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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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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훈 작성일2019.12.24 조회1,1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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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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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에 있어 가장 커다란 사건은 다름 아닌 ‘동양과 서양의 만남’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는 이렇게 말한다. “불교가 서양에 전파된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20세기 대표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은 역설한다. “우리가 지금의 세계를 정통하게 본다면,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동양사상이 우리 서양의 것과 동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세계사적으로 참으로 중대하고도 심오한 변화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흔히 동서양의 학문과 사상, 철학, 종교 등등이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 교류해 왔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왜? 교통의 문제 때문에? 아니다. 교통수단의 미비 문제는 둘째 문제고, 일단 언어 의사소통의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지구촌이 되었지만, 과거 인류는 동서양으로 멀리 동떨어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덩치가 큰 나라들은 자국 내에서도 언어가 갈렸다. 한 나라의 언어조차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는 외계어처럼 변질하기도 했다. 우리 조선 시대를 생각해 보자. 당시 조선의 선비들은 서구의 문화, 언어, 학문을 알고 있었을까. 아니, 멀리 갈 것도 없다. 해방(1945) 이전의 지식인들이 독일의 철학자 칸트나 헤겔을 과연 얼마나 치밀하게 이해했을지 짐작이 가는가.

 

알다시피 유럽인들은 주로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했다. 비록 인접한 나라의 언어라고는 해도 익숙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데, 그들이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중국의 한자어를 이해하기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서로의 언어를 모르니, 번역물도 나올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생각과 관념, 사상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데, 갑작스레 세상이 변했다. 교통수단에 크나큰 발전이 있었고, 타 언어의 습득과 언어소통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생겼다. 지금은 일반인들도 여객기를 이용한 해외여행을 아주 자유스럽게 하지만,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인류 전체의 역사를 놓고 보면, 약 300만 년 중에 단 1백 년간의 일로써, 그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우리는 고도의 문명을 이룩한 것이 된다. 무엇이 급격한 변화를 초래한 것일까? 이 모든 변화의 근원은 무엇이고, 진원지는 어디일까? 동서양 철학과 종교, 과학을 통틀어 이런 사실의 근원적 원인을 분명하게 단언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천상과 지하의 경계를 개방하여 제각기의 지역을 굳게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을 서로 왕래케 하고 그가 -이마두(利瑪竇)가- 사후에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에 가서 문운(文運)을 열었느니라. 이로부터 지하신은 천상의 모든 묘법을 본받아 인세에 그것을 베풀었노라. 서양의 모든 문물은 천국의 모형을 본뜬 것이라.”

                                                               (교운 1장 9절)

 

이처럼 현상(현실)의 이면에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실재적(플라톤의 이데아적) 원인이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마두(마테오 리치)는 이탈리아의 예수회 선교사로서 3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과 서양의 상호 이해를 도모했던 사람이다. 『전경』에 따르면, 서구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모두 동양의 문명신들이 천상계의 묘법을 -본보기로 삼아- 인간 세상에 베풀었기 때문이다.

 

황당한가? 아니다. 현상계와 존재계가 어떤 관계인지, 인류의 성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설명해 왔다. 동서고금의 모든 종교에는 교의가 있고, 거기에는 공통적인 비전(祕傳)의 핵심이 있다. 이것을 ‘영원 철학(The perennial philosophy)’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물질, 생명, 마음의 세계의 실체를 이루는 것이 ‘신성한 실재’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역설한다. 곧 물질계의 현실이 신적(神的) 현실이라는 것이 가장 기초적인 정의다.

 

인류는 각자 자신들이 찾아낸 진리를 철학이나 종교 교리로서 정립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수천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서로 만난다. 이때 그들 간의 철학, 특히 종교 교의에 있어서 -겉과 다르게- 심층에서는 서로 내용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에 흥분한다. 크게 흥분한 일부 학자들은 어떤 점에서 동서양 사상이 서로 일치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한다.

 

수천 년이 지난 후, 드디어 만난 동서양의 종교철학이 서로 일치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게 바로 ‘진리’라는 뜻이 아닌가? 진리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보편적인 법칙이나 인식의 내용”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일치하는 사상, 시공을 초월하여 동서(東西)가 함께 주창해 왔던 것, 그게 바로 진리이다.

 

필자가 보기에 역사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출현했던 영원 철학을 세계지도에 표시해 보면, 다음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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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지에서 출현한 영원 철학

 

놀랍지 않은가? 이 모든 사상과 종교철학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그것도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 사상들이 진리를 함축하고 있지 않다면, 어찌 되는 것일까. 그것은 곧 전 인류의 지적 자산을 부정하는 것이고, 지금까지의 인류 전체의 역사는 그 향방을 잃고 그릇된 길을 걸어왔다는 의미가 된다. 더 나아가 전통 철학과 거의 모든 세계 고등종교들의 기초적·공통적 이론과 교의는 일거에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렇다면 이들 사상의 표면적인 내용 즉 표층은 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까?

위와 마찬가지로, 『전경』만큼 그 원인을 명시적으로 밝혀주는 경전은 찾기 어렵다. 곧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공사 3장 5절)하는 것 이라고 밝힌다. 우리의 생각과 사상이 서로 달라진 근원적인 원인은 ‘지기(地氣)’의 차이에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경』에서는 동서가 교류하는 오늘날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처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오늘날은 동서가 교류하여 판이 넓어 지고 일이 복잡하여져서 모든 법을 합하여 쓰지 않고는 혼란을 능히 바로잡지 못하리라.”(예시 73절)고 하며, 나아가 “이제 민족들의 제각기 문화의 정수(精髓)를 걷어 후천에 이룩할 문명의 기초를 정하셨다”(교법 3장 23절)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현 문명의 나아갈 바를 알 수 있고,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 동서가 교류하는 오늘날 반목과 투쟁에서 벗어나려면 이 모든 법(法)을 하나로 엮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각 민족의 문화의 정수를 간추린 것이 후천 문명의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크게 순행하는 ‘삼계 대순(三界大巡)’의 함의, 바로 그것 아니던가.

 

 

* 작가 프로필


한국철학 박사

서울 소재 ‘국제예술대학교’와 ‘중앙대학교’에서 강의. 현, 서울 강동구 상일여자고등학교 교사

주요 저서로 『사상체질로 본 성공리더의 조건』 (2003), 『활인의 리더십』(2005), 『이제마의 건강심리학』 [한국학술정보(주), 2007], 『한국윤리와 생명윤리』[한국학술정보(주), 2007], 『동무 이제마의 철학사상』 (2009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보인다 윤리와 사상』 (이담북스, 2010), 『마음은 몸으로 말한다-동서양의 심신의학』 [한국학술정보(주), 2010], 『영원한 철학』 (2013), 『한눈에 보는 세계철학사』 (2015) 외에도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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