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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이해(相互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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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1 조회1,8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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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집을 잡고 싸우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누그리고 지는 사람이

상등 사람이고 복된 사람이니라. 분에 이기지 못하여 어울려

싸우는 자는 하등 사람이니 신명의 도움을 받지 못하리라. 어찌

잘 되기를 바라리오. (교법 1장 55절)

 

 

  이 벽화의 제목은 ‘상호이해(相互理解)’입니다. 상대방의 손을 잡고 다정한 표정으로 서로 이해하는 모습입니다. 잘못된 이해를 오해라 합니다. 서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오해가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해롭게 하거나 서운하게 하는 점이 있다면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허물을 살펴서 뉘우치는 자세로 상대를 대한다면 풀지 못할 오해가 없고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벽화는 또한 파란색 한복을 입은 선비가 흰 한복을 입은 선비의 뺨을 때렸는데 뺨을 맞은 선비가 때린 선비의 손을 잡고 그의 분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장면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기성 종교는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한쪽 뺨을 내밀라고 가르치지만, 우리 도(道)는 뺨을 맞으면 그의 손을 어루만져주라고 가르칩니다.01

  해원상생의 의미란 바로 이런 겁니다. 해원은 원통하고 분한 마음을 푸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말미암는 것이라는 자각 아래 “내가 그에게 어떤 잘못을 하였길래 그가 나의 뺨을 이리도 세게 치는 것일까⋅” 그 강도가 세면 셀수록 상대는 나에게 그만큼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손을 잡아주면서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어주는 겁니다.

  누군가 나에게 안 좋게 대하면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에게 척(㥻) 지은 것이 없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척은 남이 나에게 품은 원한으로 언덕(言德)을 베풀지 않거나, 남을 서운하게 하거나, 남을 억울하게 하거나, 남의 호의를 거스르거나, 남의 말을 무시하거나, 남을 미워할 때 척을 맺게 됩니다.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원을 맺는 것이 곧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인관계에서는 언덕을 잘 가지고 척을 짓지 않는 것을 요체(要諦)로 삼고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상호이해’의 사전적 의미는 상대되는 이쪽과 저쪽이 모두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미국 인디언 속담에도 “다른 사람의 모카신(Moccasin)02을 신고 두 달 동안 걸어보지 않고서는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그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나 자신이 하는 언행을 남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은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보면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자기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 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법입니다. 후덕(厚德)하게 처신하여 남의 호의(好意)를 얻을지언정 남이 싫어하는 일은 극력 삼가고 나아가 남이 나의 덕을 몰라주더라도 괘념치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수도하는 목적은 도통(道通)입니다. 도통을 하기 위해서는 해원상생하여야 합니다. 해원상생은 원망이 없고 미움이 없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해롭게 해도 원망이 없고 미움이 없으려면 삶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경』에 다른 사람과 싸워 사경을 헤매던 박공우 종도에게 상제님께서 “너도 전에 남의 가슴을 쳐서 사경에 이르게 한 일이 있으니 그 일을 생각하여 뉘우치라. 또 네가 완쾌된 후에 가해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생각하나 네가 전에 상해한 자가 이제 너에게 상해를 입힌 측에 붙어 갚는 것이니 오히려 그만하기 다행이라. 네 마음을 스스로 잘 풀어 가해자를 은인과 같이 생각하라. 그러면 곧 나으리라.”(교법 3장 12절)라고 하신 경우나, 술에 만취한 사람에게 심한 능욕을 당한 김형렬 종도에게 상제님께서 “청수를 떠 놓고 네 허물을 살펴 뉘우치라.” 하시며 “금후에 그런 일이 있거든 상대방을 원망하기에 앞서 먼저 네 몸을 살피는 것을 잊지 말지어다. 만일 허물이 네게 있을 때에는 그 허물이 다 풀릴 것이요 허물이 네게 없을 때에는 그 독기가 본처로 돌아가리라.”(교법 2장 28절)라고 일깨워주신 경우를 통하여 깊이 생각해보면 해원상생의 도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누가 나에게 해를 입히면 전생에 나의 척신이 그 사람을 통하여 갚는 것이고, 나 자신이 과거에 척 지은 것이 그를 통하여 오는 것이라 생각하며, 남을 원망하기에 앞서 자신의 허물을 먼저 돌아본다면 원망과 미움보다는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들 것이고 그런 마음에 상대방도 감동하여 상호이해를 통한 해원상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이해하는 것’이 해원상생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서 근본이 됩니다. ‘척을 맺는 것도 나요 척을 푸는 것도 나’라는 이해를 통하여 원망이 없고 미움이 없다면 거기에는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 밖에는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어머니가 자식을 자모지정(慈母之情)으로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자식이 투정을 부리고 잘못하는 것이 있어도 어머니는 다 용서가 되는 것이고 자식을 밉거나 귀찮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귀찮으면 자식을 키우지 못합니다. 앞서 해원상생의 벽화가 다정한 모자지간의 그림으로 형상화된 것이 이런 점에서 이해가 됩니다. 물론 경위와 진리로 이해하는 것이지 무턱대고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해야 하지만 한쪽이 못해도 다른 한쪽이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언제나 ‘나부터, 지금부터, 여기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도(道)를 생각하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광대무변한 도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도전님께서 훈시하신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이해하라.”03는 말씀이야말로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할 근원적인 가르침입니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상호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과 상호이해를 생활 속에 구현하는 문제에 대하여 정리해 보겠습니다. 상호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첫째로 내가 이해받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천지간의 모든 일이 나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뜻의 “천지 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 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교법 3장 29절)한다는 상제님의 가르침이 적용됩니다.

  상호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둘째로 상호존중(相互尊重)의 자세와 입장을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상호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예라는 것이 “사람으로서 일생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할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起居動靜)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인도(人道)를 갖추는 것”04이기 때문에 상호존중에는 예법과 도리에 합당하게 처신 처세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호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은 셋째로 척을 짓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할 만한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싫은 일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화하고 공손하며, 겸손하고 양보하는 심덕(心德)으로써 남을 대할 때에 척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은 상호이해를 생활 속에 구현하는 문제입니다. 상호이해를 생활 속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정생활에서 상호이해하여야 합니다. 보은상생(報恩相生)의 벽화가 아버지의 힘든 짐을 덜어주려고 달려가는 아들의 모습이 형상화되어 있듯이 아들의 이런 행동은 효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해’를 근본으로 하지 않고서는 해원도 보은도 이룰 수 없습니다.

  상호이해를 생활 속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음으로 이웃 간에 상호이해하여야 합니다. 도전님께서는 “이웃과 상부상조하여 화합하여야 한다.”, “도를 믿지 않는 사람일수록 인정을 더 베풀어야 한다.”05고 하시며 “도를 믿는 자는 안 믿는 자에게 더욱 친화(親和)를 두터이 하여 이해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상생의 진리이다.”0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와 관용’은 이웃화합을 이루기 위한 필수 덕목입니다.

  상호이해를 생활 속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또한 사회생활에서 상호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속한 학교나 직장, 사회단체에서는 언제나 ‘이해와 신뢰’를 근본으로 해원상생 ⋅ 보은상생 윤리를 실천함으로써 화평한 사회를 이룩하는데 기여하여야 합니다.

  상호이해를 생활 속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또한 수도생활에서 상호이해하여야 합니다. 도전님께서는 임원들에게는 “임원들은 항상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도인들을 길러야 한다.”07라고 하시고, 수반들에게는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바른 뜻을 그대로 받아 화목을 이룩할 때 체계 안에서 융화가 생겨 화평이 이룩되리라.”08 하셨으며, 모든 도인은 “상봉하솔(上奉下率)로 조화를 이루어 화평을 유지토록 명심하여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전경』에 “비인정(非人情)이면 불가근(不可近)”이라 하였으니 상봉하솔로 조화를 이루어 체계 안에서 화평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상호이해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해원상생의 실천은 ‘이해하는 것’에 있습니다. 괜히 상대방이 나를 못마땅하게 하더라도 그대로 같이 적대할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무슨 잘못된 것이 있는가 보다.’ 하고 이해해 나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해하다(understand)’의 뜻이 낮은 데(under) 서다(stand)로 해석되듯이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과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이 상대방을 이해하는 지름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바다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와 같이 “인류의 평화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여 인보상조(隣保相助)의 미덕으로 밉고 고움이 없이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도의 무한대한 진리에 있음”을 깊이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손을 어루만져 주는 벽화의 그림과 같이 상호이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이해’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상대방의 서운한 마음도 잘 풀어서 문자 그대로 ‘상호이해’가 되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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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도전님 훈시」, 『대순회보』, 29호, 73호, 111호 참조.

02 북미 원주민이 신는 뒤축이 없는 사슴 가죽 구두

03 『대순지침』, p.20.

04 『대순지침』, p.68.

05 『대순지침』, p.31.

06 『대순지침』, p.32.

07 『대순지침』, p.26.

08 『대순지침』,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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