腹腔)에 머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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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쓰고 나면 글을 마쳐야 하겠지만, 필자로서는 아직 쓸 것이 남아 있다. 반월 식당이라는 명칭과 각양각색의 그릇들은 필자로 하여금 많은 연상을 하게 하였다. 그중 자꾸만 필자의 머리 속에 맴돌아 씻어 버릴 수 없었던 것은 달의 모양처럼 원형을 갖고 있으나 달의 광택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달의 윤곽을 지니고 있으나 달의 변화를 갖고 있지 않은 어떤 형상이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눈을 감고 명상을 하자 그 형상이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것은 한국 민속촌에서 보았던 장독이었다! 하나, 둘, 셋 …, 일렬로 늘어선 장독들은 조용히 그 자리에 나열되어 있었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마치 불어오는 바람에 따라 선회하며 춤을 추듯 하였다. 그 장독들은 또 큰 입을 갖고 있어 웃으며 내게 이렇게 말하는 같았다. “어이 형씨, 어떻게 나를 글 속에 써 넣는 걸 잊을 수가 있소?” 그들은 필자를 재촉하였다. 그것은 차라리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으므로 필자는 그 장독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쓰며 한국민속촌에서의 경험을 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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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민속촌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자리하고 있다. 양편으로 작은 계곡 물이 흐르는 가운데 이백여 채에 달하는 이씨 왕조 시기의 농가, 부자들의 기와집, 양반집, 관아, 그리고 사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는 당시의 인문경관과 민중들의 정서 그리고 풍습을 말해주고 있다.
  시간은 아마도 2012년 11월 29일 오후였을 것인데, 민속촌에서 나온 가이드가 농가, 관아, 시장거리, 철공소, 한약방 등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일행이 둘러보았던 곳마다 전통적인 한국 민간 사회의 풍습을 드러내고 있어 우리에게 많은 상상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필자 개인에게 있어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민속촌에 진입하여 얼마 되지 않는 길목에 놓여 있던 많은 장독들이었다. 필자가 들은 바로, 이러한 장독들은 한국인이 김치를 담가서 저장할 때 쓰는 것이다. 밝은 태양빛 아래 장독들의 검은 빛은 긴 역사의 흔적을 보여주는 듯했으며, 한국 국민들의 근면함과 실제적인 생활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그 장독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서 다른 일행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필자로서는 당연히 일행들이 그 장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고, 장독 속에 김치를 넣는 방법과 과정을 생각해 보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에게 있어 장독은 그 겉의 모양새보다 비어있는 내부가 더 중요했다. 겉으로 볼 때 장독은 둥글둥글하여 포만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 내부를 보게 되면 비어있는 ‘허’(虛)의 공간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장독이 지닌 이러한 허의 일면과 만월의 형상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장독 내 ‘허’의 공간을 보는 순간 어떤 실망감 같은 것을 느낄지 모르겠으나, 김치가 그 빈 공간 속에 차곡 차곡 채워지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허의 오묘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독에 이렇듯 비어 있는 공간이 있기에 김치를 만들 수도 그리고 저장할 수도 있지 않은가. 『도덕경』에서는 이르기를, “진흙으로 만든 것을 그릇으로 쓰는데, 이는 그것이 지닌 ‘빔’이 쓰임이 되는 것이다.(埏埴以為器,當其無有器之用)”라고 하였다. 그렇다, 만약 장독이 모두 채워져 있다면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세간에서는 보통 실재적인 면을 중요시 할 뿐 허의 일면을 중시하지 않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실’(實)은 실의 쓰임이 있고 ‘허’(虛)는 허의 쓰임이 있는 것이다. 이를 다시 수행의 척도에서 보자면, ‘허’는 곧 합도(合道)를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경』에서는 말하기를, “배움은 나날이 채워지는 것이지만, 도는 나날이 비워가는 것이니, 비우고 또 비우게 되면, 무위에 이른다”(為學日益, 為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為)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손(損)’, 즉 비움이란 끊임없이 잡념을 버리고 결국 무사무욕(無私無慾)의 상태에 도달하여 여도합일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한국민속촌의 많은 장독들에 대해 보는 이들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가질 것이며 각기 다른 해석을 할 것이다. 필자는 장독들을 보면서 ‘반월’이라는 식당의 호칭과 접시 위에 새겨져 있던 ‘만월’이라는 글을 연상하게 되었으며, 또한 노자 『도덕경』 중의 수도에 관한 격언을 떠올렸는데, 이는 어쩌면 필자가 자아도취에 빠졌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도취식의 묘사와 해석이 수도인들에게 작은 참고가 될 수 있다면 필자에게는 더 없이 기쁜 일이라 하겠다. 

 2012년 12월 24일

사천대학 노자 연구원에서

 

<대순회보>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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