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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鶴),신선과 벗하는 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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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02.18 조회5,2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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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부 이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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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강전 심우도위, 2층 십장생 중 학 벽화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은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연하장에 소원과 바람 등을 적어 보내며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그러한 연하장에는 으레 학의 문양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무병장수(無病長壽)를 의미하는 학의 상징성과 관련이 있다. 또한, 학은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바탕으로 그림, 도자기, 관복의 문양, 춤 등 한국 전통문화의 여러 분야에 나타나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학을 타고 나는 신선의 그림이나 신선 이야기를 다루는 유선(遊仙) 문학에서 ‘신선과 벗하는 영물(靈物)’로 표현되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적 상징성을 가진 학은 여주본부도장의 영대 1층, 시학원, 정심원, 봉강전 등의 여러 벽화에도 꽤 많이 등장한다. 이렇게 벽화에 표현된 이유는 학의 어떤 상징성과 관련 있는 것일까? 이 글에서는 학의 다양한 상징성을 살펴보고 이와 함께 도장벽화에 나타난 학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학의 생태적 특징과 상징 

  학은 순우리말로 ‘두루미’라고 불리는데, 이는 ‘뚜루뚜루’ 하고 우는 울음소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학은 3월~10월에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에서 서식하다가 겨울이 되면 혹한을 피해 한국, 일본 등지로 남하하여 겨울을 보낸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이 월동하는데, 그중 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2호)는 하얀 몸통에 꼬리를 덮는 검은 깃털을 가지고 이마가 붉은 것이 특징이며, 정수리가 붉다 하여 단정학(丹頂鶴)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루미는 논바닥에서 추수 후 떨어진 알곡이나, 강가에서 우렁이·다슬기와 같은 어패류를 쪼아 먹으며 산다. 키가 1m 40cm에 달하며, 조류 중 오랜 진화의 기원을 가진 새로서 일반적인 조류가 5~15년 정도 사는 것에 비해 학은 자연 상태에서 평균 50년 정도 살아 그 수명이 남달리 길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옛사람들은 ‘학은 천년, 거북은 만년’이라며 ‘장수(長壽)’의 상징으로 여기고 십장생(十長生)의 하나로 손꼽았다. 십장생은 신선 사상에서 유래된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하는 열 가지의 소재로 해·돌·물·구름·산 등의 무생물과 거북·학·불로초·소나무·대나무 등의 생물이 포함된다.01 날짐승 중에서는 학이 유일하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중국 자금성의 황제가 머무는 옥좌(玉座)의 좌우에는 칠보학(七寶鶴)이 조성되어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학은 일부일처(一夫一妻)로 번식하며, 부부간의 사랑이 지극하여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함께한다고 알려져 ‘행복’ 혹은 ‘정절과 지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02 

 

신선과 벗하는 영물

  학은 고귀한 자태나 하늘을 나는 모습 혹은 청청한 울음소리로 인해 신선 같은 새[仙禽]로 받아들여졌고, 여러 옛 그림 속에서 속세를 초월한 신선과 함께하는 모습으로 자주 나타나 신선과의 친밀함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학은 장수의 상징뿐만 아니라 신선과 벗하는 영물로 여겨져 예로부터 선학(仙鶴)이라고도 불리었다.

  특히, 신선이 학을 타고 나는 모습은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라는 주제로 많은 그림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중 많이 알려진 것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武漢市)에 위치한 황학루(黃鶴樓)의 백운황학도(白雲黃鶴圖)이다. 황학루는 ‘신선이 황학(黃鶴)을 타고 승천했다’라는 전설을 가져 도교의 성지이자 순례지로도 유명한데, 이곳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한 선인(仙人)이 자신에게 몇 달 동안 공짜 술을 베풀어준 주점(酒店) 주인 신씨(辛氏)를 위해 벽에 황학 한 마리를 그려 주었는데, 그 모양이 춤을 추듯 아름답다고 알려지면서 이곳의 장사도 날로 번창하였다. 10년 후 그 선인이 이곳에 다시 와 자신이 그린 황학을 타고 구름 위로 날아가자 신씨가 선인과의 인연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누각을 짓고 황학루라 불렀다고 한다.”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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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우한시 황학루의 백운황학도04 

 

  이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선인이 여동빈(呂洞賓, 798~?)이며 ‘여동빈이 이곳에서 황학을 타고 승천했다’라는 설도 전해져 황학루에는 아직도 많은 도교 신앙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황학루의 전설에서도 나타나듯이 학은 선인이 타고 하늘에 오르는 새로서 신선과 함께하는 신비의 영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선과 학의 관계는 신선 이야기를 소재로 한 많은 유선(遊仙) 문학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이 중에서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인간 세상이 아니었다.  (所見非人世也)

여러 신선들이 나를 매우 기뻐 맞이하였다. (有衆仙迎余甚喜)

학 한 마리를 끌어 나를 그 등에 타게 하고  (牽一鶴俾余騎其背)

함께 데리고 하늘을 가로질러 갔다.  (因共挾之凌空而去)

<이수광의 ‘기몽(記夢)’ 중에서>05

 

 

  유선(遊仙) 문학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신선을 만나 함께 학을 타고 날아올라 선계에 다다르기도 하고, 스스로 학을 타고 올라 인간 세상을 굽어보며 이곳저곳을 유람하기도 한다. 여기서 날아오르는 행위는 선계에 도달하는 길이며, 자유를 얻은 행위로서 인간 세계를 초월함을 나타내는 상징이다.06 여기서 학은 인간계와 신선 세계를 넘나들며 주인공을 신선 세계로 이끄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중국의 초기 도교 교단을 창시한 장도릉(張道陵, 34~156)이 중국 도교의 발원지로 일컬어지는 사천의 학명산(鶴鳴山)에서 도를 닦아 오두미도(五斗米道)를 창건하였고, 여동빈은 종남산(終南山) 학정봉(鶴頂峰)의 한 동굴에서 수련하였다고 알려져 있다.07 이같이 신선이 되고자 수도하였던 수련의 터전이자, 도교의 성지인 곳에서 학명산, 학정봉과 같은 학과 관련된 지명이 나타나는 것도 신선과 학의 깊은 관련성을 짐작하게 한다.

 

고고(孤高)한 기상을 가진 선비의 비유

  학은 장수의 상징이나 신선의 벗으로서 도가(道家)의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유가(儒家)의 상징물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는 소신과 뜻을 굽히지 않는 절개와 지조를 군자의 덕목으로 여겼던 유교 사회에서 학이 가진 고고함이나 우아한 자태가 선비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심성 및 태도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학은 ‘고고한 기상을 가진 선비’로 비유되었고, 때로는 다른 새들과 달리 외진 곳에서 조용히 은거하면서 고상함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은둔하는 현자’로 비유되기도 하며 사대부의 사랑을 받았다. 더불어 학이 흑백의 조화와 함께 간결하고 우아한 자태를 보이며, 곧은 다리를 쭉 펴고 서 있는 모습은 ‘학립(鶴立)’이라 하여 실리에 흔들리지 않고 명분을 추구하는 선비의 의연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08 이러한 학이 가진 특성과 상징성 때문에 사대부들은 흰 도포 자락을 너울거려 학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학의 몸놀림을 흉내 내어 그 기품과 엄숙함을 일깨우는 선비의 춤으로 학춤을 추기도 하였는데,09 동래학춤, 양산학춤, 울산학춤 등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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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3.18 국립국악원 예악당,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의 ‘동래학춤’ 공연 보도자료 

 

  그리고 조선 시대에 학창의(鶴氅衣)라 불리는 옷은 학자들이 평상시에 입던 옷으로 학의 모습을 본떠 만든 것이며, 관료들의 관복에는 흉배10를 부착하였는데 문관에게는 학을, 무관에게는 호랑이를 품계에 따라 붙였다.11 고고한 학자를 상징하는 학을 문관에, 용맹을 상징하는 호랑이를 무관에 비유하여 사용한 것이다. 이처럼 학문을 숭상하는 문인을 학에 비유하는 상징적인 표현이 관직의 품계를 나타내는 의관 제도로 정착되었기에, 문관을 일명 학반(鶴班)이라고도 하였고, 이후로는 학 자체가 높은 벼슬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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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창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생활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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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법원 건물 외벽 

 

도장벽화에 나타난 학의 상징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다양한 문화적 상징성을 가진 학은 여주본부도장의 여러 곳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도장의 벽화에는 모두 몸체가 하얗고 이마가 붉어 단정학이라 불리는 두루미가 그려져 있고, 재두루미나 흑두루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옛 그림에 나타난 학은 색채, 한 마리와 무리의 대비, 자세 등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도장의 벽화에서도 학은 장소나 위치, 형태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며, 때로 암수 한 쌍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홀로 창공을 날거나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날갯짓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암수 한 쌍이 그려진 그림이 많은데, 이는 한 쌍의 학이 가진 화목함과 조화로움이 강조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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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심원 1층 계단 입구 천정화 

 

  영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의 벽에 한 쌍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며 참배나 공부 시 봉심을 드리러 오는 많은 수도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영대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시학원과 시법원 건물의 외벽에는 각각 학의 날갯짓하는 모습과 한 쌍의 학이 그려져 있다. 정심원에도 1층 계단 입구 천정에 커다란 한 쌍의 학이 보이며, 2층 내·외수 대기실에는 여러 마리의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 대들보에 두 군데씩 나타난다. 이곳의 학은 수도인들이 지상신선 실현을 위해 시학·시법 공부를 하는 공간이라는 측면에서 신선과 친밀한 존재이자 선경 세계와 어울리는 영물로 표현된 것이라 생각된다. 

  봉강전 뒤편, 심우도의 위에 십장생이 벽화로 그려져 있는데 여기서도 학이 나타난다. 그리고 봉강전의 뒷면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의 ‘도지통명’과 숭도문 안쪽 ‘불로장생’과 ‘오선위기’ 벽화에서도 각각 한 쌍의 학이 나타나는데, 이는 신선과 함께하는 선경 세상의 상징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청계탑의 심우도 도지통명과 돌병풍 좌우 양 끝에도 각각 한 쌍의 학이 있어 돌에 새겨진 형태를 보이기도 하며, 정각원 2층 입구, 자양당 2층 외벽, 대순성전 입구 등 곳곳의 벽화에 학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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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각원 내부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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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강전 심우도 중 도지통명 

 

나가는 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학은 문화적 전통 속에서 다양한 상징성을 보여주며, 특히 도장의 벽화에 등장하는 학은 대체로 선경 세상의 상징물로, 혹은 장수의 상징인 십장생의 하나이자 유유자적하며 신선과 벗하는 영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학은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선경 세계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상이라는 현실에서 신선을 실현하려는 우리 도의 목적과 꽤 어울리는 상징물이라 생각된다. 깨끗하고 고상한 심성을 지키며 지조와 정절의 상징으로서 한번 맺은 인연을 평생 함께하는 학의 모습은, 무욕청정(無慾淸淨)을 추구하며 한마음을 정한 그 믿음을 변치 않고 일심으로 가져가는 우리 수도인의 지향성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볼 때마다 학은 늘 친근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 같다.

 

 

 

 

 

01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십장생’ 참고. 

02 임신재, 『동물행동학』, (파주: 살림, 2006), ‘일부일처제’,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한국세시풍속사전)』, ‘겨울동물’ 참고.

03 이현국, 『중국국가급풍경명승구총람』, (용인: 황매희, 2011), ‘황학루’ 참고.

04 EBS, 「후베이성편」, 《세계테마기행》, 2011.09.13.

05 강민경, 「한국 유선문학에 나타난 신선」, 『고전과 해석』 14, pp.111-113 재인용.

06 같은 글, p118 참고.

07 안경숙, 「여덟 신선이 화폭에 내려앉다」, 《시사저널》, 2014.01.09, ;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중국인물사전』 ‘종리권’ 참고.

08 박병역, 「신선이 학을 타는 그림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 《대한신보》 2018.06.06.

09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동래학춤’

10 조선시대 관료들이 입던 관복의 가슴과 등에 부착시켜 품계를 나타내던 장식을 말하는데, 품계에 따라 문양을 달리하여 쌍학(雙鶴), 단학(單鶴), 운학(雲鶴) 등이 사용되었다.

11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두루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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