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丹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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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20 조회1,870회 댓글0건본문
그것은 하나의 축제였다.
노래와 춤으로 미친 듯
끼를 발산하는 여느 축제와
전혀 다른 그것은 축제였다.
선명하게 맑은 물감
넘치지 않게 따라주면
상제님의 선물인양
정성스레 받아들고
앞치마에 붓 한 자루 부족함이 없었다.
백열등 불빛아래 하나 된 어우러짐
푸른색 바탕은 태(胎)안의 안락함이었고
옆에 있는 도인은 님보다 고왔다.
아가의 한복인양 한 뼘 한 줄
정성으로 입히면 밤은 새고
홰치는 닭소리 들렸다.
멀리 있는 님도 아이들도
핏빛 붉은 마음,
가슴속 푸른 마음 아시겠지.
본향(本鄕)을 향한 타오르는 춤사위
새참으로 받아든 토마토 반쪽
깔깔대며 웃었던 해탈한 여인들
소리 없는 저 단청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축제이다.
도장을 둘러보면서 내수들이 단청에 대해 느끼는 감회는 참으로 많을 것 같다. 외수들도 자신이 작업했던 건물 옆에 가면 망치질하던 생각이 나서 그 부분만 다시 보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땀 흘리고 정성들인 부분에 눈길을 주고 남모를 미소를 지어보는 것은 대순진리회 도인들의 정서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나 단청은 가장 많은 도인이 참여한 공사이므로 더욱 그러하다. 갓 입도한 수반이라도 한번쯤 붓을 들어 그려보게 했던 단청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도장을 둘러볼 때 이러한 작업의 추억과 더불어 단청에 대한 기본 개념을 설명할 수 있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단청은 일반 건물이 아닌 격식이 높은 국가, 종교적 건물에 행해져 왔다. 이를 통해 단청은 건축의 내구성을 넘어 특별한 미화장식이 요구되는 곳에 행해지는 건축 도장술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단청에 대한 기록은 “솔거가 그린 노송도엔 새들이 날아들었는데 색이 바래 단청보수 작업을 하고 나니 더는 새가 날아들지 않았다.”라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솔거조(率居條)」이다. 이처럼 단청에는 회화(繪畵)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단청 자체가 시대 변천을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표현방식과 채색법이 시도되어 예술성과 창조성이 가미되어 내려왔다. 단순한 모방성 채화가 아닌, 시대·사회·종교의 미(美)의식이 반영된 고도로 세련된 회화의 한 장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단청은 성당에 그려진 성화(聖畵)가 그리스도교의 성(聖)스런 장면을 보여주고, 절에 그려진 탱화가 불교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고분이나 사찰에 그려져 그 고유한 의미를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그러므로 대순진리회의 단청 역시 도(道)의 정서와 사상을 나타내 보여주는 하나의 훌륭한 그림인 셈이다.
단청의 채색(彩色)은 오행의 색인 황(黃), 청(靑), 적(赤), 백(白), 흑(黑)색을 근간으로 하는데, 중국의 『고공기(考工記)』01에는 오행설을 따라 金生白 金克木 木色靑 靑白間色碧, 木克土 土色黃 靑黃間色綠, 土克水 水色黑 , 水克化 火色赤 靑赤間色紫, 火克金 赤白間色紅 라 기술하고 있다. 오행설은 천문ㆍ지리학적 사상을 구현하여 방위, 절기 등을 나타냈으며 색상을 이에 부합시킨 것이다. 간색(間色), 즉 중간색은 방위의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고 그 사이 8방과 16방의 간색을 설정하였다.02 우리 도장에서는 보통 12색을 쓰고 있다.
모든 색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그 중 황(黃)과 록(綠)은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때로 금박(金箔)을 붙이는 황(黃)은 오행(五行)에서 중앙으로 사람의 위장(胃腸)에 해당하며,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오상(五常) 중 신(信)에 해당하는 색이다. 이 색은 중앙에 있으면서 사방으로 통하는 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어둠과 밝음, 뜨거움과 차가움이 이 색을 중심으로 교차한다. 만약 여기가 부족하면 모든 것이 깨지고 색을 조화롭게 할 수 없다. 조색(調色)할 때도 황색이 있어야 다양한 색을 만들 수 있다. 이에 황색을 중심으로 어우러진 단청과 믿음을 기본으로 형성되는 인간 사회는 그 맥락이 같음을 알 수 있다.
땅을 상징하는 황(黃)과 하늘을 상징하는 청(靑)을 섞으면 록(綠)이 된다. 록색은 천지가 결합한 색으로 생명체의 색이다. 만물이 천지를 부모로 삼고 태어난 서로 다른 모양의 형제임을 알게 하는 색이기도 하다. 요즘은 이 색으로 서양에서 넘어 왔다하여 양록(洋綠)이라 불리는 물감을 쓰는데 단청을 하기 위해 먼저 건물 전체에 고루 바른다. 파란 보릿빛 양록 바탕에 밑그림(타분)을 외수들이 치고 나가면, 조별로 채색을 해 나가는데, 한 가지 색을 들고 다니며 맡은 구역을 칠해 나간다. 차고 따뜻한 음양의 색이 번갈아 칠해지고, 밝고 어두운 빛넣기가 이루어지면서 점차 입체적이고 꽉 짜인 매듭 같은 모양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각 부위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문양들이 그려진다. 단청문양은 일정한 유형의 그림인데, 미(美)를 조성하는 한 방식으로 자연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상념적인 신명계를 구상화하여 도안하거나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들 문양은 건물 부재(部材)에 따라 문양이 정해져 정확한 질서와 일정한 방식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 체계는 부재의 시작과 끝에 머리초, 중간부에 기하학적 모양의 금문(錦文), 도채하지 않은 부분에 별화(別畵)를 그리는 것이 기본이다. 그리고 착고나 개판, 우물 정(井) 자 반자의 격간(格間)에 화초나 동물을 도안하여서 한 구획 안에 단독으로 문양을 넣는 것 등으로 이루어진다.
단청의 종류로는 가칠·긋기·모로·금단청이 있다. 한 가지 색으로 단순하게 칠하는 가칠단청은 그 자체가 마무리칠이 되기도 하고, 다른 단청의 바탕칠이 될 때도 있다. 긋기 단청은 회관동이나 주차장동에서 볼 수 있는 단청으로 좁은 줄을 그어 단청하는 것을 말한다. 긋기 단청이라도 적당한 곳에 간단한 문양을 넣을 때도 있다. 모로단청은 주요부재의 양 단면에 머리초 문양을 하고 중간부에 가칠·긋기단청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머리초의 문양이나 채색 수는 간략하게 한다. 그리고 금단청(錦丹靑)이 있는데 도장의 단청은 금단청이다. 금박을 쓰거나 금을 그어서 금단청이 아니라 금단청이란 말에서 보듯 여느 단청보다 화려한 단청을 말한다. 머리초부터 모로단청의 그것보다 화려하고 도채색도 더 많이 쓴다. 중간 긋기 부분에도 금문(錦文)·별화(別畵) 등을 넣어 화려하게 한다. 금문은 원(圓)이나 각형(角形)을 기하학적으로 다채롭게 채색해 비단문이라고도 하는데, 연결 연결되어 끊어지지 않는 영원한 연(緣)과 영세토록 빛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단청의 색, 문양, 종류는 이 외에도 다양한 내용이 있어 좁은 지면으로 다 열거하기 어렵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단청은 집을 우주(宇宙)의 작은 모상(模像)03으로 보는 동양권에서는 단청이 건축의 각 부재에 따라 도채하여 천지인 삼계와 우주 삼라만상의 조화를 표현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
동양에서 우주와 비견되는 건물은 크게 하늘을 상징하는 지붕과 땅을 상징하는 기초와 인간을 상징하는 기둥부분으로 나뉜다. 이때 건물의 기둥은 하늘과 대지를 나눌 뿐 아니라 연결해 주는 수직축으로 직립(直立), 견고(堅固)한 구조물이다. 여기엔 검붉은 석간주를 칠하는데 석간주는 물감 중에서도 일광, 공기, 산(酸), 알칼리에 극히 강한 물질이다. 바래지 않는 이 색으로 기둥을 칠하는 것은 나무의 주간(柱幹) 구실을 하는 기둥에 나무기둥에 해당하는 색을 칠하는 당연함은 물론, 하늘을 떠받드느라 혈식(血食)하는 도인 같은 인상으로, 굳건한 인간을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기둥 윗부분엔 화려한 장식의 기둥 옷 주의(柱衣)를 입힌다.
기둥 위에는 지붕을 받치는 포(包)가 있다. 주두(柱頭) 위 첨차는 줄기가 휘여 감긴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사이에 순이 돋거나 꽃이 피어있다. 이 문양은 당초문(덩굴무늬)으로, 인연 따라 나고 피는 만상 만사(萬象萬事)를 상징한다. 그리고 포와 포 사이엔 자연스레 불벽(佛壁)이란 공간이 만들어지는데 나무 아래 성불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이다. 건물 자체의 공법에 따라 자연히 사람 모습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그리고 때론 이 불벽이 비어 있어 지붕 내부로 통하는 구멍이 되기도 하는데, 이로써 지붕내부의 공기순환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공간으로 새가 들어가 나갈 곳을 찾지 못해 죽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그물을 친다. 그러므로 이 그물은 새들의 배설을 막아 건물을 보호해주고 새들의 죽음도 막을 수 있어서 건물과 새를 살리는 역할을 한다. 작지만 대순진리의 상생(相生)을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촉가지 위로 봉황(鳳凰)이 수없이 앉아 있고, 그 위에는 만물의 근원인 물과 하늘색인 검은색 지붕이 있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단청은, 우주를 작게 모상해 놓은 집 위에 칠해져 다시 그 집의 우주적 의미를 제대로 살려주는 셈이다. 건물과 색이 음양합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단청은 그 문양과 음양으로 어우러진 색채뿐 아니라 작업과정에서도 교훈적인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밑그림을 그리는 초실(草室)작업과 도인의 언행과는 유사점이 많다. 초실에서의 한 획 실수로 나중에 건물 전체 단청을 수정해야 하는 낭패를 치르기도 하는데, 이는 선각자의 무심코 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후각자에 미치는 영향과 가히 비견할 만하다. 이뿐 아니라 도인들의 다툼은 천지에 난리가 난다고 하신 말씀으로 보아도, 도인의 행동과 말이 천지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 진데, 사소한 일이라도 경계하고 조심할 일이다.
또 단청작업은 각자 자신이 받아든 색만 칠하면 되는 작업이다. 맡은바 일만 한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들이 모아져 너무나 아름다운 단청으로 완성된다. 도인 각자 속해 있는 분야에서 성경신을 다해 일하는 그 자체가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또, 단청이 되는 원리로 보아 도인 각자는 하나이지만 전체를 이루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됨을 알 수 있다. 한 색이 빠져도 단청이 완성되지 못함은 도인들 상호관계가 네가 있어야 내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선 하나라도 빠짐없이 그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단청은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단청이 도에 비유되어 설명되는 부분에 이러한 화합과 단결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도전님께서 단청작업을 도인들에게 명하신 것도 그 원리를 몸소 체험하라고 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단청을 통해 도인 상호간의 소중함과 화합의 중요성을 느끼면서 대순 사상은 이해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작업이 끝날 즈음이면 작업 중간 중간 힘들었던 과정은 들기름의 향기, 포수(泡水)하는 포리졸의 안개 속에 사라진다. 발판이 정리되고 단장한 건물은 신명을 모시고 수도하는 보금자리가 된다. 그 일련(一連)의 과정에 사람과 신명이 어우러진 축제 같은 작업이 단청작업이었다.
그 화합, 그 신명나는 작업, 도(道)의 모습을 보여 달라는 수반에게 단청을 자신 있게 보여주는 것이 그래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대순회보》 114호.
__주__
01 중국의 옛 기술서.
02 장기인ㆍ한혁성, 『한국건축대계Ⅲ』, 보성각, p.12 인용.
03 모방하여 만든 상(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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