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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사(修理寺)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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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호열 작성일2019.03.04 조회1,3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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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5방면 선무 이호열

   


  언젠가 우연히 풍수지리 관련 책자에서 본 수리산(修理山)의 지형도가 단번에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좌청룡 우백호의 준맥들이 도전님께서 공부하셨다는 수리사를 포근히 감싸안은 모습이 내겐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라도·충청도 지역의 상제님, 도주님 관련 성지순례는 몇 차례 다녀왔어도 정작 도전님께서 공부하셨다는 수리사는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창한 봄 햇살에 꽃들이 만개한 어느 날, 도장에서 치성을 모신 후 다음날 오전 10시쯤에 방면도인들과 함께 수리사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호법 I.C에서 인천 방향으로 가다가 군포 I.C에서 군포시내로 접어들어 가니 이정표에 안내가 잘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수리사까지 도로가 나 있었지만 중간쯤에서 내려 봄 햇살을 받아 활짝 피어난 갖갖 꽃들과 나무들을 감상하며 수리산 중턱에 있는 수리사까지 걸어올라 갔다. 수리사에 도착해 보니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절을 둘러싸고 있어 수리사가 폭 감싸 안긴 형상이었고, 많은 신도들이 오가는 큰 절은 아니어서인지 아담한 규모에 어쩌면 형식적 의미의 몇 채 건물들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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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사는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수리산(修理山)에 있는 절로서 신라 진흥왕(540~576)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자세한 경위는 알 수 없고, 다만, 불심을 닦는 성스러운 절이라 하여 ‘수리사(修理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한때는 12개의 암자를 거느릴 정도로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중에 거의 파괴되었다가, 당시의 의병장이던 곽재우(1552~1617) 장군이 이 절을 재건하고 말년에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리산(489m)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태을봉, 슬기봉, 관모봉 및 수암봉 등과 같은 신령스런 봉우리들이 매우 빼어나고 골짜기도 깊어 예로부터 풍류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원래는 어느 왕손이 이곳에서 기도하다가 부처님을 친견했다고 하여 견불산(見佛山)이라 불렀으나 1940년대에 절 이름을 따라서 수리산(修理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도전님께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시기 전 해인 1968년 가을에 49일 공부를 하셨다는 이곳 수리사(修理寺)…, 그리고 도주님께서 1948년 부산에 도장을 마련하신 후 그 이듬해 겨울에 49일 공부를 하신 동래 마하사(摩訶寺)의 이름을 연이어 생각해 보니 우리가 흔히 도술을 부릴 때 떠올리는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부처님의 말씀을 입으로 읽으려고 함에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한다.)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아(修里修里 摩訶修里 修修里 娑婆訶)’라는 주문이 떠올랐다. 어쩌면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도의 큰일을 하시기 전에 공부를 하신 자리…, 물론 ‘理’와 ‘里’의 한자(漢字)가 틀리긴 하지만 본디 주문이란 게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소리가 중요한 것임을 생각해 본다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리사… 마하사… 정구업진언…

  대웅전, 나한전, 삼성각 등 수리사 건물 이곳저곳을 살펴보고는 수리사 뒷길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봄꽃들이 만개한 모습이 영험한 기운을 뿜어내는 듯했다. 수리사의 바로 뒷봉우리인 고깔봉에 올라 준비해 온 김밥을 먹으며 산을 내려다보니, 수리사를 포근히 감싸 안고 좌청룡 우백호로 늘어서 겹겹이 시립하고 있는 준맥들의 모습에서 어떠한 시련과 풍파가 와도 지켜낼 것 같은 호위장수들의 굳건함이 느껴졌다. 또한 명당은 배산임수(背山臨水)라 했던가 전방 멀리 자리한 갈치 저수지와 반월 저수지가 그 조건을 갖추어 이곳이 바로 천혜의 명당이며 공부자리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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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리사 전경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산 정상까지 올랐으면 해서 방면도인들 중 일부만 산정상인 태을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우리 수도사업에서도 힘든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쉬어 가는 내리막이 있듯이 능선을 따라 꼬불꼬불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을 따라 슬기봉을 거쳐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소요하며 태을봉 정상을 800여m 앞에 둔 목전까지 다다르니 방문객의 용기와 담력을 시험하겠노라며 칼바위와 병풍바위가 험준하게 가로막아 서 있었다. 마치 마지막 운수마당의 목전에 기다리고 있다는 커다란 시험과 위험처럼…, 칼바위와 병풍바위의 난코스를 지나고 나니 산의 정상이 보이며 마지막 급경사에서는 최후의 남은 힘을 쏟아 내어야만 했다.

  산 정상에 오르니 안양, 군포, 안산이 한눈에 들어왔고 사방을 둘러보니 관악산, 청계산 그리고 멀리 인천까지 희미하게 보였다. 경기 남서부 지역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사통팔달한 자리가 아닐 수 없었다. 산 정상인 태을봉에 함께 오른 방면도인들과 나누었던 막걸리 한 잔은 참으로 시원하고 담백했으며, 의미 깊은 곳에 올랐다는 기쁨과 함께 힘든 등반을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더해 주었다.

 

  태을봉… 풍수지리에서는 큰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치고 날아 내리는 모습을 매우 귀한 지상으로 꼽으며 이런 형상을 ‘태을(太乙)’이라 하는데 일출 무렵 태을봉에 올라 그 그림자를 내려다보면 ‘태을’형상이 보인다고 한다.[산정상 비문] 


  큰 독수리의 형상이라 하여 클 태(太)에 새 을(乙), 태을봉이라 했다지만 머릿속엔 ‘태을주’가 먼저 떠올랐다. 도전님… 수리사… 태을봉…, 뭔가 좌표점이 연결되며 신비의 형상이 드러나듯 머릿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호흡을 가다듬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려가는 길은 태을봉에서 산본쪽으로 내려가는 정비가 잘 된 평탄한 등산로를 선택했는데 근처 태을초등학교에서 사람들이 축구시합에 열중인 모습이 보였다. 미리 가까운 곳에 차를 대기하며 기다리고 있던 방면 식구들을 만나 등정의 감격을 전해 주며 그날의 일정을 마쳤다. 

  이번에 수리사를 다녀오면서 힘든 과정을 이겨 내고 결실을 얻었을 때의 기쁨과 그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맛보았다. 그리고 실제 도전님께서 공부하신 자리를 방문하여 배우고 깨우치면서 더욱더 우리 도(道)가 하늘이 내리신 도임을 느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양위 상제님과 도전님의 유지(遺志), 유법(遺法), 유업(遺業)을 가슴에 새기고, 천 년의 호흡처럼 숨결 깊은 도인이 되어 천하포덕(天下布德)의 작은 밀알이 되겠노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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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정상 ‘태을봉’에서(왼편에서 세 번째, 필자)

   

 

<대수회보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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