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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훈시종통에 대한 훈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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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7.03 조회3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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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제님의 유지(遺志)를 받들고 도주님께서 설법하신 분부를 믿고 나간다. 도주님은 한 번 바꾸신 곳은 두 번 다시 안 가셨다. 도주님 재세 시 태인에 무극도장이 있었지만 신사년(辛巳年, 1941년)에 폐쇄된 후 해방이 되어도 다시 찾지 않으셨다. 그때 도수에 사용하였으면 족한 것이다.

해방 후 무자년(戊子年, 1948년)에 부산 보수동에 영대를 모셨다. 보수동 뒷산이 구덕산(九德山)이다. 도주님께서는 구덕산 아래에 정사(精舍)를 지으시고 공부를 하시고 도수를 보셨다. 부산에서도 무극도라고 했는데, 3년만인 경인년(庚寅年, 1950년)에 사건이 일어나 평이 안 좋게 되었다. 그래서 태극도로 이름을 바꿨는데, 사실은 하늘이 바뀌어지도록 만드신 것이다.

도는 변한다. 변화가 있어야 조화가 생긴다. 인력(人力)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신명이 만들어준다. 도에서는 도수(度數)라고 하고 사회에서는 운(運)이라 한다.

보수동 일대 야산에는 6⋅25사변 후 도인 마을이 형성되었고 그로부터 9년만인 병신년(丙申年, 1956년)에 감천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대강전을 건립하셨고 정유년(丁酉年, 1957년)에는 영대를 봉안하시고 석가여래, 관성제군, 칠성을 모셔두었다. 공부가 시작되었다. 그 후 도주님께서 모든 공사를 마치시고 무술년(戊戌年, 1958년)에 화천하실 때까지 감천에서는 치성을 자주 모시고 보수동 영대는 1년에 음력 정월 치성 딱 한 번 모셨다. 보수동 영대 모신 곳은 보수동 도장이라고 했는데 감천도장으로 옮기신 뒤에는 보수동 도장에 잘 가시지 않으셨다. 도주님께서는 도수에 이미 쓰셨던 곳은 잘 가지 않으셨다. 내가 감천에서 떠나온 후 감천을 잘 찾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서울(중곡)도장의 창건은 상제님의 수륙병진도수(水陸竝進度數)에 의한 것이다. 남대문에 천자부해상(天子浮海上)을 써 붙였고, 소원을 적은 종이에 안경을 싸서 북쪽으로 던졌으니 곧 서울이다. 도는 변화다. 변하는 데 조화가 있는 것이니 변하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 12지지와 10천간이 맞물려 돌아가다가 60을 주기로 다시 돌아가듯이 변하는 것은 딱 정해져 있다. 10천간과 12지지, 24절과 28수로 딱 맞지 않고 여유가 있다. 변한다는 것은 여유가 있어 돌아간다는 것이다.

 

 

<1988년 음10월 27일 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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