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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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19 조회464회 댓글0건본문
잘 알겠지만 우리 도가 그렇다. 옳고 좋다는 것만 내가 완전히 이해했다면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르는 데서 문제가 오는 것이다. 우리의 법이 있고 제도가 있는데, 이걸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우리 도가 옳고 좋다는 것만 충분히 이해했다면 지키는 것은 쉽다. 우리의 법(法)이 도법(道法)이다.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을 받들어 목적 달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나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즉 믿는다는 것은 상제님의 뜻을 받들고 도주님께서 정하신 법을 지켜나간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모르면 배워야 하고 알면서도 벗어난다면 죄다. 임원으로 이런 것을 몰랐다면 한두 사람도 통솔해 나가기 어렵다.
우리의 법은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모든 것을 받들어 정하신 것으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법방과 제도인 것이다. 이것을 지켜나가면 도인이라 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비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도인이다’, ‘아니다’는 우리의 법을 지켜나가는가, 벗어나는가에 있는 것이다. 도를 믿다가 우리 법에 어긋나거나 법을 바꾸려고 하면 탈법이 되고, 탈법을 난법난도(亂法亂道)라고 한다.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을 난동자라 하는 것이다. 난동자가 난동을 부릴 때 몰라서 그렇게 했다면 큰 것이 아니나, 알고서도 계속 그런다면 나중에 신명한테 벌을 받는 것보다도 사람한테 먼저 벌 받는다. 여기서 쫓겨나간다는 뜻이다. 악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안 쫓아낼 수가 없다.
도가 다른 게 아니다. 도는 이치이고, 이치가 경위고, 경위가 법이다. 우리 도가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 뭐든지 맞으면 여합부절(如合符節)이라 하고, 진리에 맞고 옳다고 하는 것이다. 천지신명들이 사람뿐 아니라 전 우주의 모든 것이 멸망의 길로 가므로 구천의 상제님께 호소를 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전 우주를 광제하시려고 오셨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에 오셨다. 이 금불은 진표율사가 모셨는데 용추못에 미륵금불을 봉안하라는 현몽을 받고 만든 것이다. 용추못은 용 아홉 마리가 목욕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었는데, 도저히 물을 메울 수가 없었다. 흙으로 메우면 흙이 간 곳이 없어져 버리고, 돌로 메워도 안 되고 했는데, 다시 계시가 있기를 “숯(목탄)으로 메워라. 안질이 있는 사람은 숯을 갖고 와서 여기 넣고 눈을 씻으면 눈병이 낫는다고 널리 알리면 될 것이다.”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못이 다 메워졌다. 여기에도 이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 메우고 좌대로 쇠솥을 얹고 그 위에 금불을 모셔라.”는 계시대로 솥을 걸고 금불을 모셨다. 금산사 미륵전 밑으로 들어가면 쇠가 있다. 그게 솥이다.
상제님께서 인세(人世)에 계실 때 호가 증산(甑山), 도주님의 호는 정산(鼎山)이셨다. 시루 증(甑), 뫼 산(山), 솥 정(鼎), 뫼 산(山)이다. 시루는 솥 위에 얹혀야 조화가 나온다. 물도 있어야 하고 숯으로 불도 때야 하는데 용추못은 물이고, 숯은 불이니 조화가 나온다. 금불의 양쪽에 보호불이 두 개씩 있는데,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다. 금불과 보호불, 그 옆의 조그만 불이 합쳐서 두 개의 뫼 산(山) 자, 즉 출(出) 자를 이룬다. 이것은 산(山)이 두 개 있는 형상으로 증산, 정산을 의미한다. 완연하다. 다른 사람은 모른다. 우리 아니면 모른다. 절에서 하는 설명을 들어보면, 후천은 미륵불의 시대이고 그때는 이와 같이 키가 커진다고 한다. 『전경』에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을 보라.”01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리, 이치를 보라는 말씀인 것이다. 증산교는 유명무실하다. 이름만 있지 교인이 없다. 교인이 떨어지니까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에 오라”는 상제님 말씀에 붙여가지고 금산사에서 신도회를 갖고 교인을 어떻게 모아보려 했지만 그게 되나? 안 되지!
증산은 상제님의 호니까 다들 잘 안다. 그러나 정산은 모른다. ‘아무나 솥 정(鼎), 뫼 산(山)이라 하면 되지’ 하겠지만 도주님이 아니면 안 된다. 그 어른께서는 함안땅으로 오셨다. 다 함(咸), 편안할 안(安)이니 다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회문리는 모일 회(會), 글 문(文)이니 글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글을 배우려면 글이 모여 있는데 가야 찾고 배울 수 있다.
도주님 탄강일은 12월 4일이다. 12월은 1년의 끝달이므로 12달이 다 들어 있어 도를 뜻한다. 1⋅2⋅3월은 봄, 4⋅5⋅6월은 여름, 7⋅8⋅9월은 가을, 10⋅11⋅12월은 겨울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가 소절(小節)이고, 그게 셋이 모이면 15일이고 보름이며 1절후이다. 15일이 두 개 모이면 한 달이다. 날과 달 모두가 음양이다. 기도를 모실 때도 음일(陰日), 양일(陽日) 가려서 기도주와 태을주를 바꾸어 한다. 5일이 일 주일이고 주일기도를 한다. 이것이 3번 모이면 일 절후, 절후가 2번 모이면 한 달, 달이 3번 모이면 한 철이다. 이런 모든 것이 변화이고 조화이며, 이 세상 모든 변화와 조화가 도(道)이니 12월은 도(道)다. 4일은 춘하추동의 사철을 의미한다. 이것을 법이라 하고, 진리라 하고, 도라 하는 것이다.
비결에 ‘수종백토주청림(須從白兎走靑林)’02이란 말이 있다. 즉 흰 토끼를 따라 청림을 좇으라는 이야기이다. 옛날부터 작은 달(29일)은 백토끼, 큰 달(30일)은 옥토끼라 했다. 그래도 잘 모르니까 ‘옥토는 만월이오, 백토는 소월(小月)이라’03고 설명한 것이다. 백토주(白兎走)는 소월주(小月走)이니 조(趙)가 되고, 청림(靑林)은 십이월(十二月)을 말한다. 초나흘 달은 초승달이 뜨니 조그만 달 곧 소월(小月)이다. 백토는 소월이고 소월은 곧 4일이 된다. 이렇게 성씨, 지명에서부터 강세 하신 날까지 다 맞아야 된다. 즉 조씨(趙氏)에 정산(鼎山)이셔야 되고 탄강하신 날까지 맞아야 된다. 이것을 법, 진리라고 하고, 여합부절(如合不節)하며 빈틈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옛날 승려들이 쓴 것을 보면 우리 도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훤하다.
상제님을 믿는 종단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곳에는 진리가 없다. 진리는 대순진리회밖에 없다. 구천상제님이라고 하는 종단도 없다. 다른 곳에서는 증산께서 모든 천지의 조화를 임의로 하셨고 그분 말씀이 다 맞다 해서 추종하는 것이다. 하느님이라고 믿는 것이 아니다. 이상호, 이정립이 책을 썼어도 구천상제님을 모른다. 구천상제님이라는 말은 우리밖에 없다. 그들은 그 어른을 알아서 믿는다는 것뿐이지 진리가 없다. 그 어른께서 무엇을 했다는 것뿐이지, 우리처럼 도의 제도, 임원 직책, 지도해 나가는 그런 게 없다.
믿는다는 것은 정해놓은 법과 제도를 믿는 것이다. 자기의 뜻대로 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 믿는다고 한다면 정말 옳고 좋다는 것을 알아 가지고 믿어야 한다. 모르는 것은 배워 나가야 한다. 알아야 한다. 도는 자각(自覺)을 하는 것이라고 해서, 각자의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을 수가 없다. 자각이란 도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자꾸 깨달으라는 것이지 자기 생각대로 멋대로 하라는 게 아니다. 종단 안에서 제도에 순종해 나가야지, 종단의 제도와 법을 지키지 않고 마음대로 한다면 난법난도자, 난동자가 되는 것이다.
신앙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 단체에, 그 제도에 맞게 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사회도 그렇지 않은가? 사회에도 단체는 그 단체의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제도에 따라야 하고, 그 단체의 총책임자에게 순종해 나가야 한다. 반대를 하려면 사퇴하든지, 그렇잖아! 그게 의당한 것이다. 그것을 어기면 사람이 아니다. 싫으면 내가 나가는 것이다.
01 행록 5장 29절.
02 『정감록』「오백론사비기」, 「칠언고결」.
03 『채지가』 「달노래」.
<1991년 음1월 6일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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