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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의 풍요를 덩실덩실 춤추는 강강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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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승훈 작성일2018.12.19 조회2,17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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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승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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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대동춤, 강강술래를 말하다.

 

  1980년대 가장 유행한 언어 중의 하나가 ‘대동(大同)’이었다. 대동이란 여럿이 화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뜨거운 열망과 하나가 되는 몸짓이 필요했다. 당시는 모두들 대동사회, 대동단결, 대동화합 등을 외치면서 ‘따로’가 아닌 ‘하나’가 되기를 기원하는 시대였다. 역시 전통 놀이 가운데에서도 대동놀이, 대동춤, 대동굿 등이 유행하였다. 이것들은 공동체 일원이 함께 어울리면서 ‘우리는 하나’라는 공통된 집단의식을 만들기에 적합한 놀이였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대동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강강술래’이다. 강강술래는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씩은 손 맞잡고 추어 본적이 있는 놀이이다. 지금이야 강강술래를 운동회나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놀이쯤으로 여기지만 이것은 원래 마을에서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추는 춤이었다. 추석이 돌아오면, 해남과 진도 등 전라남도 해안지역의 마을에서는 수 십 명씩 여성들이 모여 보름달 아래에서 집단적 군무(群舞)인 강강술래를 추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강강술래의 전승 범위가 현재의 전라남도 보다 훨씬 넓었다. 1941년에 발간된 『조선의 향토오락』에서는 강강술래가 전북과 충북, 황해도의 일부 지역에서도 전승되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현대 시기를 거치면서 강강술래의 전승이 약화되고, 범위도 좁아진 것이다.
  전라도에 ‘강강술래’가 있다면 경상도에는 ‘놋다리밟기’와 ‘월월이청청’이 있다. 놋다리밟기는 경북의 안동, 의성, 영천 등에서 전래되는 놀이인데 ‘기와밟기’라고도 한다. 한 소녀를 양쪽에서 부축하여 등 위를 쭉 걷게 하는 놀이라서 ‘밟기 형 놀이’라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녀자들이 손을 잡고 노는 둥둥데미, 또아리를 풀어내는 실감기 등 여러 놀이가 같이 진행된다. 경북 포항·영덕 지역의 월월이청청도 실꾸리감기, 외따기, 대문열기 등 다양한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강강술래’ 뿐만 아니라 ‘기와밟기’나 ‘월월이청청’ 등도 모두 여성들의 대동춤일 뿐만 아니라 원무(圓舞)의 일원에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강강술래는 매우 역동적인 춤이다. 처음에 ‘진강강술래’가 시작될 때는 강강술래가 느릿느릿해 보이지만 막상 ‘중강강술래’로 돌 때면 숨이 가빠지고, ‘잦은 강강술래’로 휘몰아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강강술래의 노래에 맞춰서 춤을 추다보면 땀이 등줄기에 맺힌다. 뛰는 것도 그렇지만 춤의 동선이 원형에서 나선형으로 다시 꽈배기 형과 직선 형 등으로 수 없이 바뀌기 때문에 이를 따라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이처럼 복잡한 동선이 펼쳐지지만 그래도 시작과 출발은 역시 원형에 있다.


 

달을 그리는 원무(圓舞)

 

  강강술래처럼 원을 그리는 원무(圓舞)는 춤 가운데 오래된 고형(古形)에 속한다. 원무는 아프리카·아메리카의 부족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시적인 춤이다. 『세계무용사』를 지은 쿠르트 작스(Curt Sachs)는 “침팬지들조차도 원을 이루어 춤을 추며 세계의 모든 인간들 역시 그렇다. 특히 제의적 의식과 관련된 신성한 춤은 한결같이 원형춤이었다.”라고 하였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춤의 시작도 원형춤이었다고 한다. 우리가 세계 부족들의 생활을 촬영한 TV를 보면 가끔씩 원형을 그리는 춤이 나오기도 하지만 두 개의 열을 지어서 노는 춤도 있다. 그렇다면 두 개의 열을 짓는 직선의 춤은 어떤 춤일까? 이 또한 작스의 말을 빌어 설명하면, “고대 멕시코 나후아(Nahua)족은 엄숙한 의식춤을 출 때는 원무를 추었으나, 세속적인 춤은 두 개의 열을 이루어 추었다”고 한다. 의식춤이란 아마도 종교적 제의에서 추는 춤이며, 세속적인 춤이란 여성과 남성들이 서로 짝을 지을 때 추는 춤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원형춤 가운데에서도 짝이 이뤄지니 의식춤과 세속춤의 구분은 오히려 춤의 기원을 설명하는 잣대로 생각된다.
  그런데 왜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것일까? 짧게 이유를 대자면, 강강술래는 ‘대동춤’이며 ‘보름춤’이기 때문이다. 모두들 손을 함께 잡거나 서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대열을 갖추자면 원형으로 설 수 밖에 없다. 어떤 이는 이 춤의 원형성(圓形性)을 석기시대 움막집의 둥근 형태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고학적 접근 보다는 춤추는 데 ‘쉽고 편한’ 형태를 추구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개인기를 뽐내는 현대의 춤과 달리 서로 어울려 추는 군무(群舞)의 특징은 매스게임(mass game)처럼 여럿이서 하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동춤은 서로의 몸짓으로 하나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므로 누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원형이 나오는 법이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강강술래는 추석 한가위에 여성들이 노는 보름춤이다. 보름춤의 특징은 춤을 추면서 달을 형상화하는 데 있다. 달이 가득 찰 때는 원형이지만 반으로 줄어들면서 반달도 되고 눈썹과 같이 초생달로 변한다. 강강술래도 원무에서 시작되어 달의 형상과 마찬가지로 신축(伸縮)을 하는데 달이 커지고 일그러지는 월령(月齡)을 보는 듯하다. 게다가 우리 문화에서 달은 음의 원리와 여성성을 상징하였다. 여성의 생리는 거의 한 달을 기점으로 이뤄지며, 이것은 달의 성쇠와 일치한다. 여성의 생리와 달의 생생력(生生力)은 같은 주기를 갖기 때문에 여성이 달을 형상화하는 보름춤은 농경 사회의 특별한 기원을 뜻하는 것이다. 


 

보름춤은 풍요와 생식을 위한 몸짓 
   
  강강술래가 달을 상징하는 춤이라고 해서 엄숙한 종교적 춤은 아니다. 오히려 강강술래는 이성을 부르는 세속적 춤이요, 자연스레 만남이 이뤄지는 짝짓기 춤이다. 둥그렇게 밝은 보름달 아래에서 춤을 추다 보면 이성에 대한 욕구와 유혹이 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사실 모든 춤은 ‘원초적 흉내’이며, ‘내면적 욕구’의 표현이다. 춤의 원리는 동물을 흉내 내거나, 생업의 여러 모습을 상징하거나, 일상의 동작을 표현하는 특별한 몸짓을 음악에 맞춰 리듬화시킨 것이다. 이러한 춤의 원리 속에 이성에 대한 강렬한 탐색과 유혹이 꿈틀거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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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민족들의 대동춤도 남녀 간의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구이저우성[貴州省]에 살고 있는 먀오족은 정월 초닷새에 노생절(蘆笙節) 행사를 한다. 여기서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머리에 은관을 쓰고 곱게 장식한 채로 춤을 춘다. 이 춤은 수십 명이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돌아가는 원무이다. 이 춤을 춘 이후에 제각기 흩어져 남녀가 사랑을 맺는다. 구한말 5대 문장가의 한 명이었던 정만조가 진도에서 본 강강술래에서도 남녀의 은밀한 구애가 있었다. 그는 진도의 풍속을 기록한 『은파유필(恩波濡筆)』에서 강강술래를 묘사하면서 “높고 낮은 소리 내며 느릿느릿 돌고 돌아 한동안 서 있다가 이리저리 움직이네, 여자들의 마음에는 사내 오길 기다린 것. 강강술래 부를 때 그대 역시 찾아오리”라고 말하고 있다.
  대동춤 속에서 남녀의 만남은 ‘개인적 성애(性愛)’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 풍요 기원’의 의미가 있다. 남녀의 성애는 생식(生殖)과 다산(多産)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이다. 남녀의 성적 행위가 풍농과 풍요로 이어진다는 관념은 매우 오래된 것이다. 남녀의 성(性)은 다산(多産)과 풍요를 비는 주술성을 지녔으며, 원시·고대사회에서 춤은 성적(性的) 주술과 연관되었다. 동부 스페인의 레리다(Le"rida) 지역에 있는 중석기 시대의 암벽 그림을 보라. 이 그림은 큰 남근이 달린 벌거벗은 소년의 주위를 9명의 여성들이 원을 이루며 춤을 추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강력한 남근과 여성이 춤으로 결합함으로써 풍요 다산을 기원하는 암각화이다. 보기에 민망할지 모르지만 이 그림은 원시적 대동춤이 성적 주술로 태동했으며, 결국 공동체의 풍요를 기원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역사는 춤의 콘텐츠를 풍요롭게 하고

 

  춤의 시원(始原)을 추정하게 하는 강강술래는 오랜 역사를 통과하면서 훨씬 다양한 춤의 콘텐츠를 확보하게 되었다. 강강술래의 유래를 임진왜란 시에 이순신 장군이 전략 차원으로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이러한 까닭에 강강술래를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쓰고,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임진왜란 기원설은 발생론적 기원에 얽매인 견강부회(牽强附會)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강강술래의 전승 지역을 볼 때, 임진왜란이 유래가 되지는 않지만 전승의 확대나 강한 계기가 되었다는 예측은 가능하다.
  강강술래에서 놀이만큼 흥미로운 것은 선후창의 민요이다. 진도나 해남 등은 구성진 남도소리가 계승되는 예향(藝鄕)으로서 강강술래의 노래에서도 이를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선소리꾼의 선창과 놀이꾼들의 후창으로 이어지는 민요는 정말 한가위의 달빛만큼 아름답고 구성지다. 강강술래의 노래를 듣고 함께 따라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즉흥적으로 불러지는 노랫말도 세상의 진미를 담고 있기에 재미있다.
  강강술래가 ‘춤’이면서 ‘놀이’로 보는 것은 다양한 놀이 콘텐츠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가장 많이 소비되었던 청어(靑魚) 두름처럼 춤꾼들이 손 사이로 꿰어가거나 풀어가는 ‘청어엮기’, ‘남생아 놀아라’ 하고 부르면 ‘절래 절래가 잘 논다’고 답하면서 원으로 한 명씩 나아가 재미있게 웃기는 ‘남생이 놀이’, 두 사람이 양팔을 뻗쳐 잡아 문같이 만들고 그 밑을 사람들이 지나가는 ‘문지기놀이’ 등 강강술래의 놀이 콘텐츠는 역사적 생활상을 담고 있으면서 다양하다.     
  오늘날 강강술래는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도심의 고시촌이 상징하듯, 개별화된 폐쇄 회로 속으로 치닫는 도시 생활에서 서로의 존재를 일깨워줄 수 있는 춤은 강강술래이다. 농업사회에서 강강술래가 상징하고자 했던 달의 풍요로움은 이제 서로의 손을 맞잡고 상생(相生)하는 공동체 사회의 너그러움으로 재생하고 있는 것이다.

 

 <대순회보> 1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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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유승훈 : 경희대, 한국학중앙연구원을 거쳐 고려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시청 문화재과 학예연구사를 지냈고, 현재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역사 민속학의 관점에서 한국인의 민중 생활사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 『우리나라 제염업과 소금 민속』(학술원 선정 우수학술도서),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우리 놀이의 문화사) 등 여러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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