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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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05 조회423회 댓글0건본문
늘 말하는데도 도인들이 착각하고 옳게 판단을 못하는 것이 연운체계이다. 잘못하면 죄를 짓는다. 방면에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늘 여기에 있다.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연원과 연운을 착각해서 그렇다.
우리는 연원도통(淵源道通)이다. 수운가사에도 연원도통으로 되어 있다. 수운은 범인(凡人)과 다르다. 수운가사는 우리 얘기지 다른 것이 아니다. 연원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연원이란 포덕한 연줄이 아니다. 연원을 잘못 판단하여 선각이 아니면 도통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된다.
연원(淵源)이란 원 근본을 말한다. 못 연(淵), 근원 원(源)으로, 못도 물이요, 원(源)도 물이다. 못 연(淵), 근원 원(源)에는 삼 수(氵)가 있다. 진리의 근원은 물에 있다. 옛날 복희(伏羲) 때는 용마(龍馬)가 황하(黃河)에서 하도(河圖)를 지고 나와 거기에서 진리를 깨달았고, 우임금 때 신구(神龜)가 낙수(洛水)에서 낙서(洛書)를 지고 나와 주(周) 문왕(文王)은 거기에서 천지의 이치를 깨달았다. 하도⋅낙서에서 진리가 나왔다.
금산사의 금불(金佛)을 모신 자리에도 용추(龍湫)가 있다. 상제님, 정산님의 진리도 못, 즉 물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상제님께서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오너라.”01고 하신 것은 금산사의 미륵불을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들으라는 말씀이고 양위 상제님의 진리로 들어오라는 말씀이다. 두 분의 진리를 받아야 통한다. 이것이 연원도통이다. 연원도통이란 상제님⋅도주님 두 분의 진리에 도통이 있음을 말한다. 포덕한 연줄로 운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연원과 연운은 다르다. 오늘 갓 입도한 도인이라도 연원은 누구에게나 같은 것이다.
그런데 줄02이라고 한다면 중간에 병이 났는데 내버려두면 못 쓴다. 그냥 두게 되면 다 버리게 된다. 잘라 버려야 한다. 썩은 줄을 그대로 두면 안 된다. 끊어 버려야 된다. 아니면 다 썩어 들어간다. 잘못됐으면 잘라 버려야 한다. 도를 닦아 나오다가 중간에 썩은 사람이 나오면 물들기 전에 잘라 버려야 한다. 그러나 자른다고 나가라는 것은 아니다. 나가고 안 나가고는 자기 자유다. 중간이 끊어져도 연원은 끊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도인은 상제님의 도인이지, 임원의 개별적인 도인이 아니다. 만약 중간 줄이 썩었으면 잘라내고 다시 이어야 한다. 그래야 밑에서 살지, 안 그러면 저 밑에 절단 나잖아! 줄이 복판이 썩었는데 썩은 것을 잘라서 줄끼리 이어서 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래야 아래위가 다 산다. 공에는 남을 포덕한 공도 있고, 키운 공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키운 공이 더 큰 것이다.
이번에 통하는 것은 연원이다. 그 원리를 믿는 것이다. 연원을 착각하고 몰라서는 안 된다. 연원은 줄이 아니다. 아래가 잘되면 윗사람은 저절로 커지고, 위가 커지면 아래도 따라서 커진다. 그러니까 서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로가 고맙고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해원상생이다. 서로가 그저 고맙고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어느 방면이라도 서로 단결이 되어 잘해가면 누가 생각해도 속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들어가게 되고 부럽고 두려운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면 전체가 다 좋아지게 된다. 도인은 각자가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윗사람 때문에 못 크는 것은 없다. 위가 커지면 아래가 절로 커지고, 아래가 잘되면 위가 절로 커진다는 것을 잊지 마라. 그러니 바로 알고 직분을 다 하도록 하라.
01 행록 5장 29절.
02 연운을 비유한 것.
<1989년 음2월 11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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