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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상제님 강세치성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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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우 작성일2019.03.05 조회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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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이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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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필자에 관한 소개를 하겠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하였으며,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조선시대 종교정책’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필자는 음력으로 2005년 9월 19일(양력 10월 21일 금요일)에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에 참여했다. 현재도 그렇게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는 치성 참관 이전까지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무지(無知)했다. 스스로가 한국의 신종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대순진리회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랬다. 학부 때 금강산 토성수련도장과 본부도장을 답사한 적은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스쳐 지나갔었다. 심지어 똑같이 ‘순’이라는 글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가끔 순복음교회와 헷갈릴 정도였으니까……. 그때까지 내가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아는 것은 텔레비전 보도를 통해서 본, 알 수 없는 문제로 대규모 폭력사태가 일어났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러던 2005년 2학기의 어느 날, 우리 대학원에 한 사람이 석사논문을 쓰겠다며 나타났다. 그 사람은 대학원 91학번인데, 당시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연한이 지난 사람들에게 논문을 쓸 기회를 주는 제도가 한시적으로 실시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석사논문을 쓰겠다고 연구원에 돌아온 것이다. 필자가 대학원에 입학한 것이 2003년이었으니까 그 선배는 필자에게는 대선배인 셈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대순진리회 신도였고, 그 사람과 친분이 생기면서, 필자도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선배가 연구원에 돌아오면서 우리 전공도 대순진리회에 대해서 직접 참여 관찰하기가 쉬워졌고, 급기야는 우리 동학(同學)들도 치성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차기 종교학회 회장으로 내정되어 계시던 지도교수님이 연구를 위해 선배에게 치성참석이 가능한지를 문의하였고 이에 대순진리회에서 연구차원에서 교수 및 교수급 연구원들에게는 특별히 치성참례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정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것도 대순진리회 신도들도 출입하기 힘들다는 영대에서, 대순진리회의 원로 분들이 위치하신다는 앞쪽 열에서 치성에 참가하게 된 것이었다!

  영대의 앞쪽에서 치성을 드린다는 것이 연구자에게는 치성의 현장을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대순진리회 신도도 아니고 치성을 한 번도 드려본 적이 없기 때문에 행여 실수라도 할까봐 그 부담은 더했다.

  그런데 이러한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선배의 이메일 한 통이었다. 이메일에는 치성에 참여하기 전에 해야 할 준비와 치성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들어있었다. 도장 안에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하며,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단전부위에 위치시킨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다녀야 하며 흡연은 하지 말라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특히 치성을 드리기 전에 대순진리회 신도들은 목욕재계를 하니, 연구원 사람들도 최소한 손발은 닦고 양말은 갈아 신으라는 당부도 있었다. 그 메일을 읽고 필자의 심리적 부담은 더욱 심해졌다. 거기에다가 필자는 발에 땀이 많아 발냄새도 심한 편인데, 행여 발냄새 때문에 신도분들과 동학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했었다.

  목욕하고 발을 몇 번이나 닦고 양말을 갈아 신은 후 필자는 본부도장으로 출발하는 차량에 올랐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분위기를 더욱 경직시키는 사건이 생겼다. 한 연구원이 치성에 참여하겠다고 해 놓고서 약속한 시간에서 15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도교수께서는 대노(大怒)하셨고 결국 다른 참가자들이 연구실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던 그 연구원을 잡아오기에 이르렀다. 지도교수께서는 매우 질책하셨고 분위기는 더욱 냉랭해졌다.

  마음은 긴장되고, 분위기는 썰렁한 상태에서 필자는 본부도장에 도착했다. 본부도장에 도착하니 한복을 입은 내·외수 분들이 분주히 이동하고 있었다. 본부도장의 웅장한 규모에다가, 다들 한복을 입으셨고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이동하는 것을 보니 필자는 더욱 긴장했다. 그 와중에서 필자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어린 신도들이었다. 유치원생에서 중·고등학생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유년·청소년 신도들이 다른 신도들의 손에 이끌려서 이동하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그 수가 적지 않았다. 현재 한국의 종교 인구수를 살펴보면 개신교·불교·천주교 신자들이 대부분이고 그 외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인구수를 다 합쳐도 앞의 세 종교 중 한두 종교의 신자 수에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한국의 신종교의 신도 중 20대 이하의 신도수를 따진다면 앞의 세 종교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적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필자가 수운교 본부에 현지조사를 가서 본 것을 들 수 있다. 정기의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운교 본부에 모인 신도 중 20대 이하의 세대는 단 한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대순진리회 본부도장에서 본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젊은 신도의 존재는 한 종교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개신교·불교·천주교에서도 젊은 신도들을 더 많이 자기 종교로 인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에 모인 어린 신도들을 보면서 필자는 대순진리회의 신도수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선배의 안내로 한 건물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치성 때 예법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예행연습을 했다. 한복을 갈아입으면서 필자는 그 선배로부터 옷고름을 매는 방법, 대님을 매는 방법 등 한복을 입는 법에 대해서 처음부터 다시 배우게 되었다. 필자가 한복을 입은 것은 초등학교 때 이후 거의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에 한복을 입을 때는 아버지께서 옷고름과 대님을 모두 매주셨기 때문에 필자는 한복 입는 법에 대해서 전혀 몰랐는데, 구천상제님 강세치성 참관을 통해서 한복 입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 것이다. 특히 한복의 요소요소에 들어있는 음양의 원리에 대해 들으면서, 한복을 입는 법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고, 한복에 담겨 있는 원리도 잘 알 수 있었다.

  한복을 입고 우리 일행은 선배로부터 치성 때 하는 예법과 주의사항을 듣고 예행연습을 했다. 대순진리회의 절하는 방법은 일반적인 큰절과는 조금 달랐다. 특히 하늘과 땅을 한 번씩 움켜쥐는 자세를 취한 후 절을 하는 것 또한 하늘과 땅의 기운을 한껏 받아들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공감했었다. 절하는 방법 하나에도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시고자 하는 구도인의 자세와 상제에 대한 정성이 느껴졌다.

  옷을 갈아입고 치성 예행연습을 한 후, 우리 일행은 대순진리회 관계자 분들을 만나기 위해 접견실로 이동했다. 여러 분들을 만나서 누가 누구인지 잘 기억은 안 났지만 모두 범상치 않은 강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기운과는 다르게 그분들은 담배도 한 대 권하시기도 하고 농담도 하시면서 우리를 환대해주셨다. 특히 우리 일행을 치성에 참가하게 해 주셔서 감사해야할 판에, 대순진리회 치성에 관심을 가지고 참가해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해 주시니, 필자는 몸 둘 바를 몰랐다.

  치성시간이 가까워져서 우리 일행은 영대로 이동하였다. 영대에 다 올라가서 우리 자리를 확인하니 진짜로 거의 제일 앞줄이었다. 필자는 행여 실수라도 하면 뒷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더욱 긴장했다. 그러나 이 긴장이 조금 풀릴 만한 일들이 곧바로 이어졌다. 접견실에서 만난 분들이 ‘한복을 입은 모습이 보기 좋다.’고 조용히 웃으면서 말씀하셨고, 치성상이 들어올 때 신기한 듯 바라보는 몇몇 신도들도 보이는 등, 예행연습 때 들었던 주의 사항들을 어기는 신도 분들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필자는 치성 때의 분위기가 무조건 엄숙하고, 순서나 예법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많은 눈치와 꾸지람을 들을 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도 나름의 융통성이 발휘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흘끗흘끗 쳐다 본 치성상은 정말 대단했다. 약 1m 정도 쌓여있는 갖가지 치성 음식이 그 넓은 영대의 치성상 가득히 놓였다. 먹어보지 않아도 그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선배의 말을 들어보니 치성 준비를 위해서 각 방면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들이며, 소·돼지의 경우에는 여러 마리를 통으로 잡는다고 했다.


  본격적인 치성이 시작되자 필자는 마치 머리속이 텅 비어있는 듯했다.


  “좌로 2보! 배~ 흥~ 배~ 흥~, 우로 4보! 배~ 흥~ 배~ 흥~”


  필자에게 영대는 좁게, 절하는 속도는 정신없이 빠르게 느껴졌지만, 예행연습을 해서 그런지 다행히 순서나 이동이 틀렸거나 절하는 속도가 늦진 않았던 것 같다. 순서를 기억하거나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몸이 가는 대로 움직였다. 치성상이 차려지기 시작해서 퇴장하기까지 2시간 정도가 정신적 부담감과 빠른 의례 진행 때문에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몰랐지만, 단순히 이성이나 감성으로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이 내 안에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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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장한 후 선배는 음복도 치성의 일부라면서 음복할 장소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어릴 적에 집에서 차례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낼 때, 필자에게 차례나 제사에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촛불을 끄는 것과 음복을 하는 것이었다. 하물며 산해진미가 잔뜩 차려져 있던 대순진리회의 치성 의례 후 나누는 음복은 필자로 하여금 입맛이 돌게 했다. 음복 장소에서도 우리 일행의 ‘특별대우’는 계속되었다. 우리 일행은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었는데, 이전에 만났던 대순진리회의 원로 분들이 우리에게 치성을 잘 치렀다며 술도 한 잔 권하셨고, 음식도 많이 권하셨다. 특히 치성 때 사용된 술은 정성껏 빚은 술이라서 대순진리회 신도 분들도 몇 분밖에 맛볼 수 없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았다(필자의 지도교수께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하시고 가끔 그 선배에게 그 술을 가져오라는 압력을 주시기도 한다.).

  음복까지 마치고 새벽 동이 틀 무렵 우리 일행은 연구원으로 돌아왔다. 필자에게 있어서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에 참가했던 것은 매우 특별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필자의 지도교수는 입버릇처럼 ‘대한민국 종교학계에서 ○○○를 경험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라고 말하곤 하신다.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에 참가하기 전에는 지도교수의 저 말씀이 허풍이나 자기 자랑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필자가 구천상제님 강세치성을 참가한 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것이 얼마나 소중한 연구 자료가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대한민국 종교학도 중에서 영대에 올라가서 치성을 드린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 자리를 빌어서 나와 동학들에게 좋은 기회를 준 대순진리회 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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