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직금(仙女織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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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1 조회1,435회 댓글0건본문
선녀직금이란 선녀가 베틀로 비단옷감을 짠다는 뜻입니다. 비단옷감은 비단 실의 씨줄(가로줄)과 날줄(세로줄)이 서로 교차하며 직조됩니다. 이때 씨줄이나 날줄의 실의 가닥을 ‘올’이라 하는데, 실이나 줄의 가닥을 세는 단위로 쓰이기도 합니다. 시속에 ‘올바르다’는 말은 씨줄과 날줄이 서로 바르게 교차하여야 옷감이 만들어지듯이 인사(人事)에서 이치와 경위가 바르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씨줄은 위(緯)고 날줄은 경(經)입니다. 경위는 직물(織物)의 날과 씨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일이 진행되어 온 과정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리의 옳고 그름이나 분별을 의미할 때는 경위(涇渭)01라고 하며, 흔히 쓰는 경우라는 말이 이에 해당합니다. 경위는 이치고 이치는 법입니다. 올바르게 수도하기 위해서는 기거동정(起居動靜)을 이치와 경위에 맞추어 법례에 합당케 행하여 나가야 합니다.
도법(道法)에서 이치와 경위는 체계 질서로 표현됩니다. 『대순지침』에 “경위는 예절이니 경위로써 조직 체계를 확립토록 하라.”02 하였고,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경상애하(敬上愛下)의 융화로 단결하여야 한다.”03고 하였으니 수도하는 데서 체계 질서의 확립은 매우 중요합니다.
선녀직금의 벽화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우 있게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과 수도생활에서 체계 질서를 확립하고 올바르게 지켜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의 의미
‘올이 바르다.’는 것은 경위가 바르다는 것이고 경위가 바르다는 것은 만상만유가 제 위치에서 제 도리를 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생에서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인도(人道)를 행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인도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하는 바른 도리입니다. 『전경』에 “예로 움직여 예에 머무는 것을 일러 도리라 하고, 무례에 머무는 것을 일러 도리가 아니라 한다(動於禮者靜於禮曰道理 靜於無禮則曰無道理).”04(교운 1장 66절) 하였습니다. 예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일생 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할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起居動靜)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인도(人道)를 갖추는 것을 이릅니다.05 사람의 도가 예를 체로 삼기 때문에 무례(無禮)는 곧 무도리(無道理)가 되는 것입니다.
인도를 행하는 데는 우리의 훈회에 해원상생·보은상생의 상생윤리로 오대보은(五大報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명과 복록은 천지의 큰 은혜이므로 천지보은의 대의(大義)를 세워 상제님께 성·경·신을 다하고, 목숨을 유지하고 안주할 수 있는 것은 국가사회의 은혜이니 충성으로써 국가사회의 발전과 국리민복(國利民福)에 기여하여 국민의 도리를 다하며, 낳아서 길러주심은 부모의 은혜이니 숭선보본(崇先報本)의 대의로 효도를 다함으로써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익혀 받은 지식과 재능은 스승의 은혜이니 봉교포덕(奉敎布德)으로써 제자 된 도리를 다하며, 먹고 사는 것은 직업의 은혜이니 근면과 성실로써 직업인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오대보은입니다.06
인도를 행하는 데는 또한 수칙에 차제 도덕의 근원으로서 삼강오륜의 실천이 있습니다. 우리 도의 수칙 2는 유학에서 제시한 오륜(五倫)에 대한 가장 합리적이며 현대적인 해석이자 실천규범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父子有親], 나라에 충성하며[君臣有義], 부부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것이며[夫婦有別], 존장을 경례로써 섬기고 수하를 애휼지도하고[長幼有序], 친우 간에 신의로써 할 것[朋友有信]’07이 그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시속에 “무척 잘 산다”는 말은 척이 없어야 좋고 잘 산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잘 산다’고 하면 돈 많고 권력이 있는 것을 지칭하는데, 이것은 앞으로 오는 선경과 인존시대의 시대적 요구로 보았을 때 결코 잘 사는 기준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상제님께서도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교법 1장 1절)라고 하시며 잘못된 세태를 한탄하셨습니다. 인세에서 잘 산다는 것은 재리(財利)와 명리(名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면서 사는 데 있습니다. 무척 올바르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도의 훈회와 수칙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길입니다.
경우 바른 삶
경우(境遇)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사리(事理)나 도리(道理)’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된 형편이나 사정’을 뜻합니다. 전자는 ‘경우가 없다, 경우가 많다’는 것으로 후자는 ‘만일의 경우, 대개의 경우’ 등의 용례로 쓰입니다. 『전경』에 “‘내가 너를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네 뱃속에 경우가 많은 연고니라. 여자도 경우가 많아야 아이를 많이 낳으리라’고 공우(公又)에게 말씀하셨도다.”(교법 1장 45절)라는 성구에서 경우는 사리나 도리를 뜻하 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리가 밝고 도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그 사람은 경우가 바르다.”라고 합니다. 이때 경우는 그 사람이 지닌 덕으로 갈음해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여자도 경우가 많아야 아이를 많이 낳으리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은 여자가 덕이 있어야 자식도 낳고 기를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전경』의 행록 4장 20절에 보면 손병욱의 아내가 남편이 상제님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여 죽을병을 얻었는데 상제님께서 구하여 주시면서 “사나이가 잘 되려고 하는데 아내가 방해하니 제 연분이 아니라. 신명들이 없애려는 것을 구하여 주었노라. 이제 병은 나았으나 이 뒤로 잉태는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 후부터 그 아내는 잉태하지 못하였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사례 역시 사람이 덕을 지니고 경우 바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
도인 중에는 『대순지침』의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니, 경상애하(敬上愛下)의 융화로 단결하여야 한다.”는 구절에서 “왜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선천에서는 도를 닦는다 하면 산속에 들어가 면벽 수도를 하거나 참선, 명상을 하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혼자가 아닌 만수도인과 더불어 체계 질서를 세우고 그 속에서 수도하는 것이 일견 이해가 쉽게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선천의 도와 우리 도의 차이점을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경』에 “천지의 허무 기운을 받아 선도로써 포태하고, 천지의 적멸 기운을 받아 불도로써 양생하며, 천지의 이조 기운을 받아 유도로써 욕대하고, 관왕은 허무와 적멸, 이조를 모두 거느린다(受天地之虛無仙之胞胎 受天地之寂滅佛之養生 受天地之以詔儒之浴帶 冠旺 兜率虛無寂滅以詔).”(교운 1장 66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영적 의식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는 선도로써 가르쳤고 길러서 낳을 때는 불도로써 가르쳐 왔으며, 옷을 입고 예절을 차릴 때는 유도로써 가르쳤고 어른이 되었을 때는 관왕의 도가 필요한 것으로 풀어볼 수 있습니다. 선·불·유 관왕의 도로 발전해 가고, 인간의 영적 의식이 어른이 되어갈수록 사람들 사이의 사회성이 커지는 데서 인산(人山) 수도의 필요성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수도인과 더불어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으로 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다음은 가장 단단한 물질인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로 깎아내듯이 만물의 최령자인 인간은 사람들 사이에 부딪히면서 가장 잘 닦인다는 원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경』에 “옛적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었으나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교법 3장 31절)고 하셨습니다. 모두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도는 천문을 보고 명당을 찾아서 수도하는 것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중찰인의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으로 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체계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도를 닦는 것으로 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상제님께서 인세에 강세하신 목적을 통해서 궁구해 볼 수 있습니다. 수도란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 나가는 것입니다. 때와 장소, 상대에 따라서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강세하셔서 천지공사를 행하시게 된 연유도 천·지·인 삼계(三界)가 모두 자기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여 천(天)·지(地)·인(人)·신(神)의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도에서 체계와 질서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것은 도를 닦는 기본 규범이 됩니다.
『대순지침』에 “도(道)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며 경위가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08 하였고 “경위는 예절이니 경위로써 조직 체계를 확립토록 하라.”09 하였으니 도를 닦는 것은 경위를 바로 세우는 것이고 경위를 바로 세우는 것은 체계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므로, 결국 체계 질서를 바로 세워나가는 것이 도를 닦는 것으로 됩니다.
체계 질서의 확립
체계(體系)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원리에 따라서 낱낱의 부분이 짜임새 있게 조직되어 통일된 전체.’입니다. 질서(秩序)는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입니다. 그러니 체계 질서라 함은 일정한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 조직의 짜임새가 순조롭고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경위입니다.
체계 질서 확립의 근간은 도인 상호 간의 신뢰입니다. 『대순지침』에 “체계의 확립은 본래 믿음에 있으니, 마음속에서 서로의 의심을 풀고 조화를 이루는 데에 있다.” 하였고, “체계는 도심(道心)으로써 바로 확립되고 도심은 위아래의 도인들이 서로 믿으며 변하지 않고 신뢰하는 데에 있음을 모든 도인들은 각별히 유의하기를 바란다.”10하였습니다.
체계 질서는 상호 은의(恩義)로 세웁니다. 은의는 감사하고 보답해야 할 은혜와 의리입니다. 『대순지침』에 “상하와 상호의 은의(恩義)를 잊지 말고 인정(人情)과 관용심으로 융화 단결하여야 한다.”11 하였고, “자모지정(慈母之情)과 은사지의(恩師之義)의 심정으로 통심정이 되게 힘써라.”12하였습니다. 임원은 수반을 자모지정으로 대하고 수반은 임원을 은사지의의 심정으로 서로 상통하여 감사한 마음과 의리로 체계 질서를 세워야 합니다.
체계 질서는 상제님의 덕화로 유지합니다. 이에 대하여 『대순지침』에는 “덕화는 조직체계를 굳건히 하고 질서를 확보하는 매체가 되므로 덕화 선양에 도인들은 각별히 힘을 모아야 한다.” 하였고, “임원과 수반의 상호 질서도 덕화로 이룩되니 성실한 마음으로써 포덕·교화하는 것이 종단의 질서유지에 중요함을 모든 도인들은 각별히 유의하라.”13 하였습니다.
체계 질서는 예로써 지킵니다. 이것을 『대순지침』에는 “예는 평범하면서 적중(適中)하여야 위의(威儀)가 서고 질서가 이루어져 화합의 바탕이 된다.”14 하였고, “사람의 도가 예를 체로 삼기 때문에 그 체통(體統)을 바로 하여야 체계 질서가 정립(定立)된다.”15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대순진리를 바르게 알고 가르쳐 체계 질서를 정립(定立)해 나가야 합니다. 체계 질서를 정립해 나가는 데는 매사에 성·경·신으로 내가 먼저 좋은 일을 찾아서 하는 솔선수범의 자세로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도주님께서 ‘먼저 나의 마음을 참답게 함으로써 남의 마음을 참되게 하고, 먼저 내 몸을 공경함으로써 남도 몸을 공경하게 되며, 먼저 나의 일을 신의로써 하면 남들이 신의를 본받게 된다(先誠吾心 以誠他心 先敬吾身 以敬他身 先信吾事 以信他事).’는 말씀을 각각염념(刻刻念念)하라 하셨으니 잘 기억하여 두라.”16고 강조하셨습니다.
이렇게 체계 질서의 확립은 도인 상호 간의 신뢰를 근간으로 하면서 상하와 상호 은의로 체계 질서를 세우고, 덕화로 체계 질서를 유지하며, 예로써 체계 질서를 지키고, 진리를 올바로 알고 가르쳐 체계 질서를 바르게 정립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녀직금 벽화에는 올바르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경우 바른 삶, 도는 음양이고 음양은 이치며 이치는 경위고 경위는 법이라는 자각 아래 체계 질서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것이 도를 닦는 근본원리가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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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중국의 징수이(涇水) 강물은 흐리고 웨이수이(渭水) 강물은 맑아 뚜렷이 구별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02 『대순지침』, p.85.
03 『대순지침』, p.65.
04 『대순회보』 제Ⅰ집, p.388 참조.
05 『대순지침』, p.68.
06 『대순진리회요람』, p.20, 「청계탑」 『대순회보』, 112호 참조.
07 『대순진리회요람』, p.21 참조.
08 『대순지침』, p.18.
09 『대순지침』, p.85.
10 『대순지침』, pp.63~64.
11 『대순지침』, p.64.
12 『대순지침』, p.67.
13 『대순지침』, pp.65~66.
14 『대순지침』, p.69.
15 상동.
16 『대순지침』,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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