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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과 사막을 품에 안은 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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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현진 작성일2019.06.10 조회1,7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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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위원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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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7월 26일부터 8월 8일까지 14일간의 해외봉사 및 종교답사일정에 함께 참여했다. 봉사단 일정은 봉사 후 돌아오면서 종교문화의 발상지이며 유적지이기도한 이집트와 터키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몇 번 해외를 갔다 온 경험은 있지만, 해외 봉사활동으로 처음 참여하게 된 것에 감흥을 느끼며 인천공항을 향한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14시간을 비행하여 도착한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한 후 그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이들과 처음 만나 어색하였는데 해맑게 다가오는 아이들을 보자 어색함이 점점 사라져 마음을 함께할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우울해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밝게 해줄 수 있는 해맑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하고 졸였던 마음이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아이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뒤로 하고 다음 일정을 위하여 발걸음을 옮겨 이집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

 

  아디스아바바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날아 카이로 공항에 도착했다. 이집트는 강렬한 햇빛과 대추야자나무, 그리고 사막의 이색적인 풍경으로 빛났다. 이집트는 사막과 나일강 두 가지로 설명이 되는 문화를 가진 독특한 나라이다.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이런 척박한 곳에서 어떻게 고대의 찬란한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강이 있어 가능했던 것이다. 공항을 나와 버스에 오른 우리는 가이드와 인사를 나눈 뒤 설명을 듣기 시작하였다. 국교인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이집트인은 서로 차사고가 나더라도 “인샬라01~” 그 한마디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각자의 길을 간다는 말에 빙긋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서로 싸우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뭔가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문으로 보이는 나일강과 도로 주위의 풍경을 보는 사이 어느새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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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집트의 미술품과 다양한 고고학적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라는 명성답게 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들어가자 우리를 처음 맞아주었던 것은 3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파라오 석상이었다. 파라오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일종의 부적인 앙크를 잡고 있다. 아래쪽의 긴 선은 나일강 줄기, 위의 세모난 부분은 삼각주 지형, 양쪽 부분 끝은 각각 메소포타미아와 리비아를 나타내고 있다. 앙크의 아래쪽 부분은 ‘아스완’, 그보다 조금 윗부분은 ‘룩소’, 중간 교차지점은 ‘카이로’가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집트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은 발달하면 서로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 중 가장 접전지역이 고대 그리스어인 헬라어로 ‘아마겟돈’이라고 한다.

 

  석상 중에 다리를 모으고 팔을 가슴에 올려 교차하고, 수염이 약간 굽어진 것은 죽은 뒤에 만들어졌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다리를 벌리고, 팔을 아래로 내리고, 수염이 일자이면 살아있을 적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설명을 듣는 중 황금관과 황금 마스크가 눈에 띄었다. 바로 투탕카멘의 것이었다. 투탕카멘은 18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왕명표에 이름도 없는 왕이었다. 그런 연유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았는데 무덤이 발견되자 엄청난 유명세를 탔다. 파라오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한 투탕카멘이 죽어서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이로써 그가 해원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투탕카멘의 유물 중 지팡이가 유독 많이 보였다. 가이드는 학자들이 투탕카멘의 몸이 불편한 상태였으리라 추측한다고 설명하였다. 이집트는 사막으로 둘러싸인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파라오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존재여야 했는데 전쟁 시에도 그는 무조건 선봉에 서야 했다. 하지만 투탕카멘은 불편한 몸으로 선봉장이 되지 못하였고, 결국 이런 점에서 신하들로부터 불신을 받았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설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그가 뜻을 다 펼치지 못한 비운의 왕이라는 사실에 괜히 마음 한구석이 아파왔다. 다른 왕들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자 박물관 내에 있는 다른 유물들을 살펴보았다. 너무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박물관을 제대로 보는 데 7일은 걸린다는 가이드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물관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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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를 대표할 만한 것으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뽑을 수 있다. 우리는 다음 장소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인 쿠푸왕의 피라미드와 그의 아들과 손자의 피라미드에 도착했다. 눈앞에서 본 피라미드는 과연 상상 이상이었다. 가까운 곳에서는 피라미드의 전경이 카메라에 전부 담기지 않을 정도로 컸는데 크기가 높이 146.5m(현재 137m), 저변 230m정도이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평균 2.5톤의 돌을 230만 개나 쌓아 올렸는데 이것을 인간이 만들었다고 하니 과연 7대 불가사의 안에 들어갈 만했다. 3개의 피라미드가 나란히 있었는데 쿠푸왕, 멘카우라왕, 카프라왕의 것이었다. 멀리서 볼 때에는 아들의 것인 카프라왕의 피라미드가 더 큰 듯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보다 지형이 높아서 시각적으로 그렇게 보이는 효과가 있을 뿐이었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안전 문제로 인해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자그마한 왕비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막 입구에 들어서자 가이드가 “들어가도 욕먹고 안 들어가도 욕먹는다.”라고 엉뚱한 말을 하였다. 그 말을 궁금해 하며 내부로 들어갔는데 아무것도 없이 석관의 흔적만 있는 작은 곳이었다. 먼 곳에서 와서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을 것이고, 들어가 보면 큰 기대감에 도리어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을 가이드는 재치 있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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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쾌청하여 피라미드를 잘 볼 수 있었다. 가이드는 이런 날씨가 흔치 않다고 하였는데 상제님께서 쾌청한 날씨로 답사에 도움을 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피라미드를 본 후 눈을 돌리자, 스핑크스의 모습이 보였다. 스핑크스는 수호를 나타내는 세크메트신의 형상인 사자 몸에 파라오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무섭게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나에게 수수께끼를 낼 듯하였다. 이 스핑크스는 피라미드를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 뿐만 아니라, 길을 잃은 나그네에게 방향을 알려준다고 한다. 평상시 사진에서 본 스핑크스에 코 부분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가까이서 보니 코 부분이 크게 훼손되어 있었다. 이것에 대해 프랑스 군대가 스핑크스의 코를 표적으로 사격연습을 했다는 설이 있는데, 학자들은 신빙성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박물관에 스핑크스의 떨어진 코의 잔해가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머지 이집트 지역에도 코만 훼손되어 있는 스핑크스가 몇 개 있다고 한다. 이점은 신체가 파손되면 부활을 못한다는 그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경이로움을 안고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뒤로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뚜껑없는 박물관 룩소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룩소로 가기 위해 카이로 공항으로 향했다. 카이로와 룩소의 거리는 비행기로도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에 있다. 룩소는 왕들의 계곡과 여러 신전이 있어 뚜껑 없는 박물관이라 할 만큼 도시 전체가 유물로 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룩소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추구하는 부활과 영생을 그대로 담고 있다. 룩소 공항에 도착하자 41도에 달하는 뜨거운 날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 번째로 카르낙 신전을 방문하였는데, 여기는 가장 높은 태양신 라(Ra)를 위한 신전이다. 이 신전은 다른 신전들 중에서 가장 구조를 잘 갖춘 신전이며 룩소에 있는 4개의 신전 중 가장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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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신전의 제일 중요장소는 지성소(至聖所) 안의 단(壇)이다. 부활과 영생이 목적으로 지어진 이 신전에서 지성소의 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일화가 전해진다. 알렉산더대왕은 이집트 정복 후 이집트인들에게 자신을 넘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집트 최고신인 태양신 라의 지성소에서 단을 밟고서 연설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발 아래에 최고신이 있다는 그의 행위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 같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가이드가 다음 장소로 이동할 것을 재촉하여 다시 움직였다.

 

  신전에서 40분 정도 이동하자 계곡에 도착했다. 왕가의 계곡은 파라오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왕의 지위에 걸맞게 근엄한 위엄을 자랑하였다. 돌산으로 되어 있는 이 계곡은 빛에 비춰져 은빛 커튼이 물결치는 듯 보였다. 이 계곡은 투트모스 1세가 처음으로 안치된 뒤 많은 파라오들이 계곡에 묻혀서 지금의 왕가의 계곡을 이루게 되었다. 묘는 지금까지 64개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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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가의 계곡에 있는 무덤은 그날그날마다 관람할 수 있는 대상이 바뀌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에는 람세스 1세와 4세의 무덤이 가능하다고 했다. 무덤 안에는 여러 신들이 그려져 있었는데 손상된 부분도 있었고 오래되어 그 빛은 바랬지만 섬세함과 채색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웠다. 계곡에 있는 무덤은 투탕카멘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거의 초기에 이미 모두 도굴 되어버렸다. 거기에다가 도굴범들은 파라오가 부활하여 자신을 쫓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미라를 훼손했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사제들은 미라를 지키기 위해 미라를 여러 곳에 옮겨 다녔다. 람세스 2세의 경우는 3번이나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러한 수난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후세에 와서는 땔감이 되기도 하고, 약으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집트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최초의 여자 파라오인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葬祭殿)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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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은 그 형상이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장제전은 여왕이 여자로서 파라오가 되기 힘들었던 상황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장제전의 벽화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그녀는 투트모스 2세가 일찍 죽게 되자 9살짜리 어린 양아들과 결혼을 하여 섭정을 하다 계속 왕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를 가둬두고 통치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양아들인 투트모스 3세가 30세가 되던 해에 왕권을 넘겨받고 그녀는 돌연사하게 된다. 여왕에 의해 감금되어 있던 투트모스 3세는 왕이 되자마자 여왕과 관련된 모든 유물을 파괴해 버려 흔적을 없앴는데 그녀로 인해 맺힌 원이 대단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장제전도 원래 돌무더기만 쌓여 있던 형태였으나, 현대에 일본기술자들에 의해 반쪽만 재건되었다. 정말 한 사람이 맺은 원이 엄청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사연이 많은 장제전을 뒤로 하고 룩소 신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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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룩소 신전의 규모는 카르낙 신전에 비해 작았으나, 이 신전에 람세스 2세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가이드가 오벨리스크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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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파샤 모하마드 알리왕이 프랑스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죠. 구경을 하던 그는 마음에 드는 시계를 발견하여 시계를 얻고자 하였는데 루이스 필립왕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기가 생긴 왕은 오벨리스크와 시계를 바꾸자고 하였고, 오벨리스크의 가치를 아는 프랑스는 얼른 수락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쌍을 이루던 오벨리스크는 홀로 남겨지고, 오벨리스크와 맞바꾼 시계는 고장이 나버려 박물관에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하죠. 참 웃지 못할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지으며 나머지 신전을 둘러보고는 이집트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집트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등으로 마냥 신비감을 주지만, 좀 더 다가서면 황량한 사막과 그 사막을 견뎌주는 유일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인 나일강과 공존하는 사람 냄새가 묻어나는 곳이다.

 

  또한, 값진 유물들로 화려해 보이지만 많은 아픔이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조상인 미라와 유물들을 도난당하고 훼손을 당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어둠이란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사막의 황량함과는 대조적으로 너무 활기차 보였다. 이 활기참과 밝음을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에게서도 느꼈다. 한 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해맑은 미소를 잃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수도함에 있어 힘든 현실에 직면하더라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수도를 잘 하라는 상제님의 메시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이집트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01 알라가 뜻하는 대로라는 의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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